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런 선조와 부끄러운 후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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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선조와 부끄러운 후손들
  • 류종철
  • 승인 2018.01.25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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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류종철

역사를 기술할 때에는 왕조 중심의 역사와 민초들의 삶을 기초로 하는 역사가 있다. 우리는 왕조 중심, 즉 지배계층 중심의 역사 서술에 익숙해져 있지만 필자는 가끔 민초들의 생활상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서를 찾는다. 거기에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시대상을 반영한 살아있는 현장이 보이고, 가끔은 천편일률적인 역사적 평가가 시대정신을 반영하면 달라질 수도 있음을 발견한다.

그러나 아무리 가치관과 역사관이 변하여도 누구에게나 자랑스러운 민족의 영웅이 존재하고, 이념과 시대가치를 초월하여 존경받는 선조들이 있다. 그들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선조들이고 그 문중 또한 자랑스러운 집안이다. 특히 직위의 높음을 유별나게 중시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족보에서부터 묘비명까지 선조의 직위는 가문의 명성을 좌우하는 바로미터다. 요즈음은 많이 희석되었지만 문중의 本이 어디이고 무슨 파 몇 대손이냐는 결혼 전 양가집에 인사갈 때 어른들이 물어보던 제1질문이 아니었던가?

우리에게 명문가는 무엇인가? 대부분의 명문가는 선조들의 벼슬의 높낮이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직위에서 얼마나 백성들의 삶을 보살피고 맡은 직책에 충실하여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느냐 보다는 벼슬이 어디까지 올랐느냐가 중요한 평가 포인트이었다는 것은 참으로 불합리한 잣대다. 그러나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가치관이 변해도 늘 푸른 소나무처럼 민족의 추앙을 받는 역사적 인물들이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선공후사(先公後私), 개인의 안위나 이득보다는 사회나 민족, 인류를 위해 행동하였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런 분들을 민족적, 인류적으로 존경하는 선조로 자랑스러워하는 것이고, 이런 선조를 가진 가문의 후손들은 가문의 영광으로 조상들을 자랑으로 여길 만하다.

그러나 이런 자랑과 긍지가 위대한 선조를 가졌다는 것 자체에만 머문다면 그 의미는 많이 퇴색될 것이고, 오히려 후손들 자신들의 행위나 그에 따르는 평가가 그 조상의 명성에 먹칠을 하는 경우가 너무나 비일비재하다.

충무공 이순신은 우리나라의 영웅이다. 좌와 우를 떠나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그는 시대를 초원한 민족의 영웅으로, 그의 가문도 당연히 명문가로 존경을 받아 마땅하다. 다만 그런 영웅을 선조로 가졌다는 것은 명문가의 필요조건이지 그것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명문가는 그런 영웅적 삶을 살다 간 선조들의 정신을 존경하며 늘 행동으로 따르고자 하는 의지가 무의식 속에서도 발현될 수 있는 그런 후손들이 있을 때 진정한 의미의 명문가로서 존경을 받을 수 있다. 친일을 했던 사람이 쓴 현충사 현판의 교체를 요구한 종부(宗婦)와, 친일을 했던 그 대통령도 임금과 같은 존재라는 종친회 간부간의 다툼은 명문가의 후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유신 독재에 앞장서거나, 국가유공자 집안의 후손들이 눈앞의 이득을 좆아, 혹은 일신의 영달을 위해 부끄러운 행동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조상을 욕보이는 행동은 가문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기업, 언론, 학교 등 사회적 평가와 명예를 중하게 여기는 집단은 자랑스러운 역사를 갖고 싶어 하며, 그런 역사를 긍지로 여기며 자랑스러워한다. 그러나 때로는 부끄러운 과거를 숨기거나 역사를 왜곡하기도 한다. 모두 다 훌륭한 전통을 가질 수는 없다. 누구나 가끔은 판단의 잘못에 따라, 혹은 시대의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정도를 벗어 난 행위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행동을 지속적으로 하거나, 과거의 잘못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숨긴다면, 그 집단은 이미 명문이 아니다. 그 행위에 대한 대중의 용서는 잘못된 선배들의 과거에 대한 진솔한 고백과 반성, 그리고 다시는 그런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필요조건이다. 그 다음의 평가는 민중들의 몫이다.

언론은 진실보도와 권력에 대한 견제가 제1의 존재가치며 덕목이다. 이를 전통적으로 최고의 가치로 여기면서 예로부터 현재까지 항상 그 가치를 지켜오고 있다면 그 언론은 명문 언론이다. 유신시대를 대학에서 보낸 60대 세대는 그 엄혹했던 시절의 언론의 투쟁사와 그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을 똑똑히 기억한다. 그때 동아일보의 광고탄압사건은 세계 언론사에 거의 전무후무한 자랑스러운 우리세대 동아일보의 투쟁의 역사다. 일본점령기 시절 손기정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시상식 사진에서의 일장기 말소사건 등에서 보여주던 숭고한 역사와, 유신에서 반독재의 첨병으로 일신의 안위는 뒤로하고 오직 언론의 독립과 진실보도를 위해 모든 탄압에 저항하던 선배 언론인들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런 명문 정론지 동아일보의 후배기자들은 그 역사가 진정으로 자랑스러운가? 가정교사를 해서 푼푼이 모은 용돈으로, 광고탄압을 받던 언론에 무기명 후원광고를 내던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언론인으로 정도를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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