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념으로 이룬 내포제시조 꼭 번창시킨다!”

내포제시조보존회 박선웅(73) 회장과의 인터뷰 도중 별명 하나를 마음속으로 생각해 봤다.

‘집념의 끝판 왕’, 너무나 잘 어울린다는 뿌듯함이 인터뷰 끝까지 갈 정도로 노래와 시조에 대한 박 회장의 집념은 대단했다. 어려서부터 노래 잘 부르는 신동소리를 들어왔던 박 회장은 사춘기인 15세 때 가수가 미래의 꿈이 됐다고 한다. 그러나 워낙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이었고, 8남매를 건사해야 하는 장남으로서 가수의 꿈을 이룬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제대 후에도 가수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노래 좋아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노래에 열정을 불태웠고, 혹독한 연습 끝에 피를 토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았고, 20대 후반 박 회장은 대중가수의 꿈을 접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모든 꿈이 꺾인 것은 아니었다. 박 회장은 노래 대신 시조를 선택했다. 요즘 기준으로 생각하며 ‘웬 시조?’할지 몰라도 60~70년대 당시 시조는 한창 인기 있는 장르 중 하나였다.

가수의 꿈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가족의 생계에 대한 의무감이었기에 29세에 농약사 를 개업한 후에는 낮에는 장사를 해가며 밤을 낮 삼아 시조 연습에 매진했다. 시조의 매력에 푹 빠졌을 때는 정월 초하루에 집을 나가 보름날이 되도록 곳곳을 떠돌며 시조를 부르고, 또 불렀다고 하니 그 열정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길 몇 해가 지나 박 회장의 시조 인생에 잊지 못할 전성기가 찾아온다. 바로 1984년 전국 시조경창대회에서 문화부장관상을 시작으로 전주대사습놀이 시조부 장원, 백제문화재 시조부 대통령상을 모두 휩쓸었다.

이후로 박 회장은 진정한 프로의 길을 걷게 된다. 시조에 대한 열정을 체계적인 학문으로 발전시켜 본인만의 독특한 개구리 호흡법, 가사발음을 정확하게 구사할 수 있는 모음자음법, 음계를 정확하게 낼 수 있는 인체 내 음계상조법을 연구, 개발하는 등 박 회장의 경지는 끝없이 높아져만 갔다. 전국적인 명성을 바탕으로 1986년에는 카세트테이프와 CD를 발매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이정도만 해도 대단한 집념이란 생각이 절로 드는데 시조로 일가를 이룬 박 회장은 그 옛날 접었던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10여 년 전 자수성가라는 가요 CD를 발표하고, 고향 서산에서 성대한 발표회까지 열어 자신의 못다 이룬 꿈을 끝내 이루고야마는 놀라운 의지를 보여줬다. 가슴 속에 담아뒀던 한을 모두 다 풀었다고 생각할 무렵 박 회장은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이번에는 지역의 정서가 담긴 내포제시조의 복원이었다.

이만하면 다 이뤘다고 생각할 만도 했지만 박 회장은 인기에 취해 한동안 잊고 지냈던 내포제시조에 대한 미안함 마음과 우리 것을 살려야 한다는 새로운 목표로 10년 동안을 매진했고, 결국 내포제시조를 완벽하게 복원해 지난 2014년 3월 내포제시조 보유자 17-2호로 인정받는 쾌거를 이뤘다.

이제야 비로소 가슴 속에 맺힌 한을 다 풀었다는 박 회장은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봤기에 자신의 삶은 행복했다”며 “이제 남은 것은 후학들을 키워 내포제시조를 번창하게 만드는 것이 최종목표가 됐다”고 말했다.

집념의 끝판 왕! 박선웅!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예술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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