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칼럼] 내가 왕이 될 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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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칼럼] 내가 왕이 될 상인가?
  • 서산시대
  • 승인 2016.09.12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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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욱 에뉴-한서성형외과의원장

몇 해 전 개봉되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영화 ‘관상’에서 유명한 대사가 있다. 송강호와의 첫 번째 만남에서 그는 ‘내가 왕이 될 상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에  송강호는 그를 ‘역적의 상이다’라고  말한다. 영화는 560여년 전의 사람을 통해 관상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2016년 현재의 사람들은 놀라운 의술로 관상까지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있다. 560여년 전 수양대군이 성형수술을 받았다면 역적의 상이 아닌 왕의 상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는 이미 왕이 되었다.

관상학, 언제 들어 왔을까?
관상학은 오래전부터 인간의 생김새를 살피고 분류하고 통계를 내면서 나라와 지역마다 발전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론적으로 정립하고 문헌 등의 자료로 남긴 것은 중국이 처음이다. 중국의 관상학은 요순시대에 이미 사람의 용모를 보고 관료를 뽑았다는 기록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문헌자료는 전하지 않는다고 한다. 문헌으로 남은 최초의 관상학은 중국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에 선종(禪宗)을 일으킨 달마(達磨)가 정리한 것이다. 달마는 얼굴을 보고 그 인생을 예측하는 `달마상법`을 정리하여 후세에 전하였다. 그 후 관상학은 송(宋)나라 초기에 마의도사(麻衣道士)가 `마의상법`을 남겨 한 차원 더 발전돼 정리되기에 이르렀다. 마의상법은 도교의 도사가 정리한 만큼 도교적 철학사상이 담겨 있는데 불교계의 `달마상법`과 도교계의 `마의상법`은 관상학에서 쌍벽을 이루며 오늘날까지 관상학의 근간이 되고 있다.
중국의 관상학이 한국에 들어온 것은 신라시대이지만, 이전에도 우리나라 나름의 관상학이 있었고, 중국의 관상학을 받아들임으로써 더욱 체계화 될 수 있었다. 이후 우리나라 관상학은 주로 불교계에서 그 명맥을 이어가 고려시대에는 승려 혜징(惠澄)이 관상가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관상학은 산사에서부터 시작하여 시정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유행하였고, 이러한 관상학의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본적인 정서 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

성형관상
몇 해 전, 지인의 소개로 공군 준장이 필자의 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마, 특히 미간부위에 약간은 융기된 딱딱한 종괴가 잡힌다고 이를 제거해야 하는 질환인지가 걱정이며 수술로 제거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과거력을 들어보니 어려서 다친 이후로 생겼다고 했다. 촉진상, 피부의 병변은 없었으며 피하조직에서 만져지는 종괴로 어려서 다쳤을 때 생긴 피하조직내의 섬유화된 흉 조직이었다. 대화를 하면서 그분의 얼굴을 보니 미간부의 약간은 융기된 모양새가 성형외과 의사인 필자의 눈에는 오히려 보기가 좋았고, 이 때문에 이분이 장군이 되었나하는 생각 마져 들었다. 이분이 4성 장군까지 승승장구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수술을 권하지 않았다. 이렇듯 우리네의 문화 영향인지 필자의 마음속에도 이러한 사고가 흐른다.
성형수술로 좋은 관상과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는 것도 분명 중요한 일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좋은 관상으로 바뀐다면 과연, 좋은 관상이라는 것이 있을까? 어쩜, 관상이 바뀌고 사람들의 심상이 바뀔 때 진정 왕이 될 상이 아닐까?

이승욱

성형외과 전문의,  의학석사
에뉴-한서성형외과의원장
순천향의과대학 성형외과학교실 외래교수
순천향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졸업
경희대학교 행정대학원 단기과정 이수
중앙대학교 화공학부 대학원 단기과정 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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