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두웅 편집국장

학(鶴)은 예부터 신선이 타고 다니는 신성한 동물로 여겼다. 학은 십장생(十長生)의 하나로 장수를 상징한다. 조상들은 ‘학(鶴)’ 자를 넣어 마을 이름을 짓고 병풍에 그리거나 옷, 베개 등에 수를 놓아 학을 가까이했다. 학은 또 고고한 학자를 상징해 조선시대 문관들은 관복에 학을 수놓았다.

일본 가고시마현에서 오지로 꼽히는 인구 6만 명에 불과한 이즈미(出水)시의 이즈미 습지평야는 매년 11월부터 3월까지 전세계 흑두루미의 90%, 재두루미의 30~50%가 몰려드는 세계 최대 월동지다. 대부분 우리 땅에서 건너간 두루미들이다.

지역주민들은 정부의 예산 지원 아래 흑두루미와 재두루미 보호 활동을 펼쳐 멸종 위기에 처한 두루미들을 살려냈다. 이곳에서 겨울을 나는 두루미는 많을 땐 하루 최고 1만5000마리를 넘는다.

이즈미시는 세계 최대 두루미 서식지로 이름이 알려지면서 조류학자는 물론 사진작가, 관광객이 몰려들어 관광객 수만 50만 명에 달한다. 두루미 관광객 수입이 시 재정의 30%를 넘는 시(市)정부는 겨울 휴경지를 제공하는 130여 농가에게 200평당 20만 원씩 임대료를 지불하고 있다.

또 주민들은 농가체험, 농가민박, 식당, 숙박(호텔) 등을 통해 농업소득을 뛰어 넘는 고소득을 올리고 지역 농축산물을 활용한 로컬푸드 식당을 운영한다. 이즈미시의 특산품인 닭고기를 활용한 스테이크, 계란, 닭 육수 간장 등은 이미 유명 브랜드다. 이즈미시 두루미 관찰 센터와 일본에서 유일한 두루미 박물관은 입장료 수입을 얻는다.

이즈미시에 두루미가 원래부터 많았던 것은 아니다. 이곳은 지난 1947년 한 해 275마리의 두루미가 방문했지만, 이후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최근에는 1만 5000마리를 넘고 있다.

이즈미시가 세계 최대 두루미 서식지가 된 것은 아라사키 간척지가 1952년에 가고시마현 특별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후 1960년대부터 간척지에 날아드는 두루미에게 이 지역 농민들이 모이를 주기 시작하며 시작됐다. 일본 정부도 이곳을 월동보호구역으로 지정해 각종 개발사업을 제한하는 한편 재정적 지원도 아끼지 않고 있다.

이즈미시가 일본의 대표적인 두루미 도래지가 되기까지 과정은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1950년대 이후부터 두루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도래지 주변 농장에 피해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생계의 위협을 받을 정도가 되자 지역 주민들은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고 시와 농민 간에 분쟁이 일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즈미시는 지역 주민들의 지원책을 찾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민간 중심으로 결성된 두루미보호회가 설립돼 두루미 보호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아라사키 마을에 사는 토카오카 토키요시(66)씨는 집안 대대로 20㏊ 규모의 벼농사를 짓고 있으면서 두루미보호회에서 두루미 감시단을 맡고 있다. 그는 두루미가 찾아오는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매일 1.5톤 분량의 먹을거리를 제공하고 두루미의 안전 문제 등도 확인한다. 물론 인건비와 비용은 시에서 받는다.

토키요시 씨는 “어릴 때는 매년 찾아오는 두루미 때문에 2모작을 못해서 집안 생계가 곤란한 때가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들은 두루미를 절대 해롭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두루미는 우리가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배워왔다”며 “이후 국가에서 지원금이 나오고 또 두루미를 돕기 위한 각종 제도들(일자리 마련 등)이 생겨나면서 오히려 반가워해야 할 대상이 됐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8년 천연기념물 제202호인 두루미 40여 마리가 경기도 구리에서 떼죽음을 당했다. 안타까운 ‘부음’이었다. 그러나 천연기념물의 이 ‘부음 소식’을 접한 한 인사는 “새가 밥 먹여주나”라고 말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이 발언은 생물체의 존귀(尊貴)함은 물론 자연물로서의 개체를 넘어 그 희귀성과 고유성, 심미성으로 학술, 자연, 인문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천연기념물에 대한 천박한 인식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었다.

더구나 이제는 ‘새가 밥 먹여주는 시대’가 됐다.

천수만 철새 지킴이 김신환 원장은 천수만의 가치는 상상 이상이라고 말한다. 규모상 순천만은 약 1000여마리 서식환경에 비해 천수만은 약 4~5000마리 규모의 서식지를 창출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작년 11월 농어촌공사에서 천수만의 물을 가두어 모래톱을 없애면서 곧바로 순천만으로 날아갔던 두루미들이 이즈미시에서 겨울을 나고 북상하면서 천수만의 무논을 중간 기착지로 삼고 날개를 내렸다. 이번 주에만 4000여 마리가 보고되고 있다.

김 원장은 천수만이 세계적인 두루미 도래지가 되는 그 날을 꿈꾸며 오늘도 천수만을 지키고 있다.

‘천학(千鶴)의 천수만’ 생태관광의 메카가 되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다. 주민에게 임대료를 지급하는 두루미 보호구역 지정과 두루미의 휴식처인 무논 조성과 볏짚 존치. 두루미 보호와 먹이주기를 통한 겨울철 주민 일자리 만들기를 시행해야 한다.

또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이즈미시와 같이 다양한 관광상품 개발과 민박, 식당, 숙박 인프라를 유도해야 한다.

20세기가 문화유산에 대한 관광시대라면, 21세기는 생태관광시대다. 국내 최대의 생태관광지인 순천만 등지에는 연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

생태관광의 핵심은 자연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인간의 발길을 허용하는 것이다. 생태관광은 이제 산업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갖고 접근해야 할 때이다. 단순히 보고 즐기는 공간이 아니라, 그곳에서 나는 특산품을 구입하고, 토속음식도 먹어보고, 체험프로그램 등을 통해 자연을 배워나가는 명소로 가꾸어야 한다. 서산시에서도 이제는 자연유산과 생태관광에 대해 보다 긴 안목으로 정책적 관리가 필요하며, 시민들 역시 소중한 자연유산을 이름난 생태관광지로 키워나가는 데 힘을 모아야할 때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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