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만진

자연에는 두 가지의 법칙이 있다. 첫 번째는 절약의 법칙이고, 두 번째는 연속의 법칙이다. 자연은 언제, 어느 때나 최단의 경로를 행하고, 자연은 변화가 필요할 때에도 논리적인 비약을 하지 않는다. “오른쪽 눈은 가자미/왼쪽 눈은 넙치//그러나/바닷물고기 나라에서는//좌파라/우파라//울근불근/서로 싸우지 않는다.” 박만진 시인의 아홉 번째 시집인 『바닷물고기 나라』는 이처럼 순수하고 꾸밈이 없지만, 그의 삶의 지혜는 인간의 사상과 이념마저도 너무나도 분명하고 명확하게 뛰어넘는다. 좌와 우, 진리와 허위, 선과 악 등, 모든 것이 가능하고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룬다.

 

『바닷물고기 나라』박만진 작가는?

박만진 시인은 1947년 충남 서산에서 출생하였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 수료. 1987년 1월『심상』신인상으로 등단하였다. 1987년 2월 첫 시집 『빈 시간에』를 출간한 이래 『슬픔 그 껍질을 벗기면』, 『물에 빠진 섬』, 『마을은 고요하고』, 『내겐 늘 바다가 부족하네』, 『접목을 생각하며』, 『오이가 예쁘다』, 『붉은 삼각형』등 8권, 시선집 『개울과 강과 바다』를 출간했다. 충남문학대상, 충청남도 문학상, 현대시창작대상, 충남시인협회상 본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현재 서산시 평생학습센터에서 시 창작 강의를 하고 있다.

 

- 평론 -

황정산 (문학평론가. 대전대 교수)

 

호밋자루를 잡고 풀을 매는 할미와

할미의 손을 잡고 풀을 매는 호미가

닮아도 많이 닮았다.

 

초여름 띄약볕은

내리쬐는데,

 

호미 할미의 혼잣말과

할미 호미의 혼잣말이

동구 밖에서도 낯설게 들리지 않는다.

- 「채마밭 오후」전문

 

시를 쓴다는 것이 이 시(「채마밭 오후」)속의 “할미”의 호미질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는 작품이다. 호밋자루를 쥐고 있는 할미의 손과 그 손을 닮은 호미와 그 호미가 만지는 자연의 흙이 함께 만나는 순간을 시인은 포착하고 있다. 거기에서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리는 할미의 혼잣말과 호미가 땅을 파면서 내는 소리가 모두 어우러져 혼연일체을 이루고 있다. 어쩌면 이 소리가 가장 아름다운 소리이고 가장 신실한 소리일 것이다. 시인이 언어를 통해 찾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소리이다. 인간과 자연이 노동을 통해 가장 긴밀하게 만나는 순간, 그 순간에서 나오는 거기에 삶에 진실과 세상의 이치가 다 들어있다. 시인은 이 시간을 언어로 재현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이번 시집 여기 실린 시들이다.

박만진 시인의 시들은 순박하다. 순박하다는 것은 촌스럽고 유치하다는 것이 아니라 꾸밈이 없다는 것이다. 꾸밈없는 언어로 박만진 시인은 자연을 만나고 자연을 다시 인식하고 자연을 표현한다. 그리고 그 자신도 그의 언어도 이 자연을 닮아 간다. 이 자연을 닮은 순박한 언어로 시인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 사유가 깊어질수록 언어가 단순해진다는 진실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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