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제 소리는 간데없고, 다 쓰러져 가는 구옥만 남아

▲ 서산시 읍내동 2-14번지. 전국 각지에서 예인들이 찾아오는 명소였던 낙원식당은 그 모습은 간데 없고 다 쓰러져 가는 구옥만 남아 있다.

“진작 좀 오지.”

읍내동 2-14번지. 굳게 닫힌 녹슨 철제 대문과 기둥에 큼직하게 써놓은 ‘개조심’ 글씨뿐. 표지판 하나 없이 다 쓰러져 가는 옛 낙원식당 구옥에서 심화영 선생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우리나라 판소리는 크게 섬진강을 중심으로 서편제와 동편제 그리고 내포지방을 중심으로 크게 경기도와 충청도 일원을 묶어 중고제로 구분 되는데 심화영 선생은 그 중고제 판소리의 마지막 계승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고제의 마지막 초상은 그렇게 쓸쓸했다.

심화영 선생(1913~2009, 충청ㆍ경기 지역 판소리 중고제의 마지막 보유자,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 보유자) 은 서산출신으로 가야금의 명인이고 판소리의 명창으로 널리 알려진 국악계의 거장 심정순(1873~1937)의 딸로 태어났다.

심정순은 청송 심 씨 심팔록의 3남 1녀중 둘째 아들로 1873년 서산 학돌재에서 태어났다. 심 씨 일가는 서산을 넘어 전국적으로 유명한 예술가 집안이라 할 수 있는데 그의 큰아들 심재덕은 판소리, 가야금, 거문고 등의 각종 악기에 능통한 인물로 한 때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국악을 가르친 분으로 가수 심수봉의 아버지이다.

심정순은 1908년 전통연희와 창극의 무대였던 극장 장안사에서 박춘재, 문영수, 김종문, 김홍조 명창 등과 어깨를 겨루었고, 가야금 시나위, 춘향가, 심청가 등 초창기 유성기 음반에 상당한 녹음 기록을 남겼다. 1913년부터는 ‘장안사순업대(長安社巡業隊)’를 이끌고 개성, 의주, 평양, 진남포 등 북한의 주요도시를 순회하며 공연하였다. 1930년대 이전에 남도소리가 나오기 이전까지 유성기 음반의 가야금 병창은 대부분 심 씨 일가(심매향, 심상건)가 녹음했다고 할 정도였다. 또한 1912년 매일신문에 판소리 사설을 구술 창본으로 연재하여 신소설 ‘자유종’의 작가 이해조가 ‘강상련(심청가)’, ‘토의간(수궁가)’, ‘연의각(흥보가)’, ‘옥중화(춘향가)’등의 소설본으로 발표한 바 있다.

심정순의 예술은 조카 심상건을 비롯해 아들과 딸에게 전해져 가야금산조와 병창으로 근대를 휘어잡았으나 소리는 끊어지고 지금은 심화영의 승무만 남았다.

1913년 집안의 막내로 태어난 심화영은 열네 살이 되던 해 큰 오빠 심재덕을 따라 서울로 가 1년간 이화학당에서 수학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족을 만날 틈도 없이 바쁘게 활동하던 아버지 심정순이 60세 무렵에 병을 얻어 낙향하면서 서산생활이 다시 시작됐다. 심정순은 1937년 향년 64세에 타계했다.

그때 나이 심화영이 18살. ‘낙원식당’을 경영하는 큰오빠에게 본격적으로 악(樂) 가(歌) 무(舞)를 배우게 되었을 때는 “혼 안 나면서 배웠어, 한번 들으면 다 알았으니까. 저녁에 한바탕 배우면 그 다음날 바로 했어. 정신이 좋았지, 타고난 모양이야”라고 본인이 말하듯이 천부적인 소질을 보였다.

큰 오빠 재덕은 화영에게 양금, 풍류, 시조 등을 가르쳤고, 승무는 충청도 지역에 춤 잘 추기로 유명했던 방 모(某)씨에게 배운 후 큰 오빠가 마무리를 해 주었다.

전국 각지에서 예인들이 찾아오는 명소가 되어 율방으로 부르기도 했던 낙원식당. 그곳에서 중고제는 그렇게 맥을 이어갔다.

시대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예술의 혼을 불태웠던 심정순, 심재덕, 심화영, 이애리로 이어지는 중고제와 서산승무. 지역문화예술계의 별이요, 우리 서산의 자랑이다.

일부 뜻 있는 분들과 심화영 선생은 지난 2005년 서산시 읍내동 2-14번지(85.98㎡)에 대해 유허지 문화재 지정을 충청남도에 신청하였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중고제와 서산승무에 대한 인식의 부재 탓이리라.

심화영 선생은 아버지 심정순을 이어 일생을 전통 음악과 함께하면서 그의 큰아들과 함께 서산에 거주하다 2009년 11월 17일 96세 일기로 타계했다. 지금은 유일하게 외손녀 이애리가 우리나라 판소리 중고제 심정순가(家) 소리의 예술혼을 홀로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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