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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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병부(사)한국문인협회 서산지부 사무국장

일전에 수원에 살고 있는 서산문인협회 회원인 마 시인으로 부터『용내래미』와『쉼』이란 두 권의 시집을 받았다.

그 중에서 필자가 초등학교 5학년 때가 되는 1965년에 헬기에서 찍었다는 『용내래미』의 평화로운 마을이 마 시인의 고향이며, 지금은 용비지(龍飛池)라는 저수지로 수몰되어버렸다는 소식에 아련한 추억이 되살아났었다.

내가『용비지』를 처음 갔던 해는 지금으로 42년 전인 1977년 9월이었다. 그때 당시 국무총리를 지내셨던 분이 운영했던 삼화축산(三和畜産)은 서산시 운산면 거성리에 소재하고 있었으며, 1969년 1월에 농수산부 제1호로 등록된 기업목장이었으며, 동양최대의 시설을 자랑하던 곳이었다.

이렇게 지역사회개발과 기업목장으로서의 선도적 역할을 하던 삼화축산에서 필자는 1977년 8월부터 12월까지「유우(乳牛)및 한우(韓牛)사양관리」연수생으로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소를 기르는 곳이 아니라 소를 배우는 곳이다. 소처럼 충성하자”와 정신교육을 통한 새마을 정신의 생활화를 직접 체험하였다. 640만 평의 광활한 목장 면적에 목도(牧道)의 길이만 250리 나 되었으며, 3천 여두의 소를 키우던 그곳 삼화목장에는『용비지』라는 지상낙원처럼 아름다웠던 저수지 하나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연수생들과 같이 자주 그곳을 찾아가 사진도 찍고『용비지』제방을 거닐며 손을 담가보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곳이 바로 마 시인의 물속으로 사라진 고향이라니 다시 가고픈 그리운『용비지』다. 수몰지가 고향마을이라는 마 시인의 시집『용내래미』시집을 읽노라니 더 가슴에 와 닿는 것은 그가 멀리 타향에 떠나 있으면서도 고향을 그리는 애절함이 절절하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시간은 변함없이 자전하고 변화한다. 그러니 자신은 바닷가의 작은 모래알 보다 작음을 자각하고, 남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이 보람이며 행복이라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아, 정말 아름다웠던 용비지. 오래도록 나를 설레임으로 도취시켜주었던 그곳 삼화목장의 저수지를 그동안 나는 까마득히 잊고 살아 왔었다.

마 시인의 시를 통해 지척에 있으면서도 그동안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지난 날을 회상하며 “진정한 축산인이 되기 전에 인간 됨됨이가 되어야 한다”고 다짐했던 지난날을 회고(回顧)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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