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교육감 김 지 철

감자꽃 피는 유월부터 뜨거운 칠팔월까지 우리나라 산과 들엔 개망초가 지천이다.

둥글고 하얀 꽃잎 속 노란 무늬가 계란프라이 같다하여 내가 살던 마을에서는 계란꽃으로 불렀다.

개망초는 북아메리카의 꽃으로 철도 공사를 하는 침목에 묻혀 들어와 우리 땅을 밟게 되었다. 그런데 하필 일본이 밀려들던 구한말에 퍼지기 시작한 모양이다. 그러니 김매는 농부들이 이방에서 굴러 들어온 이 꽃을 두고, 일본인들이 ‘나라를 망치려고 심어놓은 풀’이라며 망초(亡草)라는 이름을 붙였다. 얼마 뒤 실제로 나라를 잃었으니 누명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다. 농부들한테 지청구나 먹는 잡초였고 지금도 길섶에서 막 자라는 풀꽃으로 보아 넘기는 사람들이 많다.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때를 잘못만나 이런 불명예를 떠안은 개망초지만 특유의 끈질긴 생명력으로 지금은 토종 들꽃이 되다시피 했다. 콩과 벼가 자라는 논두렁과 밭두렁, 사람 사는 마당을 기웃거리는 낮은 담장 아래, 바람 부는 기찻길, 공터 전신주 옆에서 하얗게 웃는다. 안도현 시인은 이런 개망초꽃이 눈치코치 없이 아무데서나 피는 게 아니라 사람의 눈길이 닿아야만 핀다고 말했다.

개망초는 화려하진 않지만 수수한 듯 담백한 느낌으로 진득하니 오래가는 덕목을 가지고 있다. 봄 한철 날씨의 축복을 받으며 뭇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향기롭고 화사한 꽃들은 화무십일홍이란 말처럼 금세 지고 만다.

녹음방초만 짙푸른 여름 들판의 들꽃은 대부분 산속이나 그늘에서 피어난다. 칠월의 달맞이도 땡볕을 피해 한밤에만 피어나지 않는가. 하지만 개망초는 한여름 뙤약볕 아래 피어나 여름이 다가도록 우리의 산들을 지킨다. ‘아침이슬’ 노래의 한 구절처럼 한낮에 찌는 더위가 나의 시련일지라도 굴하지 않는다. 척박한 토양을 마다하지 않고 끼리끼리 모여 소박하게 피어있는 작은 들꽃을 자세히 보고, 오래도록 들여다보면 가만가만 속 깊은 이야기를 걸어온다.

올해는 도심 한 복판과 지하에서도 개망초꽃이 피었다. 여자라는 이유로 스러져간 강남역의 꽃다운 청춘을 추모하고 사람의 안전을 지키는 안전 문을 고치다가 목숨을 잃은 구의역 청년에 대한 애도와 비판의 포스트잇은 무리지어 피어난 서울의 개망초다.

개망초는 새순이 나올 때는 나물로, 잎이 무성해지면 튀김이나 된장국으로 끓여 먹고, 꽃잎을 그늘에 말려 차로 우려내면 약이 된다. 열을 내려주고 해독작용으로 몸을 다스릴 수 있으며 소화를 도와 설사를 멎게 하는 효능이 있다니 놀랍다. 한계에 달한 교육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개망초는 없을까?

“똑똑하다고 소문난 우리국민들이 왜 이런 소모적이며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교육의 늪’에서 몇 십 년째 허우적거리며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을까요?”라며 사교육을 짐을 내려놓고 싶다는 학부모의 항변이 부끄럽다.

과열된 교육열을 식혀주고 대학 서열화의 독을 다스려 줄 수 있는 개망초, 경쟁의 뙤약볕에 시들지 않는 학생, 학부모와 교사가 어깨 비비며 지천으로 피워내야 할 개망초는 무엇일까?

그것은 국영수 성적으로 학생을 편 가르지 않는 일, 친구를 이기라고 내 아이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청소부와 의사가 하는 일의 가치가 다르지 않다고 여기는 것, 인공지능과도 사람의 역량으로 당당히 맞설 줄 아는 학생을 기르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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