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기 욱 서산시의회의원

날카롭게 짖던 소리가 사라졌다. 그곳만 가면 언제나 철천지원수 인 양 마구 짖어 대던 소리가 갑자기 뚝하고 그쳤다.

할아버지 말에 따르면 불쌍한 어린 새끼를 놔두고 엄마, 아빠가 가출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아직 걸음마도 떼지 않은 녀석을 버리고 어떻게 가출을 할 수 있지? 아무리 동물이라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40여 년 전 일이다. 외가에 식구가 늘었다. 개 2마리. 그런데 다가가기만 하면, 으르렁 짖기만 한다. 도통 정이 가지 않은 탓에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겨울밤, 새끼가 태어났다. 아무리 세어 봐도 내 눈에는 분명 1마리였지만, 할아버지말로는 2마리였다고 한다.

가출 사건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 발생했다. 언제나 처럼 적을 향해 맹렬히 짖던 그놈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남은 건 털이 보송보송 난 어린 새끼 강아지뿐, 새끼의 부모는 찬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그날 저녁 웬일인지 친지들이 모였다. 식사는 특별메뉴.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는 냄새들이 그날의 분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그 후 40여 년이 흘렀다. 가출 사건 재구성은 어렵지 않다. 사건의 핵심은 어른들의 거짓말이다.

그러나 어른들이 어린이들에게 하는 거짓말은 속임수와 구별된다.

거짓말은 배려가 묻어 있다. 그러나 속임수는 그렇지 않다. 속임수는 고도의 사전 전략에 따른 자기 이득 추구다.

정치인들은 거짓말쟁이라고 한다. 과연 정치인들에게는 시민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를 가지고 있나?

지금 한국 정치는 총체적 난국이다. 돈을 준 사람은 있는데 받지 않았다고 한다. 이제는 정치가 심리적 충격을 넘어 무관심이라는 종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이러한 정치 부진 속에서 한국 사회가 당면한 최대 과제는 빈부격차를 비롯한 불평등의 심화다.

한국 민주주의의 질식이나 마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부정부패나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는다는 조치를 훨씬 넘어선 구조적 정치 개혁이 시급하다.

정치개혁에 앞서, 이왕 시민에게 거짓말쟁이라 낙인찍혔다고 한다면 정치인은 시민에 최소한의 배려를 보여 줄 의무가 있다.

정치에 발을 내 민지도 벌써 5년째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과연 시민에게 배려 깊은 정치를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 옛날 외조부의 거짓말은 어린 나를 위한 배려였다. 이후에도 이러한 부모들의 가출 사건이 이어졌지만, 나름대로의 사건 재구성을 통해 가출이 아닌 다시는 못 볼 곳으로 영영 떠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지금 우리 정치인에게는 이처럼 따뜻한 배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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