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종철

예로부터 세금 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오직하면 세금을 걷는 공직자를 뜻하는 세리는 성경에서 조차도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동서고금을 망라하고 무서운 존재, 피하고 싶은 사람 등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런 부정적 이미지의 세금은 왜 필요할까? 세금은 우리의 공동체를 정의롭게 평화롭게 잘 유지하기 위한 공동의 비용이라고 생각한다. 나라의 세금은 국가를 외부의 적으로부터 지키는 데 필요한 국방비, 공동의 복지를 위한 예산, 그런 공적인 일을 우리 국민들을 대신하여 집행하는 공복들의 봉급 등으로 사용되며, 개인이 각자 할 수 없는 일을 공동으로 하기 위한 당연한 부담금이다.

이런 세금을 운용하는데 꼭 지켜야 할 몇 가지 원칙이 있다. 부담이 공평하여야 한다는 것이 제일 조건이다. 여기서 공평함이란 수치적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공감하고 수용하는 원칙, 즉 조세법에 의해 능력별로 공평하게 부과됨을 의미한다. 공평과세가 이루어 져야 세금을 많이 낸 사람은 존경을 받고, 가난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은 세 부담으로 인한 마음의 부담으로 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다. 다음으로 세금 운용의 원칙은,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구성원들의 합의 아래 우선순위를 정해 공정하게 낭비 없이 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세금을 많이 내느냐 적게 내느냐의 관점보다는 꼭 필요한 곳이 어디냐의 합의가 중요하며, 오히려 힘이 없고 가난한 구성원을 보호하고 구휼하는데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세금 부담의 많고 적음에 따라 세금 혜택의 크고 적음이 정해진다면, 또는 힘 있는 자들을 위해 우선적으로 사용되어 진다면, 공동체의 평화로운 유지를 위한다는 세금의 본래 취지와는 다른 것이며, 공동체의 세금의 존재 의의가 없다고도 볼 수 있다.

한편 우리는 각종 기부금을 독려하는 캠페인을 늘 접하게 된다. 사회 봉사단체로 부터의 기부금 모금, 시민단체, 장애인단체 등 기부금을 권유하는 곳은 너무나 일상적이다. 나는 세금 이외에 기부하는 곳이 몇 곳이나 되며, 얼마나 될까? 내가 기부하는 단체들은 모두가 다 좋은 일을 하는 곳들이다. 마음 같아선 도움이 필요한 모든 곳에 많은 기부를 하여 선한 사람들이 나 대신 옳은 일을 하는 것을 도왔으면 좋겠다. 그러나 현실은 늘 그렇지 못하다. 각종 핑계를 대면서 기부를 회피하곤 하는데 속마음은 편치를 않다.

공평과세와 공정한 집행이 완벽하게 잘 이루어지면, 준조세 성격을 가진 기부금은 존재 근거를 상실한다. 아니 없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국가가 공평하게 거둔 세금으로 장애인, 고아원, 양로원, 희귀병 환자, 경제적 약자 등을 보호하고 지원하면 이론상 완벽하다. 세금을 충실히 내면, 기부금을 안내서, 또는 못 내서 오는 심적 미안함을 아니 가져도 된다.

그러나 우리는 안타까운 현실을 본다. 편법 증여로 수 조원의 세금은 탈루하고, 문제가 되면 그 중 몇 조를 사회적 약자를 위해 기부하는 재벌들의 억지 기부문화를 우리는 너무나 일상적으로 마주보고 있다. 무슨 문제가 터지면 그 잘못의 면책을 위해 억지로 하는 기부, 이제는 사회적 의무를 성심으로 이행하면서 존경 받는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일상적으로 만나는 그런 사회를 보고 싶다. 그런 사회에서는 기부금 안 낸다고 비난 받거나, 기부금 못 낸다고 부끄럽고 미안해하는 그런 일은 없을 테니 보통사람들은 마음의 부담을 훨씬 덜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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