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장렬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사회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입니다. 그러나 삶의 현장에서 우리사회의 주인이 바로 '나'라는 사실확인은 불분명한 것 같습니다. 투표를 통한 지도자의 선거라는 정치체제, 납세와 국방의 의무라는 법률적 규정 그리고 이들을 작동케하기 위한 교육이 바로 국가와 국민의 관계 그리고 역할을 구분하는 수준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국가와 국민의 역할 구분에서 필자가 살고 있는 이곳 독일은 좀 더 분명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독일의 국가 운영자들 즉, 정치인들은 독일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정치적 현안과 사회적 문제에서 자국민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작업들을 선행합니다. 그리고 정책입안 과정에서 국민들의 의견이 그대로 반영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바로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인식이 교육을 통한 강요 전달이 아닌, 삶의 현장에서 잘 확인됩니다.

정치인들이 국민들에게 신뢰를 쌓는다는 일은 자신의 정치적 생명력과 연결되는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독일의 정치인들을 볼 때, 이들은 자신의 정치적 전문성을 통해 정치적 신뢰를 쌓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 독일 정치인들은 자국의 17기 원전 모두를 2022년까지 폐기할 것을 결정합니다. 사실, 독일은 원전을 통한 전기 생산이 80%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원전 의존도가 높은 친원전 국가에서 원전을 전면 폐기한다는 것은 단순한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원전대신 다른 방법으로 에너지 생산을 대처할 수 있는 제반시설도 기술력도 확보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원전사고는 독일국민들에게 너무나도 큰 재앙으로 인식됐고, 자국의 원전 안전문제는 무엇보다 가장 큰 관심사가 됐습니다. 연일 신문과 방송에서 일본의 원전사고 소식이 전해졌고, 자국의 에너지 정책과 대체에너지 생산 전략들이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논의되었습니다. 그리고 국민들이 요구하는 원전폐쇄는 선거에서 그대로 반영되었습니다.

또 다른 실례가 있습니다. 필자가 살고 있는 베를린시에는 폐쇄된 공항이 하나 있습니다. 독일이 분단됐던 시절, 구서베를린에 놓인 템펠호프공항은 통일이 된 오늘날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08년 공항 폐쇄를 결정한 베를린 시정부는 서울 여의도공원의 16배 규모의 부지에 주택과 도서관 등을 중심으로 다용도 문화 시설공간 건축을 계획합니다. 그러나 시당국의 재개발 계획은 베를린 시민들의 반대여론으로 무산되었습니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확대된 여론은 템펠호프 공항을 공원으로 조성해 그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해야한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이러한 여론은 시민투표를 감행하게 했고, 전체 투표자 64.3%가 결국 베를린 시당국의 재개발 계획을 반대했습니다. 바로 시민이 원하는 도시개발을 시당국이 받아들인 사례입니다.

독일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신뢰를 쌓기 위한 사례가 또 있습니다. 지난 3월 24일, 독일 루프트한자 소속의 저먼윙스 여객기 추락 사고가 있었습니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부조종사의 자살비행으로 귀중한 150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형사고였습니다. 이 사고로 독일 사회는 깊은 충격과 공포에 빠졌습니다. 이때, 독일정부와 정치인들은 사회적 충격과 아픔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합니다. 독일 정부는 해당 항공사를 중심으로 사고의 경위를 파악하고 사건 현장을 재빨리 수습하면서 그 경과를 언론에 공개했고, 정치인들은 유족들을 방문하고 조문하는 일들을 지속했습니다. 사고 가해자를 비난하거나 항공사에게 책임을 전가는 정치인들의 발언은 자제되었고, 전체 사회의 슬픔을 나누고자 연대를 강조하고 호소하는 발언들이 눈에 띄였습니다. 이러한 정치인들의 행보를 통해 국민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애도하는 성숙된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정치적 신뢰란 결국 국민들을 이해하고 이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과정이 지속, 반복될 때, 신뢰가 쌓이는데 이것이 바로 정치인들의 정치적 전문성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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