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미향 기자

 

‘인향만리(人香萬里)’를 꿈꾸는 여인

최미향 "제게 글은 후시딘, 마데카솔 같은 거예요"

 

프롤로그

읽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매우 낯선 일이다. 고단한 작업이기도 하다.

내 생각을 글로 옮기는 작업도 어려운데 하물며 타인의 삶을 지면 위에 글로 표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는 상상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서산시대가 2018년 6월부터 시작한 인터뷰 코너에는 한 해 동안 스물두명의 삶을 글로 압축해 지면에 옮겨놓은 시간이었다. 그 고단한 작업을 즐겁게 실행으로 옮긴 최미향 기자를 2018년 서산시대 마지막 호 신문에서 인터뷰하기로 했다. 그 고단한 작업을 내가 맡아 보기로 했다. 최미향 기자에게 전하는 서산시대의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은 봄날 같은 기운이 아지랑이 피듯 나른했다. 달랑 연필 한자루와 취재수첩 하나를 들고 커피숍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선생님~~” 애교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뒤를 돌아보니 활짝 웃으며 약속장소에 들어선다. 오늘도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 피어있다. 자리에 앉자마자 인사도 나누기 전에 몇 권의 책을 쏟아낸다. 그동안 그녀가 쓴 책들이다.

첫 번째 작품 『최미향의 봄』과 두 번째 작품 『뜻밖의 선물』을 나에게 쓱 내민다.

나도 약속한 팥죽 한 그릇을 내밀었다. 팥죽 한 그릇에 아이처럼 좋아한다. 차를 주문하고 마주앉았다.

 

▲ 최미향 기자

 

Q. 먼저 자신의 소개부터?

(최) 인터뷰어에서 인터뷰이로 바뀌니 많이 떨린다며 너스레를 떤다. 그녀는 자신을 향기를 품은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최고의 아름다운 향기를 품은 사람, 꽃에 맺힌 이슬같은 사람, 열정을 품은 아침이슬 같은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혹시, ‘참이슬’은 아니냐고 농담을 하자. 깔깔 웃으며 “인향만리라고 들어봤어요? 나는 그런 사람이고 싶어요. 나는 청순하고 담백한 사람입니다.”라고 살을 붙여 자신을 소개한다.

화향백리(花香百里) 주향천리(酒香千里) 인향만리(人香萬里)라는 옛말이 생각났다. 자신을 향기로 소개한 그녀를 빼꼼히 쳐다보니 그녀에게서 향기로운 사람 냄새가 물씬 풍겨온다.

 

Q. 늘 밝고 쾌활하고 에너지 넘치는 모습은 본래 타고난 성격인지?

(최) “저는 엄마를 닮았어요. 엄마에게 물려받은 성격이예요. 애교가 많고, 마음이 따뜻하고, 열정이 넘치는 우리 엄마는 지금도 경로당에서 독보적인 존재예요. 엄마가 경로당에 안계시면 경로당이 문을 닫을 정도로 엄마의 애교와 열정,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답니다. 그런 모습이 지금의 제 모습이기도 해요.”

그녀는 엄마를 꼭 빼닮았다고 한다. 지금도 친정집에 내려가면 이모들이 그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여든다고 한다. 콧소리를 한껏 넣어 자신을 애교가 넘치는 따뜻하고 향기로운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녀를 보니 애교라는 단어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Q.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은 어떠했나?

(최) 그녀에게도 어릴적 여자로 태어나 겪은 상처와 2014년에 큰 아픔이 있었다고 한다. 귀가 솔깃했다. 세상 밝은 그녀에게 아픔과 상처가 있었다니 궁금했다. 그녀는 경북 경주에서 종가집의 1남5녀 중 둘째로 세상에 나왔다. 첫 아이인 언니를 늦게 봐서 부모님들의 언니에 대한 사랑이 깊었다고 회상한다.

종가집 둘째 딸이 태어나자 부모님은 출생신고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2년 뒤 남동생이 태어났고 그때 비로서 동생과 함께 출생신고를 했다고 한다. 출생신고를 안해준 것도 서러운데 출생신고서에 남동생과의 나이 차이를 위해 그녀의 나이를 한 살 더 많게 올려 지금까지도 본래의 나이보다 한 살 더 많게 살아온 것이 억울하고 속상하다고 했다. 여자들은 한 살이라도 어리고 싶고, 어려보이고 싶은 로망이 있는데 하며 잠깐 속상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어려서부터 언니와 남동생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살았어요. 엄마가 남동생에게는 반찬으로 달걀을 부쳐주는데 나는 안챙겨 주는 거예요. 언니나 여동생들은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것이 매우 불만이었어요.” 돌아보면 그때의 불만이 마음의 상처였던것 같다고 말한다. 큰 상처라고 해서 솔깃했는데...이에 철없은 투정 같다고 하니 손사레를 치며 아니란다. “종가집 외아들에 대한 부모님의 편애는 불만으로 가득찬 나를 책으로 안내 했어요. 책읽기를 통해 그 많던 불만들을 해소한 거지요. 어려서부터 많은 책을 읽었어요. 그때의 독서습관이 지금 제가 작가로 활동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쳤고, 지금까지도 책 읽는 습관을 가질 수 있었어요.” 그녀는 지금도 한 달에 10여권의 책을 읽는다고 한다. 어린시절과 학창시절 이야기를 한바탕 풀어내고 이야기 한 묶음을 마무리했다.

 

Q. 20대부터 지금의 최미향은 어떤 여성인가?

(최) 그녀는 대구에서 직장생활을 했다고 한다. 쾌활하고 밝은 성격의 그녀는 여느 젊은 청춘들처럼 나이트클럽을 자주 다녔다고 한다. 혹시 나이트 죽순이 아니었어요? 라고 묻자 눈을 흘기며 굳이 아니라고 부인하지는 않는다. “20대 초반에 나이트클럽에서 한 남자를 만났어요. 제가 그 남자를 엄청 많이 사랑했어요. 그런데 부모님은 가난한 군인이라고 반대가 심했어요. 엄마에게 그 남자에 대한 장점만 이야기 하면서 설득하고 설득해서 결국, 반대를 무릅쓰고 언니보다 먼저 결혼을 했어요.”

지금 살고 있는 사람이 나이트에서 만난 남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한다. 동갑내기 그 남자가 지금의 남편이라고 한다. 그렇게 20대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한 남자의 아내로, 엄마로, 며느리로 평범하게 살다가 남편을 따라 해미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결혼은 남자든 여자든 사람을 평범하게 만드는 마법이 있다. 가정이라는 일상의 울타리로 묶어 버린다. 그녀도 결혼과 함께 평범한 여성으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애교 많고, 밝고, 긍적적인 성격의 그녀에게도 2014년 뜻하지 않은 큰 시련이 찾아왔다고 한다.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 큰 아픔과 상처를 입었다고 했다. 조심스럽게 내용을 묻자 차마 말할 수 없다며 옅은 웃음으로 대신한다. 자세한 내용은 지면에 옮기지 않기로 약속을 하고 이야기를 들었다.

“2014년 큰 상처를 받았어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이었어요. 지금은 웃으면서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지만 그때는 정말 모든 걸 내려놓고 세상을 등질 생각까지 했어요. 결과적으로 저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된 사건이었어요.” 그녀의 긍정적 성격답게 자신의 상처를 전화위복으로 치환해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극복하기 쉽지 않은 큰 아픔이었을텐데 그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고 타자의 상처를 돌아보며 치유하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고 말하는 그녀가 작은 거인처럼 대단해 보였다.

“당시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나에 대한 투자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작성한 버킷리스트는 첫 번째가 혼자 밥먹기였어요. 두 번째가 혼자 영화보기, 세 번째가 혼자 여행하기로 정했어요.”

버킷리스트가 대부분 홀로 하는 것이었다. 궁금해서 다시 물었다. 왜, 홀로 하는 것을 버킷리스트로 정했는지 물었다. “일종에 홀로서기 연습이었어요. 그동안 가족을 위해 살아오면서 나를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그래서 나를 찾기 위한 시도를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혼자할 수 있는 것을 생각했지요. 처음 식당에 들어가서 밥을 시켰는데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어요. 식사를 마칠 때까지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밥만 먹었어요. 그나마 영화보기는 어두운 곳이어서 쉽게 적응이 되더군요. 여행하기는 숙소를 정하고 혼자 잔다는 것이 무척 신경 쓰였는데 하나 둘 실행으로 옮기면서 자신감이 생겼어요. 결국 저는 나를 찾는데 성공 했어요. 그래서 제가 꿈꾸던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큰 아픔과 상처가 자신을 찾는 마중물이 되었다고 덤덤하게 말한다.

그녀는 인터뷰 내내 꿈 이야기를 많이 했다. “제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지 못해요.” 그럴 때마다 꿈이 없는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꿈꾸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한다. 자신의 꿈도 아닌 다른 사람들의 꿈을 찾아주는 역할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 최미향 기자

 

Q. 자신의 꿈은 무엇? 구체적인 답을 요구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인다.)

(최) “그러고 보니 내 꿈이 없네요. 나는 다른 사람들의 꿈을 키워주는 사람이고 되고 싶어요. 내 글(책)을 읽고, 내 이야기를 듣고 꿈이 없는 사람들이 꿈을 꾸고, 그 꿈을 위해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그녀는 죽을 때 까지 40권 정도의 책을 쓰고 싶다고 했다. 지치고 힘든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듣고 행복해하고, 내 글을 읽으면서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그런 작가가 되고 싶다고 힘주어 말한다.

 

Q.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최) “많은 사람들은 웃음 뒤에 아픔이 있어요. 자신의 아픔을 숨기고 사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 아픔을 달래주고 싶었어요. 내 글을 읽고 사람들이 행복해 하는 꿈을 꾸면서 글을 써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녀는 결국 2014년 자신에게 찾아온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오기로 펴낸 그녀의 첫 번째 작품『최미향의 봄』을 통해 글쓰기에 전념하게 됐다고 한다.

 

▲ 최미향 기자의 22인의 인터뷰 모음집 "피플앤피플"

 

Q. 최미향에게 글이란 무엇인가?

(최) “제게 글은 후시딘, 마데카솔 같은 거예요. 마음에 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글을 써요. 내 자신은 물론 타자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는 글을 쓰고 싶어요. 내 글을 통해 아픔을 잠시 잊고, 마음에 상처를 치유했으면 하는 바램으로 글을 쓰고 있어요. 나에게 글은 후시딘, 마데카솔이예요. 상처가 아물면서 살 위로 돋아나는 새살의 의미라고 보시면되요.”

그녀는 자신에게 찾아온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6개월의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첫 번째 책 『최미향의 봄』을 쓰면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했다. 『최미향의 봄』이라는 책에서 봄은 ‘계절’의 의미와 ‘본다’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했다. 세상과 사람들을 따뜻한 봄처럼 보고 싶다는 그녀의 마음에서 자신을 따뜻하고 향기로운 사람이라고 소개한 말이 다시 한 번 생각났다.

 

Q. 서산시대와의 인연은?

(최) 그녀는 사실 서산시대를 잘 알지 못했다고 한다. “하루는 친한 오빠가 전화를 해서는 다짜고짜 서산시대에서 문화예술 쪽을 취재할 사람이 필요하니 가서 무조건 도와주라고 하는 거예요. 또 하루는 아는 동생이 전화를 해서 서산시대에 사람이 필요하니 누나가 가서 도와줬으면 좋겠다”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는 수 없이 2017년 12월에 창립3주년 행사에 처음 참여를 했고, 그 자리에서 인터뷰 기사를 쓰고 싶다고 말했어요.” 그녀는 2018년 지방선거가 끝나고 서산시대에서 합류해 인터뷰 기사를 쓰는 시민기자가 되었다. 본격적으로 그동안 최미향 기자가 진행했던 인터뷰 관련한 내용으로 대화를 옮겼다.

 

Q. 인터뷰를 하면서 가장 신경쓰는 부분은?

(최) “인터뷰를 하는 사람들의 내면세계를 끌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개개인마다 짊어지고 있는 삶의 아픔과 극복과정을 인터뷰를 통해 다 끌어내려고 노력해요.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나면 마음이 시원하다고 말해줄 때 인터뷰를 잘했구나 생각 하면서 글로 옮겨요.”

그녀는 우리들 마음속에는 못이 박혀있다고 말한다. 인터뷰를 통해 그들 마음속에 박혀있는 대못이든 작은 못이든 하나라도 뽑아져 나오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주었다. 최미향 씨 마음속에는 몇 개의 못이 박혀있는지 궁금해서 물었다.

“제 마음속에도 3개 정도의 못이 박혀 있어요. 저는 인터뷰를 하면서 내 마음의 못이 다 뽑혔어요. 거의 다 뽑혔어요.” 그녀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그들의 삶을 통해 자신의 상처가 치유되고 마음속 못이 다 뽑혔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표정에서 편안함을 볼 수 있었다.

 

Q. 인터뷰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는 누구였는지를 물었다.

(최) “도신스님과의 인터뷰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분의 가족사에서 많은 아픔을 느꼈어요. 인터뷰를 하면서 눈물이 나서 혼났어요. 동자승이라는 단어만 봐도 지금도 마음이 아파요. 저는 천성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지나치지 못해요. 모든 사람들이 아픔을 가지고 있지만 도신스님의 삶에서 그런 아픔이 느껴져서 기억에 많이 남아요.” 그녀는 타자의 아픔을 쉽게 지나치지 못한다고 했다. 아픈 사람이 있거나 어려운 사람을 보면 힘을 모아 돕거나 그들의 아픔을 함께 한다고 했다. 그녀는 현재 시민기자 이외에도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으로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있다고 했다.

최미향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인가? 라고 묻자 “나는 따뜻한 사람이예요.”라고 바로 대답한다.

따뜻한 마음을 가져야 따뜻한 시선이 생기고, 따뜻한 시선이 있어야 따뜻한 손길이 생기고, 따뜻한 손길이 있어야 내 손길이 필요한 사람을 도울 수 있다고 말하는 그녀의 말에서 따듯함이 느껴졌다.

 

▲ 최미향 기자의 피플앤피플 출판기념식

 

Q. 인터뷰를 하면서 가슴 아팠거나 힘든 일이 있었나?

(최) “2014년 큰 아픔을 경험하면서 왠만한 일에는 상처를 받지 않아요. 상처라기보다는 속상한 일은 종종 있어요. 동양환경 모종면 대표 인터뷰가 기사화되고 나서 지역의 환경문제 현안과 맞물려 여러 오해와 억측, 욕을 많이 먹은 것이 제일 속상했어요. 말도 안되는 말을 듣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글이 주는 파급효과를 다시 한 번 느끼게 된 사건이었다면서 그때의 어려움과 속상함을 말한다.

지난 21일 서산시대 송년의 밤 행사에서 최미향 기자가 인터뷰 했던 사람들에게 공통으로 했던 질문을 똑같이 그녀에게 했다.

“서산시대 인터뷰 기자를 하면서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물었다.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우선, 많은 사람들이 제 이름을 알고 있다는 거예요. 지금도 매일같이 사람들이 인터뷰 요청을 해 와요. 요즘은 내년 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출마 예정 후보자들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있어요. 그래서 조심스럽게 선거가 끝난 후에 인터뷰를 하겠다고 둘러대고 있어요.” 정말로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그러면서도 싫은 표정은 아닌 듯 보였다.

“내 스스로 변한 것은 인터뷰를 하면서 그 사람들의 삶을 대신 살아본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그들의 삶을 글로 옮기면서도 내가 그들의 삶을 대신 사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되요. 그런 것들이 가장 뿌듯하고, 그들의 삶을 엿본 것 같아 짜릿한 느낌도 느끼곤 해요.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큰 변화라고 생각해요.”

인터뷰 기사가 나가고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타 시도에서까지 인터뷰 요청이 들어올 때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그녀가 나를 빼꼼이 쳐다보면서 사실 식당에 가서 밥을 공짜로 얻어먹은 적도 있었다고 털어놓으면서 활짝 웃는다. 그녀의 글맵시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위로받고 치유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이렇게 많을지 몰랐다. 지면이 부족할 것 같아 남은 이야기 보따리는 풀지도 않고 서둘러 마무리 질문으로 넘어갔다.

 

Q. 최미향 기자에게 서산시대는 어떤 신문이고,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최) “지역신문 중에 가장 객관적 시선으로 지역사회를 보는 신문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기사를 쓰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서산시대에서 시민기자를 하고 있구요.”(같이 웃으며 공감을 표현)

다른 신문사에서 스카웃 제안을 해오면 갈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충분한 급여와 지위를 준다면 갈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녀가 나를 보면서 깔깔깔 웃는다. “당연히 급여를 많이 주면 갈 의향이 있어요. 지금 제 현실이 그러니까요. 그런데, 저는 지금 서산시대에 섭섭하지 않아요. 제가 글을 쓸 수 있게 기회를 줬고, 제가 쓴 인터뷰 기사를 책으로 발간해 준 것으로 저는 모든 보상을 받았어요. 출판기념회까지 해줘서 너무 행복하고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책이 저에게는 보상이예요.” 그녀의 말이 진심이라고 느껴졌다. 그녀에게 글과 책은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보상이었다.

“기자라는 직업은 매우 매력적이에요. 너무 멋진 직업인 것 같아요. 나에게 가장 적합한 직업을 찾았고 서산시대와 함께 일하게 돼서 행복한 한해였어요.”라며 서산시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준다.

 

Q. 서산시대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최) “내년에는 여행기를 쓰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내년 6월쯤 책으로 출간할 예정이에요. 서산시대에 인터뷰기사 말고 여행기를 연재하고 싶은 것이 바램이에요. 너무 바빠서, 몸이 아파서, 경제적 이유로 여행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내 여행기를 통해 대리만족을 시켜주고 싶어요. 서산시대를 읽고 나면 책을 한권 읽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섹션을 만들어서 모든 연령층의 독자들에게 만족을 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서산시대를 통해 이루었으면 하는 바램을 전했다.

“서산시대가 나를 필요로 하면 저는 서산시대에서 지금처럼 즐겁게 일을 하고 싶어요. 물론 급여도 주면 더 좋겠지만(웃음..).” 그녀가 서산시대에 바라는 것은 함께 일하는 것이었다.(하이 파이브를 했다)

 

Q. 마지막으로, 2019년에 하고 싶은 일은?

(최) “내년에는 여행을 많이 하고 싶어요.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인터뷰도 하고 싶구요. 여행기를 쓰려고 해요. 서산시대가 한 꼭지 지면을 꼭 할애해 주면 좋겠어요.” 바램인지 협박인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은 거창하지 않고 소박했다. “여행기를 써서 몸이 아파서 여행을 못하는 사람들에게 눈이 되고, 발이 되고, 가슴이 되어 그들에게 힐링을 주고 싶어요. 사람들이 미처 보지 못한 것을 내 눈을 통해 보여주고 싶어요. 저는 나이가 먹을수록 감성이 더 살아나고 있는 것 같아요.” 여행을 최대한 많이 하는 것이 2019년 목표라고 한다. 여행을 통해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그녀는 여행은 내가 살아 있음을 철저히 느끼는 일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Q. 2019년 버킷리스트는?

(최) “당연하죠! 저는 매년 버킷리스트를 정해요. 꼭 실행할 수 있는 리스트만 작성하지요. 첫 번째, 여행다니면서 여행기를 쓰자! 두 번째, 살을 빼자! 세 번째, 문화예술단체를 만들자! 이 세가지가 버킷리스트예요.” 살은 얼마나 빼야하는지 묻자 키득키득 웃으며 1kg라고 한다. 내가 보기에 5kg는 빼야겠다고 놀리자 급하게 목표를 5kg로 수정을 한다. 지켜보겠다고 말하면서 한바탕 웃었다.

 

에필로그

그녀를 볼 때마다 TV에 나오는 건전지 광고가 생각난다. 에너자이저 백만돌이가 팔굽혀 펴기를 하면서 “백만 스물둘, 백만 스물셋” 숫자를 세는 모습이 그녀와 닮아있다. 백만돌이가 그녀의 얼굴과 오버랩 된다.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에너지가 넘치는 그녀를 만나고 나면 나도 모르게 에너지를 얻고 온다고 말한다. 그녀는 분명 에너자이너 백만돌이가 맞다.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불어 넣어주는 건전지다.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 나도 모르게 에너지가 충전되어 있었다.

정진호 기자 culturearea@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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