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상식 서산여성합창단 지휘자

최미향 기자l승인2018.12.19l수정2018.12.19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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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식 서산여성합창단 지휘자

 

공무원생활 청산, 기초없이 음악대학에 진학

이태리 7년, 소위 잘 나간다는 음악가로 세상에 이름 알려

“어머니 불의 사고로 서산여성합창단과 함께, 내 삶은 다시 시작되었다”

 

<프롤로그>

 

고향 송암 앞바다를 보며 음악가의 꿈을 키웠던 한상식(53) 서산여성합창단 지휘자를 만났다. 틈만 나면 집 앞 바다에 나가 미래의 자신을 그려나가며 어떠한 어려움이 와도 결코 무너지지 않으리라 파도의 포말 앞에 약속을 했던 한상식 지휘자. 어느 땐 갯벌의 다져진 곳을 찾아 밟아가며 걷다, 한 눈 판 햇살의 틈을 비집고 모래사장에 앉아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면 갈매기와 파도가 관객이 되어 박수를 쳐주었다. 어쩌다 세월의 골이 깊게 패인 어부가 지나는 길에 엄지손가락이라도 치켜세워 주는 날에는 온종일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아 좋았다. 해가 저물 무렵, 멀리 고깃배가 수평선을 가로지르면 그때서야 숨구멍 난 바닷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학교를 파하고 돌아가는 길에 저 멀리 어머니의 모습이 저녁노을과 함께 다가올 때는 힘든 줄도 모르고 뛰어가 어머니 품에 안겨 어리광을 부렸다는 한상식. “오늘은 학교생활 즐거웠어? 엄마는 우리 아들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 좋단다.” 언제나 자식의 꿈을 지지했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 드리기 위해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다 뭔가 답답한 것이 목젖에 턱 걸려 토해내고 싶을 때는 또다시 고즈넉한 바다로 뛰어가 반짝이는 포말이 조명인 냥 그곳에서 마음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부르다보면 어느새 물결은 조명이 되어 그를 비췄고 백사장은 큰 무대가 되어 그를 받쳐주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다. 그러다 한 줄기 바람이 그를 흔들면 그제야 현실로 돌아와 급히 집으로 뛰어왔던 한상식 서산여성합창단 지휘자.

지금부터 그의 인생스토리를 펼치려 한다.

 

# 중학시절, 음악경연대회에서 영예의 대상 수상

사실 아주 어렸을 때는 누구나 그렇듯이 하고 싶었던 것이 많았습니다. 음악가도 되고 싶었지만 어쩌다 정복을 입고 지나가는 경찰을 보면 경찰관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곤 했지요. 그러다 며칠이 지나면 다시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되고 싶다가 또 어느 땐 기자, 정치인, 교사 등 하고 싶었던 것이 어찌나 많았던지 날이 새면 바뀌곤 했습니다. 그러다 중학교 2학년이었던가. 우연한 기회에 음악경연대회에 출연하여 꿈에도 생각지 못한 영예의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그게 계기가 되어 노래에 대한 본격적인 진로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가정형편은 생각지도 않고 예술고등학교에 입학하려고 했지요. 하지만 “우리 가정 형편으로 예술고등학교는 무리다.”라는 아버지의 말씀은 거역할 수 없는 어명이었습니다. 대신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로 유학을 보내주셨지요. 하지만 아무리 서울인들 예술고등학교가 아닌 일반고등학교는 저에게 그다지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가고 싶은 고등학교를 가지 못한 실망감이 상처가 되어 그때부터 집보다 교회를 찾아 친구들과 어울렸습니다.

 

# 음대에 가지 못할 바엔 대학은 큰 의미가 없어, 아버지 뜻대로 공무원이 되다.

일반 고등학교로 갔지만 마음속에 품은 성악가의 꿈은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고교 3년 동안 남몰래 키워온 꿈을 드디어 대학에서 풀어놓을 차례가 왔지요. 하지만 여전히 아버지는 “나는 대학 가는 것 보다 국가공무원 생활을 하는 것이 좋을 듯싶구나. 우리 집 가정 형편도 생각해야지.” 아버지 말씀을 듣고 우리 집안을 보니 형제는 6남매, 무엇보다 아들 중 막내인 제가 대학에 간다면 가난은 더욱 살쾡이처럼 우리 집안을 할퀼 것 같았습니다. “특히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음악 하는 것은 반대다.”라는 아버지를 설득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음악을 하지 못할 바에야 대학은 그다지 제겐 의미가 없었죠.

아버지를 거역할 수 없어 당신이 원하던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업무를 하면서도 늘 마음 한구석에는 ‘이건 내 길이 아니야. 여긴 내 자리가 아니야.’ 라는 생각이 한시도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어요. 몇 번의 계절이 바뀌고, 한 해가 가고, 나이가 들어가고....

 

# 공무원생활 청산, 기초없이 음악대학에 진학

해가 갈수록 음악과 저를 분리해서 살아간다는 건 그다지 의미가 없었어요. 날마다 제 윗주머니에 사직서를 넣고 다녔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드디어 결심을 하고 사직서를 제출했지요. 선배들과 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큰 용기를 냈던 겁니다. 막상 짐을 챙겨 돌아 나오는데 눈물대신 무거운 돌덩어리 하나가 치워진 느낌이랄까요? 제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짐을 느꼈습니다. 몇 년 동안 꿈이 사라져버렸다고 생각했거든요. 집으로 오는 내내 이미 제 속에는 ‘잭과 콩나무’처럼 꿈이 하늘 끝까지 다다른 것만 같았습니다.

늦게 꿈에 그리던 음악대학에 진학을 했습니다. 하지만 열정은 지나치게 컸지만 기초가 없다보니 제대로 노래가 되질 않았어요. 보통 음대에 온 친구들은 고등학교 기간 동안 과외다 뭐다하여 기초가 탄탄했는데 말입니다. 그 친구들이 공부할 동안 제가 했던 거라곤 노래를 가슴 속에 꾹꾹 누르고 산 것 밖에 없었어요. 이때가 가장 깊은 고뇌의 시간이었습니다. 가슴이 많이 답답했어요. 뭔가 될 것도 같은데 안 되는 거, 사람 참 힘들게 하대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복싱을 했습니다. 흠뻑 흘린 땀은 꽉 막힌 노즐 두서너 개를 펑 하고 뚫어버리는 시원한 기분이었지요.

 

# 항상 계획은 계획일 뿐, 모든 걸 두고 고향으로 내려오다.

대학 4학년 마지막 기말고사를 본 12월, 매일매일 새롭게 알아 갈 공부를 위해 과감히 비행기 위에 몸을 실었어요. 그리고 이태리에서의 7년, 그 시간은 과장을 좀 보태자면 저를 지구 세 바퀴 정도는 성장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때부터 한국으로 돌아 온 저는 소위 잘 나간다는 음악가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지요. 한국 정상급 성악가로 활동했고 여러 대학에서 외래교수를 했습니다.

그러던 중 태안에 계시는 어머니께서 사고로 크게 다치셨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순간 정신이 아득하대요. 어머니는 제 꿈의 원천이셨거든요. 망설일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걸 두고 급히 태안으로 내려갔습니다. 일은 다시 해도 늦지 않지만 어머니는 그렇지 않잖아요. 저의 손길이 어머니에게 위안이 된다면 그동안 쌓은 것들이 결코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어머니 곁에서 1년 반 동안 생활했습니다.

 

▲ 서산여성합창단

 

# 서산여성합창단과 함께 내 삶은 다시 시작되었다.

그때 고향에서 합창단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서산시에서 ‘서산시립합창단’ 단원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았습니다. ‘아 한발 늦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뭐 그다지 걱정은 안했습니다. 저는 그냥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서산여성합창단’ 단원모집광고를 냈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디션에 응시를 했습니다. 합창단을 구성하고 지휘봉을 잡는데 그렇게 재밌고 매력적일 수가 없어요.

저희 합창단원들은 주부에서부터 직장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시간들이 지그재그로 돼 있어요. 때론 “식구들 밥 챙겨주고 와서 연습해야 해요.” “오늘 야근이라 조금 늦어요.” 이런 저런 이유로 일주일에 한번, 늦은 밤 여덟시부터 열시 내지는 열시 삼십분까지 겨우 교회 본당을 빌려 연습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각자 회비를 내서 간식을 먹고 특강을 듣고..... 열악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래가 좋아 노래를 했던 것이 저희 서산여성합창단이었습니다.

 

# 서산여성합창단 충남합창경연대회 참가, “귀가 열린 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

서산여성합창단은 창단하자마자 ‘상을 타야하는 욕심보다 그냥 남들은 어떻게 하는지 한번 나가보는 것도 필요하겠다.’ 싶어 처음으로 충남합창경연대회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출연했던 군립·시립·사립 등 대부분의 참가팀 실력이 아주 좋았습니다. 그때 저희 서산여성합창단 단원 한분이 이런 말씀을 하더군요. “아, 귀가 열린다는 것이 바로 이런 거군요. 저 사람들 정말 잘하네요. 우린 모두 비전공자니까 연습만이 살길인 것 같습니다.”

실전을 한번 경험 해 보더니 우리 단원들의 생각이 확 달라짐을 느꼈습니다. 제가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스스로 깨우친 거죠. 이렇게 우리의 첫 출연은 배운 것이 너무 많은, 아주 소중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단원들, 입상을 하지 못해 풀이 죽어 있길래 제가 말했습니다. “내년에는 꼭 1등 합시다.”라구요.

사실 우리 회원들은 30명중 단 한분만이 전공자입니다. 그러니 악보 보는 방법도 절반은 몰라요. 합창이란 의미는 더더구나 모르고 있구요. 그냥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의 모임 정도로 생각하고 지원했던 그런 분들이예요.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각자 노래하는 개성이 너무 강하더군요. 하지만 첫 출연을 계기로 우리 단원들은 그들 스스로 하나하나 깨우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끊임없는 연습을 통해 화음으로 마음을 다지는 서산여성합창단이 되어갔던 거죠.

 

# 끊임없는 연습의 노력으로 서서히 서광이 비치기 시작하다.

분위기에 따라 좌지우지되던 단원들의 마음가짐이 한차례 출연만으로도 그렇게 단단하게 다져질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때부터 대회에 나갈 일이 있으면 1주일에 한 번 하던 연습을 대회 두 달 전부터는 두 번으로 변경하여 몰입하게 되었지요. 사실 우리 단원들의 한 분 한 분 기질이 얼마나 강하던지 제가 혀를 내두를 정도였습니다. 한번 해보겠다는 의지가 있어 그런지는 몰라도 발전하는 모습이 눈에 확확 들어왔어요. 우리의 항해는 지칠 줄 모르고 늦은 밤까지 이어지곤 했습니다.

순수하게 노래를 좋아하는 단원들의 화음을 들으며 어떤 곡이 그들에게 어울릴지 고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에 맞는 선곡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평소 저는 단원들에게 "우리 서산여성합창단의 고유 특색을 가지고 소리는 부드럽고 둥글게 자연스럽게, 피치는 정확하고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진실된 표현을 강조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그것이 적중했고 우리에게도 서서히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 한상식 서산여성합창단 지휘자와 단원들

 

# “저희를 무지에서 끌어낸 것은 지휘자님의 손끝입니다.”란 말에 힘 솟아

서광이 비치기까지는 저희 단원들의 마음 씀씀이가 한 몫을 차지했습니다. 튀는 분이 단 한분도 계시지 않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 순수하십니다. 흩어지는 각 파트를 추스르기 위해 리더십이 강한 분들을 중심으로 파트 장을 맡겼어요. 숨겨져 있는 능력들을 끌어내 보니 그렇게 출중할 수가 없어요. 솔직히 말해서 예술인들은 기본적인 고집이 있지 않습니까? 이 모든 부분을 적절히 잘 추슬러서 동반 성장을 할 수 있도록 가교역할을 해 줍니다.

지난번 단원 한 분이 저에게 “우리 지역에 지휘자님 같은 분이 계시다는 것이 정말 감사해요. 어디서 월급 받는 것도 없이 평택에서 달려와 주신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예요. 그렇게 열정적으로 해주시니 무엇으로 보답을 드려야할지. 아무튼 감사합니다 지휘자님. 저희를 무지에서 끌어낸 것은 지휘자님의 손끝입니다.”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그분의 말씀에 “저는 아무래도 괜찮습니다. 그냥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예요. 좋아서 하는 일은 돈 주고서도 하지 않습니까? 걱정 마시고 함께 최선을 다하면 더 좋은 결과들이 줄을 이을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 전국합창경연대회 동상, 대구세계합창경연대회 금상 수상

우리 단원들의 가장 큰 장점은 응집력이 좋다는 것입니다. 첫 해, 실패의 아픔을 겪고 난 후 드디어 1년 만에 대상의 열매를 안았습니다. 연이어 대구세계합창경연대회에서도 금상의 기쁨을, 예선통과마저도 힘이 든 전국합창경연대회 동상. 서산시합창경연대회에서는 대상을 수상하였습니다.(참고로, 한상식 지휘자는 3월에 태안군립합창단 지휘자를 맡았으며, 그해 8월, 한중국제합창제에 나가 17개 합창단 중 1등인 금상을 수상) 물론 대회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가끔은 바람 쐬러 가는 것도 공부가 되고 경험이 되는 것 같아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 단원들이 대구세계합창대회, 대통령상 전국합창경연대회에서 입상을 하고부터는 누구보다 씩씩하고 자긍심이 높으며, 무엇보다 협동심이 남달라졌어요. 사실 우리 합창단은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가난합니다. 하지만 단원들의 모습을 보면 그렇게 부자일 수가 없어요. 기죽거나 슬플 겨를이 없습니다. 이보다 더 씩씩한 합창단원들이 있으면 나와 보라 그러세요(웃음). 또한 서산시에서도 관심과 지원을 해주셔서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 2018 제2회 한중국제합창제에서 열창하고 있는 서산여성합창단

 

# 서산여성합창단의 노래를 들으며 세상사람 모두가 행복하기를

씩씩하고 용감한 저희 단원들은 내년에 다시 전국 합창경연대회에 참가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연습에 매진하고 있지만 대회가 코앞에 다가오면 일주일에 두 번씩 시간을 맞춰가며 조율합니다. 그럼에도 단원들은 서로를 배려해 주느라 여념이 없어요.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가 부르는 합창이 단원들 모두를 엮어주는 가교 역할을 또 해주네요. 나아가 노래는 합창단 단원들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행복을 선물하는 멋진 보고입니다.

한 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 저는 우리 단원들이 음악에 대한 마음과 공동체 생활에 대한 바르고 넓은 마음가짐을 지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지금도 잘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더 그랬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때로는 ‘내가 하는 것이 과연 잘 하고 있는 것이긴 한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분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줘야지.’라고 시원하게 답을 던져줍니다. 용케도 힘든 와중에도 불구하고 저를 믿고 따라와 주는 단원들에게 늘 감사함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저는 우리 단원들과 함께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소리가 합창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에필로그>

합창에서는 어디까지나 전체의 목소리가 조합(Blending)이 되어 하나의 아름다운 소리가 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단원들 목소리의 떨림과 듣는 사람들의 가슴에서 하나의 작은 감동이 되는 것. 아 이것이야말로 음악이 사람을 살리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아무쪼록 저희 서산여성합창단에게 늘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날이 상당히 추워졌습니다. 내일부터는 솜털처럼 따뜻한 시선으로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12월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미리 인사드립니다. 메리크리스마스.


최미향 기자  vmfms083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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