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림만 지킴이 박정섭 씨 “가로림만에서 태어났으니 가로림만에서 죽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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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림만 지킴이 박정섭 씨 “가로림만에서 태어났으니 가로림만에서 죽을 것”
  • 방관식
  • 승인 2016.08.15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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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력발전 반대투쟁위원장으로 살아온 8년 자부심과 마음의 빚 남아!
이제 어부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마지막 꿈

해양수산부(장관 김영석)가 지난달 28일 가로림만을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이번 지정에는 가로림만을 비롯한 25곳이 선정됐는데 생물다양성 보전 등을 위해 보전가치가 높은 해역 또는 갯벌을 지정하는 것 인만큼 청정갯벌로서 천혜의 자연환경을 유지하고 있는 가로림만의 해양보호구역 지정은 당연지사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번 지정은 서산사람들에게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지난 2006년부터 10여년 가까이 가로림만의 조력발전을 두고 찬반으로 나뉘어 끊임없이 갈등을 겪은 까닭이다.

어디 환경문제로 싸우는 곳이 가로림만 뿐이랴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지역의 경우 대부분 정부와의 갈등이 주요핵심이었던 반면 가로림만은 지역 주민 간 갈등이 오래 지속되면서 엄청난 생채기를 남겼다.

이러한 갈등의 정점에 섰던 인물 중 하나가 가로림만 조력발전 반대투쟁위원회 박정섭 전 위원장이다. 아버지가 바다사람인 까닭에 바다에서 태어났고, 아버지가 어부인 까닭에 자신도 어부가 됐다는 박 전 위원장은 이 사건이 터지기 전만해도 그냥 바다에서 물고기나 잡던 말 그대로 시골 도성리의 한 촌놈 어부였다.

그러나 지난 2006년 가로림만에 조력발전소를 건설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그의 인생도 180℃ 변했다. 태안군 이원면 내리부터 시작해 대산읍 오지리까지 약 2㎞ 구간의 바다를 방조제와 조력댐으로 막고, 1조원이 넘는 큰돈을 투자해 조력발전소를 짓겠다는 어마어마한 계획이 솔직히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자신이 아버지 손을 잡고 코흘리개 시절부터 누볐던 가로림만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반대편에 섰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 모두가 그와 같은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의 목적이 달랐고, 가고자 하는 방향도 달랐다.

반대투쟁위원장이란 직책을 맡고나서 평생을 형님, 아우하면서 살아왔던 이웃과도 등을 돌려야만했다. 자신을 지지해 주는 사람들의 응원이 언제나 큰 힘이 됐지만 자신을 조력발전의 큰 걸림돌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끝없는 비난은 날카로운 얼음송곳이 돼 그의 가슴을 후볐다.

지금껏 함께 살아왔고, 또 살아가야할 사람들이기에 더 고통스러웠지만 가로림만을 지켜야한다는 신념으로 버티고 버텼다. 가족들에게까지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8년이란 시간을 묵묵히 견뎌낼 수 있었던 건 어부는 바다에서 살아야한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이었다.

숱한 고생 끝에 지켜낸 가로림만이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는 소식에 춤이라도 추어야할 박 전 위원장이지만 그는 이번에도 묵묵하게 자기자리를 지키고 있다.

기쁜 마음이야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그동안의 갈등으로 벌어진 주민간의 틈새가 쉽사리 아물지 않아 마음 한구석이 늘 묵직하다.

현재 그는 한국수산업경영인회 서산시연합회장과 가로림만 지속가능발전협의회장직을 맡고 있지만 이것들은 그동안의 갈등을 ‘결자해지’ 해야 한다는 연장선상의 일들이고, 이제는 과거처럼 바다에서 사는 어부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 마지막 꿈이 됐다.

지난 13일 박 전 위원장을 만났다. 여전히 호탕한 웃음이 인상적인 그와 그간의 이야기에 대해 아주 오랜만에 마음 편하게 대화를 나눠봤다.

2006년 당시 분위기와 어떻게 반대투쟁위원장이 됐나?

2006년 가로림만 조력발전 이야기가 나왔을 때가 처음으로 도성리 어촌계장을 맡았을 때였다. 지금 생각하면 위원장하면서 고생한 것이 다 운명 아니었나 싶다.

서부발전인지 뭔지도 모르고 간담회에 나갔는데 대뜸 보상 이야기부터 나왔다.

처음에야 막연히 뭔 사업을 하려나보다 생각했는데 자세하게 알면 알수록 보상이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농민은 논에서, 어부는 바다에서 살아야 하는데 그 바다를 막겠다고 하니 당연히 반대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보니 투쟁위원장이란 감투까지 쓰게 됐다.

초창기에는 보상을 위해서건 가로림만을 위해서건 표면상으로는 주민들이 모두 반대하는 모양새였지만 슬슬 의견이 나뉘면서 2007년부터 주민 간 갈등이 격화되기 시작했다.

 

다른 환경문제에 비해 유독 주민 간 갈등이 심했다?

지금도 가장 아쉬운 것이 바로 그 점이다. 가로림만 조력발전은 정부와 기업이 주민간의 갈등을 조장한 탓에 상처도 더 컸고, 앞으로 상당한 세월이 흘러야만 아물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환경부가 가로림만 갯벌 변화에 대한 예측이 부족하고, 멸종위기종인 점박이물범의 서식지 훼손을 막을 대책이 미흡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환경영향평가서를 반려한 상태에서 산업통상자원부가 가로림만 조력발전사업의 준비 기간을 2020년까지 연장해주는 등 정부는 마지막까지 찬반주민들에게 갈등의 빌미를 제공했다.

투쟁위원장 8년! 참 많은 일을 했고, 겪었는데?

지난 2012년 시청 앞에서 187일간의 천막농성을 벌인 것을 시작으로 과천정부종합청사 6박 7일과 세종정부종합청사까지 6박 7일의 도보행진이 있었고, 그 후에는 8박 9일 걸어서 청와대까지 가기도 했다. 광화문에서 이순신 장군 복장을 하고 30일 동안 1인 시위도 벌였고, 환경부 앞에서 60일 동안 차량에서 천막농성을 벌이는 등 지금 돌이켜보면 그걸 다 어떻게 했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평생 법 없이 살아왔는데 이런 일들을 하는 동안 공무집행방해와 시위법 위반 등 갖가지 송사에 휘말렸다. 심지어 화장실을 못 쓰게 해 환경부 앞에다 볼일을 보고, 경범죄로 경찰 조사를 받다가 만 적도 있었다.

 

8년간 가장 힘들었던 점이 있었다면?

기업이나 정부를 상대로 투쟁하는 것은 힘들어도 견딜 만 했다. 그러나 평생을 바다에서 함께 살아왔던 이웃들과 싸우는 것은 정말로 할일이 못됐다.

평생을 함께 살아왔고, 앞으로도 같이 살아가야할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갈등이 한창 고조됐을 당시에는 서로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일이 다반사여서 그것이 평생 한으로 남을 듯하다.

그래도 이렇게 힘들었을 때마다 34개의 지역 시민단체가 가로림만을 지키는데 뜻을 함께해줬고, 당진과 태안지역의 많은 어촌계장들도 힘을 모아준 덕에 이겨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밖에도 많은 분들이 뒤에서 응원해 줬는데 직접 찾아뵙지는 못하고 신문 지면을 통해서 나마 진심으로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다.

 

앞으로 바람과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난 8년간 숱한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겪은 덕에 세상을 보는 눈이 많이 변했다. 그동안 한가지 절실하게 깨달은 것이 있다면 세상일이라는 것이 나 혼자 해서는 좋은 결과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은 나의 주장을 줄기차게 말해왔다면 앞으로는 타인의 말을 진심으로 들으려고 한다. 그리고 그를 통해 지난 8년간 찬반주민이 입은 생채기를 보듬어 치료해나가고 싶다. 워낙 상처가 깊기 때문에 어쩌면 영영 치유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가로림만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했듯 이제는 주민들 간의 신뢰와 애정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다. 그리고 가로림만은 대규모 개발이 아니더라도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지역 주민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지역주민들과 상생할 수 있는 가로림만이 될 수 있도록 정부를 비롯한 관계기관이 적극 힘써주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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