독자기고

 

▲ 박영춘 서산시 한마음15로

봄을 맞아 만끽하는 이는 가슴에 피가 아직 끓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봄이 오는 건지, 봄이 가는 건지, 그 기미도 모르는 채, 어렵사리 피고 지는 꽃들로 인하여, 봄이 어렴풋이 그림자처럼 다녀감을 조금 느꼈을 뿐, 봄의 낭만에 빠져보지 못함이 참으로 아쉽게만 여겨집니다.

보리 이삭이 가슴을 마냥 부풀리며 봄바람에 한껏 몸을 흔들어대고, 미루나무가 연초록 자잘한 이파리를 반짝반짝 흔듭니다. 봄바람을 가슴 가득 받아 안고 허리를 들입다 흔드는 보리 이삭이나 미루나무잎처럼 그렇게 휘청거리는 봄이 나는 그리웠던 것입니다.

밭머리 찔레꽃 덤불에 걸린 아지랑이가 절룩거리고, 올챙이가 꼬리를 흔들면, 봄의 나른한 햇살이 가슴으로 파고들고, 남촌서 남풍 불 제 봄의 입김이 그렇게도 달콤했습니다. 마음이 싱숭생숭 설레었는데 난 그런 봄을 만나보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 집 작은 정원에 매화는 이미 지고, 요즘은 영산홍, 금낭화, 매발톱꽃, 바람꽃, 아기동자화, 사랑초, 꽃잔디, 할미꽃, 장미꽃, 아기진달래, 철쭉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봄을 만나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기는커녕, 황사와 미세먼지와 함께 쌀쌀한 바람만 이맛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봄이야 오든지 가든지 말든지 무정하기 짝이 없습니다. 아주 야속하고 밉기만 한 봄을 나는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길고 지루하고 무덥지만 뜨겁고 정열적인 여름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합니다.

요즘은 봄 향기보다, 여름 향기가 더 짙고 푸르러서 좋습니다. 아카시아꽃 알싸한 향기 마시며 계곡으로 녹음 우거진 그늘을 향하여 펼쳐진 작은 오솔길 따라, 배낭을 짊어지고 대자연의 옷자락을 밟으며 온갖 생각에 흠뻑 흥건히 젖어보렵니다.

군것질할 것을 배낭에 넣어 짊어지고 산그늘로 깊숙이 들어가고 싶습니다. 자꾸만 아쉬워지는 늦봄입니다. 뻐꾸기는 남의 동지에다 제 새끼를 낳아 맡겨놓고 뱅뱅 돌며 구슬피 울고, 꿩은 알을 낳고 꽃구름을 바라보며 행복을 꿈꿉니다. 산자락 오솔길로 아무런 말은 없어도 그저 그냥 마냥 걷고 싶어집니다. 꽃피는 봄날, 님 만나고 싶은 봄날, 아지랑이가 아롱거리는 봄날, 길고 나른한 봄날, 그리움이 가슴 속 이 구석 저 구석을 마냥 후벼대는 그런 봄날이 마냥 그립습니다. 아, 야릇한 봄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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