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경찰서장 김석돈

캐나다에서 있었던 실화다. 어려서 학대를 받았으나 열심히 노력한 끝에 자수성가한 남자가 있었다. 결혼하고 아들도 낳았다. 선망의 대상이자 인생의 목표였던 최고급 스포츠카를 샀다. 어느 날, 차를 손질하러 차고로 들어가던 그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 살펴보았다. 어린 아들이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못을 가지고 최고급 스포츠카에 낙서하고 있었다. 이성을 잃은 그는 손에 잡히는 공구로 아들의 손을 가차 없이 내리쳤다. 아들은 대수술 끝에 결국 손을 절단해야 했다. 수술이 끝나고 깨어난 아들은 울면서 아버지에게 잘린 손으로 빌었다. “아빠 다신 안 그럴게요. 용서해 주세요.” 소년의 아버지는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고 그날 저녁 차고에서 권총으로 자살했다. 그가 본 것은 그의 아들이 차에 남긴 낙서였다. 낙서의 내용은 “아빠! 사랑해요.”였다.

순간이나마 ‘최고급 스포츠카’의 현상에 가려 ‘소중한 아들’이라는 본질을 보지 못한 실수였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본질과 현상이 있다. 관찰자의 입장에 따라 하나의 존재물도 여러 형태로 보인다. 즉 감정이나 느낌 또는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본질은 하나다. 영원하며, 세상의 이치에 합당하다. 그에 비해 현상은 때와 장소에 따라 변화무쌍하고 갈팡질팡하며 영원하지도 못하다. 마치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면 혼란을 초래하듯 현상에 가려 본질을 보지 못하면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경찰관으로 근무하다 보면 “오늘 음주단속 하나요?” 하고 묻는 분들을 만나게 된다. 또는 “음주단속 시간과 장소를 미리 알려주는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말도 듣는다. 음주 운전의 폐해는 생각하지 못하고 단속만 피하려는 분들이다.
음주 운전의 본질을 이해하면 얘기는 달라질 것이다. 본질은 음주 운전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단속만 피하려는 현상에 머물러서는 불행을 초래할 수 있다.

지난 1월 29일 대낮에 태안군 고남면에서 1톤 화물차가 중앙선을 넘어 버스와 충돌하였다. 이 사고로 화물차 운전자가 사망했다. 이틀 후인 1월 30일에는 서산시 대산읍에서 1톤 화물차가 중앙선을 넘어 길가 전주를 받고 운전자가 사망했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감정 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음주 운전으로 추정된다. 고귀한 생명을 술 몇 잔과 바꾸기엔 너무나 허무하다.

아직도 일부 운전자는 음주 운전을 하고 안하는 잣대로 경찰 단속을 의식하는 것 같다. 음주 운전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한다면 경찰이 단속하기 전에 스스로 자제해야 한다. 오히려 경찰관이 단속을 게을리 하면, 우리 마을 만이라도 단속을 철저히 해달라고 역정을 내야 한다. 과거에는 파출소가 옆에 있어 집값 내려간다고 원성이 잦던 마을에 이제는 파출소를 유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듯 안전이 중요하다는 본질을 알아야 한다.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려면 본질과 현상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남자가 배우자를 선택할 때는 마음 예쁜 것이 본질이고, 얼굴 예쁜 것은 현상이다. 몸이 편한 것보다 마음이 편한 것이 낫다. 영혼이 본질이고, 몸뚱이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돈도 중요하지만, 명예도 중요하다. 돈은 현상이고 명예는 본질이기 때문이다. 굴절된 현상으로는 삶의 가치를 찾기 어렵다. 본질이 가려진 삶은 후회가 따른다. 어쩌면 후회할 영혼까지도 한 순간에 잃어버릴 수 있다.

오늘도 우리 주변을 살펴보자. 무엇이 본질이고 무엇이 현상인지를.... 그리고 갈등을 느낄 땐 본질을 선택하자. 특히 나와 우리 가족, 그리고 이웃의 생명과 직결되는 운전대를 잡을 때는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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