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숙/서산시 수석동 수필가

가문 날에 잡초덜은 말이 읎었다. 왜냐허먼 흙이 말러 풀뿌리 적실 물이 읎었거든 그래서 사람과 잡초덜은 하늘에서 비 오기만 학수고대 허먼서 기다리지유.

기상관측소에서는 메칟날 비온다구 뉴스가 나오자 다들 그 날만 기다리는디 비는커녕 물 한 방울 오지 안으니깨 애매한 티비만 나무라덩걸유. 누구라구 댈 것은 읎구 우리 동네 팔십이 넘은 할머니 두 분이 어깨너머로 겡신히 배운 글이 멧개 있는디 비가 궁금허먼 즌화를 걸어서 “거기가 기상대지유? 메칟날 비가 오나 허구 물어보능거유”

즌화를 끊은 할머니 혼자 궁시랑 거리는디.

“앞으로는 비가 아주 읎대유, 그러니깨 콩은 원제 심어야 허나, 하느님두 무심허지 심은 곡식두 다 타죽어가너먼.”

“어이, 고씨 할매! 교회두 안댕기먼서 하느님은 왜 찾능거유?”

“원!”, “교회 댕기나 안댕기나 다덜 찾더먼 괜스레 나만 가지구 그러네.”

“됐씨유” “되긴 뭐가 됐다는 거여.”

두 분은 육십년지기로, 격의 없는 대화는 물론 시장이나 동네 마실도 함께 가고 꼭 붙어서 다니는 분들이다. 오늘은 비가 기상대 말대로 진짜 왔다. 처마 밑이 읎으니깨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도 그리운 시상이여, 비 오는 날은 허구 싶은 것이 여간 많어야지 책도 읽고 싶구 제일 편하게 누어 뒹굴어 보고 싶기두 허구. 광도 치우고, 옷장 서랍도 정리 허구 싶구. 눈으로 보나마나 여름이면 허구 헌날 쓸디읎는 잡초덜이 불러대니깨 항상 쫓기는 것은 촌 아낙들인걸.

요즘은 장마라고 혀두 비가 써비스 맛배기루 하루 오면 그치구 집 귀텡이나 밭 모텡이는 하룻밤만 자구나와두 풀 천지라, 오죽허먼 겨울에도 얼어 죽지 않는 큰개불알꽃을보고 “너는 도대체 여리고 여린 잎을 가지고 워쩌면 얼어죽지도 않고 꽃을 피느냐”고 중얼거려 본다.

복중이라 낮에는 숨이 턱까지 차오르구 말여 일찍부터 밭에 나간다고 헤두 아침 먹구 설걷지허구, 바람난 츠녀 달구새끼(닭) 멕이두 주어야허구 달구새끼 한 마리가 알을 제법 낳더니 서방 생각에 빈둥지에 앉어서 꾸룩 거리구 나오지두 안는디, 그래두 멕이는 주어야지유.

잡초와 수다를 떨러 가는 길은 챙기야 헐 것두 많다. 깔방석을 챙기구 장갑・모자・호미・핸드폰 나의 분신처럼 따라다는 소품들. 옛날이는 이런것들이 워디가 있기나 헷슈? 요새니깨 있지유. 워쩌면 저렇게두 풀이 많이 나 쟁였을까 보기만 해두 금찍 혀유.

수정같은 이슬 방울이 잡초 머리에 올러 앉어 써커스를 허는디 참 묘허당께유. 이슬방울이 떨어질 것 같으먼서두 안 떨어져유.

방석을 깔고 앉아서 어느 것부터 제거를 헐 것인가 궁리를 허는 참에 메꽃이 분홍 입술루 나를 유혹 허는 것이다.

“그려!” 유혹 허는디야 나두 별 수 읎지 한 송이를 꺾어서 입맞춤을 해주구 냄새도 맡어 보지만 향이 읎다. 사람에게도 향기가 있어야 하거늘, 향 없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모내기 할 때는 비켜 갈 수 없는 일이다. 남편은 대상포진을 앓으면서 힘겹게 모내기를 했다.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위안 삼아서 향기나는 소리를 해 보았다.

“모내기 허느라구 수고가 많었슈, 내가 어께를 주물러 줄께유”했더니, “싫어! 그만둬” “왜 싫은거유” 어께에 올러앉은 투박한 내 손이 월매나 부끄럽던지.

쇠비름, 새콩, 개망초, 망초, 메꽃, 털별꽃아재비, 명아주, 바랭이, 박주가리, 강아지풀, 자리공 등 사람아닌 잡초도 다문화 시대.

“야!” 메꽃? 박주가리...?

콩을 칭칭 감으먼 워쳤게 허능거여 콩나무 허리가 부러지겄다. 인정사정읎이 두 것덜 넝쿨을 확 잡아 띁어내구 호미로 뿌리를 또 캐냈지 뭐유. “금방 나랑 입맞춤허구 왜? 나를 뭇살게 헌대유.” 낯짝이 뻘거득득한 쇠비름이 “남을 칭칭 감고 올라가니깨 그렇지” 메꽃은 다시 “쇠비름 너는 왜 낯짝이 뻘건가 유전자 검사를 해봐야 쓰겄다.” 털별꽃아제비풀이 조용히 말한다.

“나처럼 독한 냄새나 풍기고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크란 말여.”

털별꽃아제비는 국적 모르는 다문화 풀인데 연하면서 잘 번식이 되고 스컹크 냄새가 난다. 엄마를 닮아 생활력이 강한 개밀에게 호미를 댄다. 개밀은 떡잎 적에는 마치 보리와 같이 생겼다. 가늘면서 키가 크고 밀 이삭처럼 생긴 것이 내려다보고 한마디 거든다.

“허허!”

“독해두 달개비풀 만큼 독허것나? 달개비는 뽑아 마디를 잘라서 자갈 바닥에 놔두 끄떡읎이 여름을 나구 겨울이 와두 잘 얼어죽지 않는 시상에도 읎는 독헌 풀이여.

“개밀 너는 독허지 안은줄알어? 제초제를 주면 죽은척허구 쟁기로 잘러 놓아두 살구 말여, 봄이 되면 또 살어나잖혀.”

평생가도 꽃 한번 피워보지 못하는 쇠뜨기도 나선다.

“나도 마찬가지여 뿌리는 깊숙이 박혀서 나오지두 않구. 약을 먹어두 다시 살아나서 주인은 나 땜이 고생 좀 허지.”

“그래도 나는 얌전한 축에 들어간단말여, 밭고랑에서 조뱅이풀이나 큰 방가지똥풀을 만나봐야 뜨거운 맛을 알거여.”

“조뱅이와 큰방가지똥풀이 워첬게 생겼어?”

“이 밭에는 읎지만 저쪽 섬마을 밭에 가먼은 있어”

너네들 아주 모르는 사이구나?

“잎사귀가 삐죽뾰죽 순전히 가시로 생겨서 밭을 매다 잘못 앉으면 궁둥이는 그 날로 남의 것이랑께.”

더위가 푹푹 찌건만 어디 물한모금 먹을 데가 없다. 에둘러보니깨 밭 가생이에서 까마중이 주렁주렁 달렸다.

“밭에 너 같은 까마중이 있으먼 참 좋아.”, “나는 목마른 사람헌티 목축이는 봉사를 허잖유.”

여름이면 밥상에 나물로 잘 올라오는 참비름이 개망초를 놀린다. “묵정밭만 지키는 개망초꽃은 향이 있지만 망초꽃은 지저분하고 개갈 안나게 피구유, 키는 장대같이 높아 쓰잘데기 읎는 풀이어서 망초라구 헌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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