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이던 감태, 해외 고급레스토랑에 납품

청정지역에서만 생산, 앞으로 발전 가능성 무궁무진

씁쓰름하면서 감칠맛 나는 한국 감태, 세계에서도 찾기 힘들어

어떤 분야에서 기술과 재주가 뛰어나 이름이 난 사람을 우리는 ‘명인’이라 부른다.

한 TV프로그램은 ‘달인’이란 단어를 유행시켰는데 널리 사물의 이치와 도리에 정통한 사람이나 특정 분야에 통달하여 남달리 뛰어난 역량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 것으로 명인이나 달인이나 우리 같은 보통사람보다는 뛰어난 인물들을 말한다.

세상사가 복잡해지면서 수많은 명인이 탄생했는데 서산에는 감태명인 송철수(71) 씨가 있다.

떡국에 넣어먹거나 구워서 김처럼 반찬으로 먹는 감태는 사실 과거에는 별반 인기가 없던 식재료 중 하나였고, 생산되는 지역도 그다지 많지 않아 서산을 비롯한 서해안 일대의 주민들만 먹곤 했다. 이러한 변방의 감태를 우리 식탁의 주 메뉴로 격상시킨 인물이 바로 송 씨로 이런 공으로 지난해 서산시로부터 ‘감태명인’이란 칭호를 받았다.

한창 나이였던 30대 때 전라도 무안에서 감태와 첫 인연을 맺었으니 참으로 오래고 질긴 인연인 셈이다.

송 씨는 그곳에서 감태를 먹은 지 1년 만에 고질적인 위장병을 싹 고친 사람과 만났고, 그로부터 감태의 효능과 무궁무진한 앞으로의 발전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는데 아마도 감태명인을 만들기 위해 운명이 점지해준 사람인 듯싶다.

하여간 이 만남 이후 송 씨의 머릿속에는 감태가 날카롭게 각인됐고, 지난 1978년 김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 사업적으로 발전시킬 구상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사실 송 씨는 김과 관련해서도 서산지역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전통시장에서 바다식품이란 가게를 세워 누구보다 먼저 김을 판매하기 시작했고, 지금도 바다식품과 송원식품을 운영 중이다.

김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송 씨는 본격적으로 감태를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80년 대 중반부터 전국을 돌아다니며 감태를 상품화 시킬 방법을 찾았다.

당시 서산의 호리와 중왕리를 시작으로 전국의 해안가를 샅샅이 뒤지다시피 하며 지역에서 생산되는 감태의 특성을 파악하고, 주민들에게 옛날부터 전해내려 오는 감태 제조법 등을 배우느라 공을 들인 시간이 무려 10여년. 하지만 감태는 쉽사리 성공을 허락하지 않았고, 주변사람들도 ‘하던 김 사업이나 잘하지’하는 눈초리로 송 씨를 괴롭혔다고 한다.

만일 이때 멈췄더라면 지금의 감태 명인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겠지만 송 씨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국 감태를 상품화 시키며 특허를 따내는 성과를 이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을 증명해내자 감태는 세상에 조금씩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2000년대 들어 방송에 몇 차례 출연하면서 소비자들의 본격적인 관심을 받게 된다.

“상품화에 성공은 했지만 초장기에는 현상유지에 만족해야했습니다. 그만큼 감태라는 식품이 생소했던 거죠. 하지만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방송 출연도 잦아졌고, 결국 지난 2014년 대박을 치는 사건이 터지게 됩니다”

송 씨의 감태는 2년 전 TV조선의 인기프로그램이던 만물상을 통해 말 그대로 공전의 히트를 치게 된다. 예전의 방송출연이 기틀을 잡는 단계였다면 만물상은 스타로서 확실하게 자리를 잡은 계기가 됐다고 할 만큼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방송이 나가자 2만 원대에 팔리던 감태는 3만 원 선으로 가격이 껑충 올랐고, 현재도 이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는데 오랜 세월 김에 밀려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대단한 성공에 감태 명인이란 호칭까지 얻었으면 ‘이제 그만 됐다’는 생각이 들만도 하지만 송 씨의 감태 사랑은 끝이 없다. 요즘은 내친김에 감태를 가지고 세계시장 공략에 나섰는데 이러한 결정의 배경에는 든든한 후원군이 큰 용기를 줬다고 한다.

“고맙게도 아들과 딸이 가업을 잇겠다면서 일을 도와주고 있는데 앞으로는 이 친구들이 모든 일을 도맡아서 하고, 저는 뒤에서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겠죠. 젊은 사람들이 일을 추진하다보니 성과도 훨씬 좋아 앞으로 기대가 큽니다”

현재 송 씨의 감태는 미국과 유럽 등의 일류 레스토랑에 고급 식자재로 납품되고 있는데 최근에는 홍콩의 최대 물류업체와 접촉하며 해외시장의 판로에도 적극 나서는 등 본격적인 세계화에 시동이 걸린 상태다.

중국 해안가까지 찾아가 감태 맛을 봤다는 송 씨는 씁쓰름하면서 감칠맛이 나는 한국의 감태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며 대단한 자부심을 나타냈다.

이제 감태를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음식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감태명인 송 씨의 유일한 꿈이 됐다. 아직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평생을 감태와 함께 살아온 송철수 명인이라면 조만간 해내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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