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기 숙 / 수석동

평생 울 엄마의 교훈은 물절약이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올 여름 우리들은 혹독한 가뭄을 경험했다.

경험 끝에 내놓은 것이 계량기 벨브 반만 열기, 물 받아서 쓰기, 세탁물 모아서 세탁하기, 양변기 물탱크에 1.5리터 플라스틱 병 넣기, 샤워 시간 줄이기 등 갖가지 실천할 것을 다짐하는 물 절약 캠페인을 벌였다. 우는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한국수자원공사에서는 항상 물에 대한 소중함을 알리고 관리 감독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국민들도 가뭄에만 절수가 아니라 집에서나 공동으로 쓰는 물에서나 평생을 아껴쓰는 올바른 자세가 필요하다.

가뭄이라지만 목욕탕은 물이 철철 넘쳐난다.

목욕비 4~5천 원에 대한 위력이다. 뜨거운 물이 넘치고, 찬물도 넘치고, 미지근한 물, 각양각색의 금쪽같은 물이 누구의 손에 의해 주인 없는 물처럼 쉼 없이 흘러내린다. 수도꼭지를 맘껏 틀어놓고 쓰는 사모님네들 목욕탕 물 인심은 참 좋다. 가뭄은 무슨 놈의 가뭄이냐고 비웃기라도 하는 것 같다.

이태리 타올로 화풀이라도 하듯 온 몸을 죽기 살기로 문지른다. 그러는 동안 맘껏 틀어놓은 수돗물은 목욕탕 바닥을 맘껏 휘젓고 흘러간다. 수도꼭지에서 흘러가는 물은 씻을 수도 잡을 수도 없는 버려지는 물이다. 잠깐이라도 잠그면 될 것을....

목욕은 고사하고 먹을 물조차 없어서 깡통하나 짊어지고 몇 시간을 걸려 흙탕물을 이고 오는 아프리카 사람들 생각에 목욕탕에 앉아 있는 것조차 미안하다.

충청이남 지방에 올 해 가뭄은 십칠 년만의 가뭄이란다. 저 아랫녘 진도에서 농사를 짓는 문우에게 안부 겸 비 소식을 물어보니 비가 넉넉히 와서 농사짓는데 별 지장이 없었다고 한다. 여기는 가끔 한 번씩 오는 소낙비로 농사를 지었다고 하니까 깜짝 놀란다. 논과 밭에 타들어가는 곡식들을 바라보며 여름의 터널을 지나오느라고 농민들은 하늘을 원망도 많이 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수도가 들어온 지 3~4년은 되었다. 제한급수란 말은 처음이다. 주민들도 당황스럽기 매 한가지. 뉴스에서 제한급수라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어느 지역 주민들은 물통을 사서 쟁이는 바람에 물량이 모자란다고 한다. 충청도 사람답지 않게 동작이 빨랐던 것이다. 신속 정확하게 돌아가는 세상 얻는 것과 잃는 것도 더러 있다.

내가 어렷을 적에는 맑은 냇가도 많고 어디를 가도 우물은 흔했다. 친구네는 뒤란에 바가지로 푸는 우물이 있어서 나는 무지하게 부러웠다. 친구 어머니는 뒤란에 있는 우물이 좋아서 결혼도 했단다. 굉장히 우스운 소리다. 신랑감을 보고 결혼을 한 것이 아니라 우물을 보고 결혼을 했다니까 말이다. 반대로 나는 친구네 집 호두나무 아래에 있는 바가지로 푸는 우물에서 물 지게로 물을 길어다 물 항아리에 가득 채우고 먹었다.

비가 오려고 하면 물부터 져 날랐다. 비가 오면 우물은 빗물이 흘러 들어가서 흙탕물로 변했다. 명절이 돌아오거나 비가 그치고 나면 우물 청소를 하는데 돌멩이를 짚수세미로 박박 문지르고 밑바닥까지 청소를 깨끗이 했다.

몇 시간이 지나면 맑은 물이 가득 고여 철철 넘쳤다. 우물은 여러 집이 먹었지만 가뭄이 시작되면 우물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어린 나는 아침 저녁으로 자박이에 보리쌀을 담아 머리에 이고 가서 닦았다. 줄어든 우물을 퍼 올릴적에는 돌멩이를 밟고, 우물안으로 들어가서 바가지로 간신히 조금씩 퍼서 썼다. 논도 말라서 거북이 등처럼 갈라지면 우리학교 학생들이 일렬로 서서 한 바가지씩 날라다 주면 시들해 죽어가던 벼도 살아났었다. 벼에게도 물 한 모금은 사람과도 같았다.

어쩌면 올 해 가뭄도 그 해와 똑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뙤약볕 아래 곡식이 타들어가는 것이 안타까워도 수돗물이 아까워 곡식에게 제대로 물도 못 주었다. 친정어머니는 우리들에게 물을 아껴서 써야한다고 성가시게 참견을 하시었다. 가마솥에 물을 데워 쓸 적에도 손으로 물의 따스함을 재어보아 너무 뜨거우면 아궁이 장작불부터 꺼버렸다. 물이 뜨거우면 참물을 더 섞으니 물이 헤프다는 것이다. 물 쓰는 곳이라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울 엄마! 그리고 가까운 거리도 아니고 먼 거리에서 물 지게로 물을 길어다 먹는 것은 여간 곤욕이 아니었다. 그래서 물은 더 아껴야만 했다.

흔하게 써보는 것은 고사하고 아끼라는 말만 머릿속에 입력시키고 살았다. 비 오는 날엔 초가지붕에서 내려온 낙숫물을 받아 빨래를 하면 물이 매끄럽기도 하고 빨래도 잘 빨아졌다.

결혼을 해서 사는 우리 집은 펌프 샘이었다. 물을 푸기 전에는 한 가지 지켜야 할 예의가 있는데 마중물을 한바가지 부어주어야 하는 예의다. 마중물은 공기를 압축시켜 깊숙이 들어있는 물을 끌어올린다. 샘물의 변천사는 이렇다. 우물, 펌프 샘, 수돗물 등 땅에서 길어 올려 퍼 먹는 방식이야 어쨋던 간에 물은 모조건 아끼면서 살았다.

펌프 샘은 빗물이 들어가지 않아 오염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안심하고 먹었다. 집 주변에는 짐승도 안 기르고 오염 될 만한 것도 없는데 수질검사를 해 보니까 지하수가 오염이 되어서 식수로는 사용하지 못 한다고 한다.

하는 수없이 동네 전체가 수도를 놓았다. 길을 뚫고 공사를 하느라고 동네는 한참 부산했다. 매일 손으로 펌푸질을 하는 번거로움은 없어졌지만 공짜로 먹던 물도 이제는 도시처럼 사먹어야 하고 더 아껴가면서 써야 한다. 수돗물은 여러 과정을 거쳐서 우리가 직접 먹어도 된다고 한다.

물을 얼마큼 사용했나 정확도를 알아보는 계량기도 예쁜 뚜껑을 해서 땅에 묻었다. 내가 부러워하던 수돗물이다. 친정에서 어머니의 말씀은 이미 귀에 잠재되어 있고 스스로 물을 아껴야 한다. 우리 집을 짓고 처음에는 세면대를 놓았었다.

구부정하게 엎드려 세면대에서 세수를 한다. 어느 때는 잠깐이면 되겠지 하고 세수를 하다보면 수도를 잠그지 않고 끝이 날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물은 받아서 쓰는 물보다 더 헤펐다. 집집마다 세면대에 밀려 세수 대야는 천덕꾸러기가 되어서 개밥 그릇이 되거나 고물장수 한테 넘어 간지가 오래 되었다.

처음에는 세면대가 좋은 것 같더니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산다고 세면대는 허리 각도가 안 맞을뿐더러 어린 손자들이 세수를 해도 발란스가 안 맞는다. 자꾸 세수 대야가 생각난다. 하는 수 없이 창고지기를 하는 세숫대야를 찾아서 다시쓰기로 맘을 먹었다. 세면대는 내가 싫어하는 것을 알았는지 못 하나가 빠져 덜렁거린다. 다시 고치지를 않고 떼버렸다. 벽에 붙었던 세면대가 없으니 허전하다.

안 쓸 것처럼 창고에 두었던 세수 대야를 꺼내서 물을 받아 세수를 한다. 세수 대야는 낯설지 않지만 바닥에 깔아놓은 타일과 궁합이 안 맞는지 스텐 대야의 나딩구는 소리가 요란하다. 하는 수 없이 소리가 적은 플라스틱 대야로 바꾸고 내친김에 양동이와 바가지도 샀다. 양동이에 쓸 만큼 받아서 양을 조절해서 바가지로 퍼서 쓰니까 절수는 물론 흘러넘치는 걱정을 안 해서 좋다.

수도를 처음 놓았을 때 촌놈 겁주는지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주체 못하게 콸콸 쏟아졌다. 생각 끝에 눈썰미가 있고 솜씨 좋은 아들에게 부탁했더니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조절 해놓았다. 물은 적당량이 나오지만 김장을 하거나 한꺼번에 많은 물을 사용할 적에는 답답하다. 물을 한 방울이라도 아끼려면 느림의 미학도 괜찮다.

물을 아끼면 나라도 살고 집에도 수도세가 적게 나오니까 일석이조가 아닌가.

수도를 놓고 친정어머니가 우리 집에 쉬러 오신일이 있었다. 그리고 시장에 가시어서 싱크대에 들어갈 만한 바가지를 사가지고 오셨다.

“엄마, 바가지는 웬 것이어요?”

“응, 너희 집 싱크대에 넣고 설거지 하라고 사왔지?”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물 아껴 쓰라고 성가시더니 우리 집에 오셔서까지 성가시게 하네요!”

나는 가당치 않은 대거리를 늘어놓았다.

“그냥 싱크대에다 설거지를 하면 물이 얼마나 들어간 다구요?”

“아무 말 말고 앞으로는 싱크대 속에다 바가지를 넣고 물을 받아서 설거지를 해라.”

“싱크대 속에다 물을 가득 채우고 설거지를 하면 물이 얼마나 낭비인줄 아니.”

“예.”

싱크대를 재보고 가셨는지 설거지 바가지는 씽크대 속으로 쏙 들어간다.

“우리 엄마 눈썰미도 참 좋으셔.”

항상 물을 아껴 쓰라고 말씀을 하시었지만 싱크대 안에 넣으라고 바가지까지 사다 주실 줄이야 내 어찌 알았을까. 물 받아서 설거지하는 나도 어머니처럼 내 아이들에게 항상 물을 아껴 쓰라고 타일러주면서 길렀다.

생각 같아선 설거지 바가지를 걷어치우고 싶지만 어려서부터 쇄뇌 교육을 받은 나는 설거지 바가지가 낡았는데도 바꾸어가면서 여전히 쓰고 있다.

하지만 목욕탕에 목욕하러 가면 물을 흥청망청 쓰는 사람들이 참 많다. 나는 목욕은 뒷전이고 수도꼭지를 올 때부터 갈 때까지 틀어놓고 목욕하는 사람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내 눈에는 어째서 그런 사람만 눈에 보이는지, 수도 잠그라고 하면 한 소리 들을 것 같고 쓸데없는 고민을 한다.

할 수 없이 “물이 넘치네요!”하고 말을 건넨다. 어느 사람은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어느 사람은 “미안해요” 한다.

예전에는 손님들이 물을 넘치게 틀면 직원들이 “물을 잠그세요!”하고 말을 안 들으면 직접 와서 잠그고 그랬는데 손님이 떨어질 까봐 그러는지 그런 참견하는 곳은 한 곳도 못 보았다. 집에서도 수돗물이 콸콸 나오게 하고 목욕을 하는지 궁금하다. 필요 이상으로 물을 틀어놓고 딴 짓한다.

옆에 연세 드신 어른들이 앉아 있으면 등을 밀어주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등을 미는 동안 어른들은 목욕탕 수도를 잘 틀줄 몰라서 찬물 틀었다 따뜻한 물 틀었다 두 가지가 안 되면 고장났다고 자리를 옮긴다. “어르신 제가 수도꼭지 트는 법 알려드릴게요. 수도는 이렇게 하면 찬물이 나오구요. 이렇게 하면 따뜻한 물이 나오는데 수돗물이 졸졸 나오게 하면 쓰기에 안성맞춤이에요”

“등도 닦아주어서 고맙고, 수도꼭지 트는 법도 알려주어서 고마워요”한다. 현대식 물정에 어둡고 순진한 어른은 내 말도 잘 들으신다. 그 어른들 뿐만 아니라 나도 밑에 세대들한테 밀려 모든 것을 물어보고 살아간다. 수돗물을 많이 틀면 잠깐 동안 넘치는 것이 싫어서 졸졸 나오게 하면 쓰기가 괜찮았다. 내 집에서도 절수를 해야 하겠지만 목욕탕의 에티켓도 중요하다.

그리고 어느 행사장에서 조그만 물 한 병씩을 주면 반도 안 먹고 버리는 것도 낭비다. 행사 때 반 먹고 버리는 물이 아까워서 마음에 걸린다. 옆에 물통을 놓고 남는 물을 받아서 청소를 하던지 꽃밭에 주면 꽃은 더 빛나고 아름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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