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케미칼 하청노동자

우리 노동자들은 물건들을 생산, 유통, 판매하는 일들을 하며 살아가며 그것을 소비하는 소비자의 대다수도 바로 우리 노동자들이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자면 생산, 유통, 판매, 소비 과정에서 발생하는 쓰레기, 즉 폐기물을 수거, 분류하고 그것을 재활용하고 최종적으로 재활용이 불가능한 것들을 땅 속에 묻는 것도 노동자들의 일이다.

우리 노동자들이 하는 일이란, 우리들의 삶 자체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삶 자체인 이 전반의 과정에서 우리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소외당한다.

우리는 우리가 생산-소비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어떤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간과 환경에 얼마나 유해한지 알지 못한다. 가습기 살균제, 살충제 계란, 생리대 문제 등에서 보이는 것처럼 기업과 정부는 안전하다고만 하며 문제가 발생한 후에도 사태를 축소, 은폐하기에 여념이 없다. 물론 이만큼 알려지게 된 것도 시민사회단체들의 노력 덕이지만 그 노력이 무색할만큼 하루에도 수십, 수백가지씩 새로 만들어지는 제품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기업의 영업비밀을 위하여 우리는 또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없는 제품들을 소비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생산-소비 과정에서의 소외는 폐기물의 처리 과정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지곡면 산업폐기물 매립장이 그 단적인 예다.

산업폐기물이란 공장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들이다. 그 중에서도 ‘지정폐기물’은 소량만으로도 인간과 환경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어서 특별히 국가가 관리하는 폐기물이다.

예를 들어 석면이 있다. 이러한 고위험 폐기물이 두려운 것은 소량이라도 인체나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도 하지만 종류에 따라서는 수년, 수십년의 잠복기를 거쳐 증상이 드러나거나 수십, 수백년에 걸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렇듯 위험한 폐기물이기에 국가가 관리한다고는 하지만 그 관리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폐기물 처리를 맡은 업체는 주민설명회나 환경영향평가 등을 요식행위로 진행하고, 주변지역 이장들에게 발전기금 명목으로 돈 몇푼씩 안겨주고 공사를 강행한다. 허가권자인 환경부는 서류로만 대충 심사하고 절차상 문제가 없다며 나몰라라 한다. 서산시는 폐기물 매립장이 들어설 것을 알고도 주변에 아파트에 어린이집까지 짓도록 했고, 자신들은 권한이 없다면서도 반발하는 주민들을 불순세력으로 매도하고 있다.

과연 산업폐기물 매립장이 반드시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그 규모나 장소가 적정한지, 예상되는 피해나 대책 등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는지 등등 따져보아야 할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닌데도, 이러한 것들을 제대로 다시 따져보자는 노동자, 시민들의 요구는 철저히 외면받고 묵살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1차적인 원인은 기업들의 탐욕 때문이다. 기업은 이윤을 위해서라면 노동자, 시민들의 건강이나 환경적 파괴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따라서 건강이나 안전, 환경에 문제가 없는지 면밀히 따져보려는 노동자, 시민들의 요구는 묵살하거나 부차적으로만 고려될 뿐이며 노동자들에겐 고용안정과 임금을 고리삼아, 지역주민들에겐 발전기금과 위락시설의 설치 등을 미끼삼아 침묵을 강요한다.

또 다른 원인 제공자는 서산시나 충청남도, 정부 등에서 일하는 위정자들이다. 절차적 정당성(그마저도 정당한지 따져보아야 할 일이지만)을 핑계로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하며 결과적으로는 노동자, 시민들의 요구를 외면하고 기업들 뒤봐주기에 여념이 없다. 이들이 뒤를 봐주는 기업이 단지 산폐장 공사를 하는 업체나 운영하게 될 업체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산폐장 건설을 강행하도록 함으로써 오히려 겉으로는 별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지정폐기물을 발생시키는 기업들을 간접적으로 돕고 있는 것이다.

‘폐기물관리법’ 기본원칙에 따르면 사업자에게 우선적으로 생산방식 개선 등을 통해 폐기물 발생을 최소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소각, 매립에 앞서 재활용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라고 하고 있다(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폐기물관리법 3조의 2 폐기물관리의 기본원칙 참조). 이에 따르면 행정관청들은 기업들이 폐기물 발생을 최소화, 재활용이 우선되도록 투자를 유도하거나 관리감독해야하고 그럼에도 발생할 수밖에 없는 최소한의 폐기물만을 소각, 매립하도록 해야한다. 그런데 오히려 작금의 행정관청은 폐기물 발생량을 부풀리고 소각장이나 매립장의 건설과 증량의 정당성을 확보하기에 여념이 없다. 폐기물 발생량을 줄이기 위한 투자보다는 폐기물 처리 위탁 비용이 훨씬 싸게 먹히는 기업들의 이해를 충실히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과 그들의 뒤를 봐주는 위정자들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지만 우리 노동자, 시민들도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먹고 사는 일이 힘들어서, 해고나 고소고발 등의 위협이 무서워서, 그냥 귀찮아서 이런 문제들을 외면하고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때이다. 때 되면 월급 나오고 짤리지 않고 계속 일하는 것만 해도 감사하다는 생각으로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눈꼽만큼의 임금인상이나 몇푼 안되는 보상금으로 위안을 삼으며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삶과 생활이 망가지는 것을 외면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말이다.

임금과 고용의 노예가 아닌 내 삶과 생활의 주인으로서 당당하게 말하고, 요구하고, 행동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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