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기 홍(자유기고가)

서산시는 1개의 읍과 9개의 면 그리고 5개의 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중 서산시의 남동부에 위치하고 있는 해미면은 가야산록 북사면을 경계로 예산군 덕산면과 마주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음암면, 운산면, 남쪽으로는 고북면 그리고 지금은 천수만 AB지구 간척공사로 막혔지만 서쪽으로는 서해바다 천수만과 접하고 있다.

호서좌영이 있었던 해미읍성으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으며, 또한 천주교 성지로도 유명하여 2014년도에 교황이 방문한 고장이기도 하다.

해미의 옛지명은 정해현이다. 정해현이 설치된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고려사(高麗史)의 기록을 보면 고려 태조 때에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사』 권56 지10 홍주(洪州) 정해현(貞海縣)조에 “고려 태조 때에 한씨 성을 가진 몽웅역의 역리가 나라에 큰 공을 세웠으므로 태조 왕건(王建)이 그에게 대광(大匡) 벼슬을 주고 고구현(高丘縣) 땅을 분할하여 정해현(貞海縣)을 설치하고 그의 관향으로 삼게 하였다고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에 서산지역에는 4개의 현이 있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고구현도 일부 포함되지만 고구현은 제외하고 서산시내권 일원을 중심으로 부성현, 해미면 일원에 정해현, 운산면 일원에 여미현, 그리고 지금의 지곡면 일원에 북곡현이 그것이다.

정해현이 만들어지게 된 경위는 위의 고려사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주 명확하다. 그러니까 몽웅역의 역리가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개국에 큰 공이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대광 벼슬을 주고 고구현의 땅을 분할하여 정해현(貞海縣)을 새로 설치한 것이다.

고려태조 왕건의 고려 개국 시기에 해미지역 소재의 몽웅역에서 재지세력인 한씨와 같은 지역민이 고려의 창업을 도왔고 이로 인하여 그 공로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정해현이 탄생되었는데, 이는 고려 초에 새로운 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예의 하나라 하겠다

그런데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1407년(태종 7)에 정해현과 여미현을 병합하여 해미현(海美縣)으로 고쳤는데 이는 정해현의 ‘해’자와 여미현의 ‘미’자를 한자씩 조합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해미현의 치소는 정해에 두었다.

혹자들은 해미를 가야산 동쪽에서 해가 뜬다는 취지의 『해뜨는 산』 해뫼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는 옳지 않으니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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