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과 도난을 겪은 문화재, 멕시코 아즈텍 달력과 부석사 불상

1982년 6월, 멕시코 변호사 호세 루이스 카스타냐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멕시코 고문서의 열람을 신청하였다. 도서관 관계자는 신원 확인을 마친 후 나무 상자에 담긴 고문서를 가져다 주었다. 그가 상자를 반납하고 떠난 후, 도서관 직원은 나무 상자에 들어 있던 고문서 중 14~15C의 아즈텍 달력인 ‘오뱅 토날라마틀(Aubin Tonalamarl)’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다. 즉시 경찰이 출동하였지만 카스타냐는 이미 멕시코로 출국한 뒤였다. 2주후 인터폴의 협조를 통해 도서관에 남긴 주소지인 멕시코 칸쿤에서 절도범 카스타냐는 체포되었고 문서는 압수되었다.

멕시코 주재 프랑스 대사관은 문서가 발견된 즉시 멕시코 정부에 반환을 요청하였지만, 체포된 직후 카스타냐는 아즈텍 달력을 멕시코 국립 인류 역사학 연구소에 기증하면서 “이것은 약탈된 멕시코 고문서 회복의 첫 번째 거사”라고 선언했다. 검찰총장은 그를 즉시 석방했고, 언론은 그를 “멕시코 문화유산 회복의 영웅”이라고 보도했다. 프랑스 측은 "명백한 절도행위를 통한 문화재 회복은 인정할 수 없다“라고 반환을 요구했지만 거부당하였다.

‘토날라마틀’은 멕시코 원주민인 아즈텍인들의 달력으로 아즈텍 문명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며 희소성이 높아 그 가치가 대단하다. 이 달력이 처음 확인된 것은 이탈리아 귀족 로렌조 보투라니 베나두치의 소장 목록에서 이다. 그 후 베나두치가 추방된 후, 이 문서는 압수되어 스페인 총독부가 소유하였고 그 후 멕시코 천문학자 가마의 손을 거쳐 1802년 독일인 네벨을 거쳐 다시 프랑스 유물학자 발데크가 구입하였다. 1840년 발테크는 유럽으로 반출하였고, 1841년 프랑스 천문학자 오뱅에게 금화 200프랑에 팔았다. 오뱅은 유실된 3-8페이지를 구해 현재의 3-20페이지를 만들어 이때부터 ‘오뱅 토날라마틀(Aubin Tonalamarl)’이라 불리었다. 오뱅은 1889년 구필에게 매각하였고, 구필의 사후인 1898년 그의 부인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함으로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유가 되었다. 이에 프랑스는 소유 내력이 확실하게 입증된 것으로 원소유국의 문화재 회복과는 관계없는 절도 범죄임으로 즉시 반환을 주장하였다. 멕시코 정부는 이 달력이 19세기 멕시코에서 약탈되어 유럽으로 간 것으로 1740년대 이후의 소유자에 대하여서는 정확한 기록이 있으나, 그 이전의 기록이 부재함을 들어 약탈의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이후 멕시코와 프랑스는 협상에 들어갔다. 팽팽한 협상은 결국 멕시코 국민들의 반환 반대 감정 때문에 반환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한 프랑스는 소유권을 유지하고 대신 ‘3년 갱신 대여’하기로 함으로 협상은 일단락되었다. 2009년에는 ‘영구대여’로 협정이 체결됨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번 사건은 과거 피탈당한 문화재국과 약탈해간 문화재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많은 시사점을 준다. 우리도 2012년 대마도에서 절도범에 의해 밀반입된 서산부석사 불상 ‘금동관세음보살좌상’사건으로 지금 한일 간은 물론 국제사회가 이 불상의 향방에 대하여 관심이 높다. 일본의 학계에서도 '왜구에 의한 일방적 청구(請求)‘ 즉 약탈의 가능성을 인정한 이 불상은 자비의 미소 뒤에는 너무나도 슬픈 이야기가 숨어 있다. 고려 말인 1330년 2월, 당시 서산의 민초 32명의 간절한 염원이 담긴 체, 영원히 부석사에 봉안하겠다는 발원은 그 후 500여회에 이를 정도로 침략을 일삼았던 왜구들에 의해 수많은 불상과 함께 약탈당하여 대마도로 건너갔고 왜구의 수장이 세운 절, 관음사에 봉안되어 650여년을 지내왔다. 고난의 세월을 견딘 관음상은 복장물을 통하여 세상에 나온 이유와 원 소장처가 어디인지를 밝힘으로 존재의 이유를 분명히 하였고, 그 후 많은 이들의 수고에 의해 서산 부석사로 봉안되기길 갈구하였다. 그러나 지금 관음상은 ’장물‘로 몰수되어 정부의 창고에 있다. 부석사가 신청한 ’이전금지 가처분‘이 받아들여져 그나마 형사사건이 종료되었음에도 국내에 남아 있는 것이 위안이다. 많은 이들이 가처분 시효가 3년이 아니며 2월 25일 이후의 향방에 궁금해 하고 있다. 부석사불상봉안위에서는 피고인 대한민국정부에 의해 본안소송이 제기되지 않은 한, 가처분 시효가 정해져 있지 않음을 확인하였지만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지난 해 동조여래입상도 ’환부‘발표이후 이틀 만에 일본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우리정부도 이제 지난 날 불법적으로 반출당한 문화재의 환수에 더욱 적극적인 정책과 행동을 취해야 한다. 부석사 불상은 고려후기를 대표하는 미술품으로 일본에서는 여러 약탈한 불상 중에 하나지만 우리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유산이다. 도난 이전의 약탈 가능성에 집중하면서 일본에 소재하고 있는 우리나라 문화재의 ‘내력(provenance)'를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관음상은 아즈텍 달력과 같이 우리 역사를 증명하는 소중한 유산이자 한일 불교계의 발전을 위한 자산임으로 대립보다는 화해의 입장에서 해결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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