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시간은 제3세계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에 쓰고 싶어!”

우리 주변에는 남과는 다른 색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은빛공동체 김경숙 원장도 한 눈 팔지 않고 자신이 정한 길을 소신 있게 뚜벅뚜벅 걷고 있는 별난 사람 중 하나다. 김 원장이 보여주고 있는 조용한 별남은 우리사회의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하는 값어치가 있다. 매실체험 행사를 앞두고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김경숙 원장에게 그간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산이 고향이 아닌데 어떻게 인연을 맺었는지?

원래 고향은 서울인데 지난 1998년 부석면 송시2리로 내려오게 됐다. 이전부터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한 덕에 소외된 홀몸노인들을 보살피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우리가 꼭 돌봐드려야 할 처지의 노인이 갈 곳이 없었다. 수소문 한 끝에 요양시설 관계자가 알려준 것이 그 노인을 잠시 거리에 버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행려환자로 분류돼 요양원에 들어올 수 있다는 편법을 알려준 것이다. 그런 일을 겪고 나서 사람이 필요한 사람하고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고, 그 생각을 실천하기 위해 이곳으로 내려오게 됐다.

 

초창기 어려움도 많았을 텐데?

당시만 해도 노인관련 시설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터라 일단 마을주민들부터 서울에서 살던 여자가 이 시골에서 무슨 일을 벌이려고 하나, 의구심에 찬 눈초리로 쳐다봤다. 또 나 스스로도 내 도움이 필요한 노인들과 함께 살아야지 하는 순진한 마음으로 덤볐던 터라 처음에는 좌충우돌, 우여곡절이 많았다. 하지만 주민들과 어울리기 위해 생전 처음으로 접해본 농사일에 열심히 매달리고, 서울교회와 마을의 농산물 직거래를 주선하는 등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자 주민들도 점차 많은 성원을 보내줘 지금은 한 식구처럼 지내고 있다.

이곳에 내려와서 은빛공동체라는 노인요양시설을 만들었는데 이를 위해 사회복지공부를 다시 했다. 이런 과정에서 과거 임상상담을 전공한 것이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현재는 노인요양시설이 아니다?

은빛공동체를 운영하면서 몇 번인가 행정적인 지원을 받아 규모를 늘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처음 결심했던 원칙을 지키기 위해 나름 소신껏 하다 보니 기회를 놓쳤다.

은빛공동체는 그동안 행정의 지원 없이 사회단체나 시민들의 온정 덕에 가족 같은 분위기로 꾸려왔다. 그러나 초창기와는 달리 지역 내의 노인요양시설의 수준이 높아지고, 여건이 좋아지면서 지난 2014년 장애인공동생활가정으로 변경했다. 현재는 예전부터 은빛공동체에서 생활해 정이 들어 다른 곳으로 가지 않겠다고 버틴 장애인 두 분과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다.

 

제3세계 어린이들에 대한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는데?

젊었을 때 외국에 나가 제3세계 어린이들의 어려운 형편을 봐왔던 터라 은빛공동체를 운영하는 동안에도 지원에 힘써 왔다. 이곳의 아이들에게는 마음껏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교 건립이 제일 시급한 문제라 능력이 되는 대로 지원에 나서고 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제3세계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에 쓰려고 한다. 이것 또한 옛날 스스로와 약속했던, 사람이 필요한 사람과 살자는 신념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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