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웅 편집국장

“내 그럴 줄 알았다.”

개표가 끝나고 며칠이 지나니 이제는 ‘후(後)견지명’도 난무한다. 이유야 어떻든 결과를 보고 예견을 하는 모습들이 우습다.

그렇다면 앞으로 총선 후 정국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우선 이번 총선 결과는 큰던 작던간에 앞날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혹시 몇 가지라도 좋은 쪽으로 변화할 수 있다면, 특히 법이 그렇다면, 총선이 만들어낸 새로운 의회 권력 덕분일 것이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다. 더 달라지는 것, 그리고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있을까. 그리고 그 파급효과는 무엇일까.

그리 기대가 크지 않다. 4월 16일 2주기를 지난 세월호 사고만 해도 그렇다. 사고 수습도 수습이지만, 지금껏 ‘국가’로서 차마 해서는 안 될 일로 버텨왔다. 당사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모욕하고 조롱했다.

아직도 변함없는 권력과 정치. 이번 투표 결과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도 안타깝지만 ‘부분적’ 성취 그 이상을 논하기 어렵다. 권력의 횡포를 비판하고 견제하는 약간의 힘을 보였을 뿐, 새롭고 적극적인 대안은 정체하거나 오히려 후퇴했다.

대부분 예전 투표가 그러했듯이 이번 총선도 ‘징벌적’ 투표는 통했는지 모르지만, ‘대안적’ 투표는 거의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국민의 의사가 배제된 공천과정이나 도무지 무너지지 않는 지역 구도도 그렇다. 지역을 발전시킬 힘 있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당선된 부적격 인사가 어디 한둘인가. 지역 권력을 대변할 뿐인 ‘토호형’, ‘유착형’ 국회의원이 더 늘어난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곳곳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이해관계의 갈등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과연 20대 국회는 이를 대표할 수 있을까? 거리와 광장, 논밭과 공장, 시장의 날선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을 것인가?

거듭 생각해도 확신하기 어렵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앞으로 국회의원과 정당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메시지가 혼란스럽다.

지금 이 시각, 정치적 이해관계를 생각하는 당선자와 정당은 무엇을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국민은 지나친 기대도 절망도 하지 않는다.

앞으로 대선도 있고 지자체 선거도 있다. 본시 백성의 뜻은 느리게 흐르는 대하(大河)와 같지 않은가? 투표는 민주주의 꽃이라 하지 않았던가? 다만 오랜 시간 수많은 노력의 결실로 피어나는 꽃이다. 지나치게 승리에 도취하거나 실망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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