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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산시대
  • 승인 2016.09.26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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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장렬

‘팸투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사전적 의미는 항공사나 여행업체가 관광상품이나 특정 관광지를 홍보하기 위해 여행사 또는 관련 업자들을 초청해 새로운 관광지를 무료로 시찰, 견학하는 여행을 뜻한다. 그런데 이 용어는 관광산업에만 한정되어 사용되지 않고 있다. 지난 9월 2일 시사저널은 국내 기업 H사가 8월 말과 9월 초 64개 언론사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진행한 대규모 팸투어를 폭로했다. 베트남에서 진행된 2박 3일 일정의 팸투어는 현지에서 저녁 식사를 겸한 기자간담회와 스토어 방문, 그리고 골프, 마사지 등 대부분 관광 위주로 전했다.

이 같은 팸투어는 H사 뿐만 아니라 국내 기업들이 언론사 기자들을 상대로 해외 취재를 다녀온 것으로 드러났는데, 김영란법을 앞두고 진행된 마지막 ‘팸투어’라고 시사저널은 전했다. 9월 28일 시행되는 “김영란법에 따라 앞으로는 기업들이 출입기자들을 데리고 해외 취재를 다녀오는 ‘팸투어’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라고 언급했다. 그래서 근간에 있었던 다양한 팸투어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는데, “각 기업 홍보팀도 더는 기자들을 데리고 가는 해외 취재가 어렵다고 판단, 법 시행 전에 출입기자들을 대상으로 부랴부랴 해외 취재를 다녀오는 것이다”. 그리고 시사저널은 덧붙여 한 사립대학교의 신문방송학과 교수님의 말을 인용한다. “사실상 외유성 해외 취재가 계속돼 왔다는 것은 기업과 언론 간 관계가 어떠했을지를 짐작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김영란법의 필요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국내 기업들의 ‘팸투어’는 유럽에서도 진행됐다. 지난 9월 초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된 국제전시회 IFA에서도 국내 기업들이 언론사 기자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팸투어가 있었다. 올해 베를린 팸투어에 참가한 이들은 메이저 신문사들의 기자들부터 인터넷 신문의 경제, 산업 담당 기자들과 공,민영 방송사 기자들은 물론 연합, YTN, 종편채널 기자들까지 가히 대한민국 신문과 방송 종사자들이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마지막” 팸투어에 참여했다. 이 같은 사실은 좁은 교민사회에서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내용들인데, 교민사회가 아니어도 온라인 뉴스가 발달한 요즘 어느 기자가 베를린 팸투어에 참가했는지 그들의 기사 조회를 살펴보면 쉽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기업이 언론에게 무엇을 어떻게 제공했는지 그 비용과 정도는 관계자들만이 알 수 있는 공공연한 비밀일 것이다. 그런데 기업과 언론의 관계가 어디 팸투어 하나로만 연결되어 있겠는가. 그러나 필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팸투어에 참가한 언론인들의 무책임성, 비전문성 심지어 기자의 책무를 포기한 이들의 방임이 초래한 내용들이다.

사실 IFA라는 독일의 국제전시회는 한국에서 ‘국제가전제품전시회’로 소개된다. 이 행사의 정식 명칭을 굳이 한국어로 표기한다면 ‘국제전파박람회’ 정도이다. 행사를 주관하는 국가와 주최 측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행사명이 한국 기자들, 즉 국내 기업이 전달하는 보도자료를 통해 취재하는 이들의 관행이 베를린 국제행사를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주도하는 국제가전제품전시회로 정의해 버렸다. 물론 인터넷이나 모바일이 국제적 경향이고 삼성, LG, SONY 사가 행사에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행사에는 O2와 Telekom과 같은 유럽의 통신사들과 독일 공영방송 ARD와 n.tv 등 방송 제작자들도 참여하고 있다. 왜냐하면, 국제전파박람회라는 좀더 상위의 개념적 범주가 독일인들이 주관하는 행사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팸투어를 통해 행사를 방문한 기자들은 국내 기업이 생산한 가전제품에 전시만을 보고, 전달한다. 그래서 한국에 전달되는 뉴스 기사들은 베를린 국제가전제품전시회에서 삼성과 LG의 TV와 손목시계가 주를 이룰 뿐, 유럽의 통신업체나 중국의 전자업체에 대한 동향이나 분석은 찾아 볼 수 없다. 마치 올림픽 경기에서 인간이 한계에 도전하는 멋진 순간들은 좀처럼 찾기 힘들고, 오직 자국의 선수가 몇 개의 금메달을 땄는지 보도하는 우리 언론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한국 언론은 기업의 광고가 주요한 운영 기반이다. 그래서 한국의 언론사들은 기업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언론에 한번 밉보인 기업은 그 끝을 봐야 한다. 반대로 둘이 호형호제할 때에는 한없이 너그럽다. 얼마 전 롯데그룹과 삼성의 이건희 성매매 동영상이 적절한 예이다. 언론과 기업의 오랜 관행은 사실이 거짓으로, 그래서 진실을 오도하는 일도 있지만, 기자들의 방임으로 인해 현상에 대한 보도 전달이 제한되거나 미흡할 수 있다는 우려이다. 다시 말해, 기업은 자사의 제품 홍보를 위해 팸투어를 제공했으나, 기자들은 자신들의 취재 영역과 활동 내용까지 그 기업에 헌납할 필요는 없다.

국제적인 행사에서 자국의 기치나 국내 기업의 성과만을 조명하는 편협한 취재, 보도 관행은 언론의 기능과 역할을 자신의 광고주에게 올인하는 행태이며, 자신들의 취재, 보도 내용에서 국제 행사에 대한 부족한 인식능력과 무능한 정보능력의 공개이다.

시사저널에 따르면, 김영란법을 앞두고 국내 기업들이 언론사 기자들을 상대로 마지막 팸투어를 감행했다. 필자는 시사저널의 소박한 바람이 한심하고 애처롭다. 김영란법의 시행이 언론과 기업의 공생적 관계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을지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제대로 된 법령이 없어 부정부패가 존재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김영란법에 의한 기자들의 팸투어 근절보다 기자들의 윤리의식 개선에 오히려 기대를 걸어본다. 물론 의식이 생활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이 의식을 규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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