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한 승무도 중고제 판소리도 포기 않는다”

지난 20일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전수조교 이애리 씨를 만났다.

어르신들과 승무연습에 한창이던 그녀는 다른 때와는 달리 조금 들떠 보였다. 이유를 묻자 발랄한 표정으로 미국에 간다고 했다. 미국 방문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물론 놀러가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는 그녀에게 아주 소중한 사람이 살고 있다. 국내에서는 대가 끊긴 중고제의 마지막 유전자를 간직하고 있는 심태진(94·심상건의 딸) 선생이 바로 주인공이다. 어렵게 연락이 닿은 끝에 지난해 1월 만사제치고 미국으로 날아가 열흘간 중고제 소리를 온 몸의 세포에 각인하고 돌아왔지만 너무나 짧은 기간이라 아쉬움이 더 컸다.

이번 방문은 6월 20일부터 8월 2일까지로 꽤 긴 시간이 허락됐다. 그녀는 이번에야 말로 중고제의 모든 것을 전수받아 오리라 각오가 대단했다. 태어나서 처음 본 심태진 선생의 중고제 소리에서 외할머니 심화영 선생(충남 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2009년 작고) 의 모습을 본 그녀는 큰 충격에 빠졌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조금은 잊고 지냈던 중고제 소리에 대한 강렬한 추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번 방문에서는 중고제 가야금 병창에 이어 산조를 배워올 예정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그동안 조바심으로 애를 태웠던 그녀이기에 이번 미국 방문은 너무나 특별하고 소중하다. 자신의 전공인 승무를 지켜내기에도 벅찬 현실이지만 외할머니의 중고제 소리가 소리 없이 명맥이 끊기는 것은 그녀에게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현실이다.

월등한 예술적 유전자를 지닌 심정순 일가의 마지막 계승자란 위치는 한없는 자부심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큰 짐이기도 하다. 늘 곁에 있어 줄 것만 같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는 그 무게가 더 힘겹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녀는 짐을 내려놓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지켜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질 만큼 코흘리개 시절부터 보아온 할머니의 춤사위와 소리는 그녀에게 있어 대단했다.

비록 세상의 현실은 이런 그녀의 마음과는 동 떨어져 있지만 이제는 제법 자신감도 붙었고, 거기에 오기도 생겼다.

“심태진 선생님이 떠나시면 중고제 소리도 명맥이 끊어집니다. 아마 하늘에 계신 할머니도 어렵더라도 제가 안고 가길 바라실 겁니다. 해야죠, 제가 살아 있는 한 승무도 중고제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라며 웃는 그녀는 변변한 연습실도 든든한 후원도 없는 척박한 현실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다만 “할머니 마냥 춤과 소리에 미치지 못하면 어쩌나?”하는 의문이 들 때라고 했다. 역시 그 할머니에 그 손녀, 피는 못 속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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