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숙 /수필가. 수석동

하늘나라에 부치는 편지

 

어머니, 우표 부칠 곳이 없어요.

어머니! “저 막내며느리 예요.” 나무라기보다 언제나 칭찬이 앞서던 어머니 마음은 저 넓은 바다와 같았어요. 아범 편은 안 들어 주시고 제 편만 들어 주신 어머니셨죠.

어머니는 저에 큰 버팀목이고 후원자 이셨죠. 어머니의 칭찬이 듣고 싶습니다. 아범은 여태껏 살았어도 칭찬 한번 안 해요. 저는 아범보다 어머니를 더 좋아 했지요. 고부지간의 갈등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우리 둘이 있으면 아범 흉을 보고 오순도순 어머니는 시장에서 있었던 이야기 저는 이웃들과 있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너무도 재미있게 살았지요.

오늘은 아범이 아무 이유 없이 제게 핀잔을 했어요. 그래서 따졌는데 대답이 없어서 어머니한테 이르는 것이에요.

어머니가 계시면 “왜 그랬다니 이따 내가 혼내줄게” 하시고 저를 달래 놓을 텐데…

나는 잘못 한 것도 없이 핀잔을 먹어서 기분이 몹시 나빠요. 저는 결혼해서 어머니와 같이 살기로 했는데 큰형님이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손자들 기르러 큰아드님네로 가셨지요. 저는 그 때 어머님의 뒷모습을 보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저하고 살기를 원하고 원했는데 다시 큰집으로 가셨지요. 저는 스물네 살에 결혼을 했지만 워낙 철부지였지요.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마냥 응석만 부리고 살았으니까요.

아버님은 여름이면 참외를 길러서 샛노란 참외를 소쿠리에 따다 토방에 놓으시면 우리 일곱 식구는 대청에서 맛나게 먹었지요. 어쩌다 우리들이 약간 새파란 것을 따오면 아버님은 다 익으면 따야지 새파란 것 따 왔네. 하시면서 주위를 주셨지요.

그동안 어머니는 푸성귀 열무, 가지, 오이, 콩 철따라 밭에서 나오는 것을 광주리에 이고 저자를 가셨지요. 나는 이웃 복순 아가씨와 같이 동구 밖까지 광주리를 여다 드리고 오는 날도 있었고요. 어머니는 저자 마당에서 종일 앉아서 팔아 봤자 이만 원 내지 만원을 벌어서 반찬을 사오셨지요. 절임 갈치 한 묶음 열 마리. 사과는 좀 흠집이 있는 사과. 김칫독은 약간 금이 간 것으로 쌈직 하게 사오고 아범 메리야스는 시장 표만 사오구요.

해가 져서 땅거미가 질 때면 어머니는 배가 고프다고 하시면서 치마 허리띠를 붙잡고 간신히 집에 와서 마루에 걸 터 누우셔서 일어나지도 않으시면 나는 보따리를 풀어서 어머니한테 듣기 싫은 소리를 했지요.

“어머니 아범 메리야스 또 시장 표 사오셨네!”

“메리야스를 빨면 줄어서 아범 배꼽이 다보여요. 좋은 걸로 좀 사 오셔요.” 마루에서 허기진 배를 붙잡고 숨을 고를 때면 철없는 저는 잔소리를 하였지요.

“김치독은 금이 갔는데 물이 새어서 어떻게 쓰려구요?”

“금이 간 독은 아주까리를 문지르면 안 새여. 사과는 좀 싸게 사느라고 그랬지.”

어머니 시장에서 뭐라도 요기를 하시지 배가 고프게 돈 벌어다 주면 누가 고맙다고 한대요.

철없는 며느리는 계속 대거리다. 늙은이가 부끄럽게 어디서 무얼 먹는다니? 물건은 마루에 내려놓으시고 광주리는 다음 저자 갈 것을 약속하면서 대문간에 갖다 놓는다. 늦은 저녁 어머니가 사 오신 갈치를 석쇠에 올려놓고 보리 짚 탄 아궁이에 올려놓으면 노랗게 맛있는 냄새와 함께 이글거리면서 익어간다. 어머니와 아버님은 겸상, 나머지 다섯 식구는 둥굴레 상을 펴고 저녁을 먹는다.

갈치가 얼마나 맛있는지 모두 다 갈치 한 토막씩 붙잡고 꽁보리밥과 먹었지요. 그리고 설거지를 하고 쑥을 한줌 화로에 모닥불을 놓아 연기에 모기가 슬슬 꼬리를 감추면 어머니가 시장에서 사 오신 사과를 후식으로 먹었지요.

흠집 제거 하는데도 어머니 몫이었지요. 어머니는 조금 잡수시고 우리들 하나라도 더 주셨어요. 아범은 빨리 먹고 제 것을 뺏으면 나는 안 뺏기려고 엎치락뒤치락 하면 어머니는 그 때도 제 편이었어요. “그만 좀 해라” 어머니가 종일 오고가는 사람 쳐다보면서 한푼 두푼 모아 반찬을 사 오시는 바람에 저는 반찬 없는 밥 안 먹고 편케 살았지요. 어머니가 안 계실 때 시장에 갔다 올 때면 얼마나 무겁고 힘이 들던지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어머니는 광주리에 저잣거리를 하나 가득 무겁게 이고 이십 리길을 가시면서 항상 어린 것 잘 보살피고 내가 시장에 갔다 오면 일도 함께 하자 고마운 말씀만 하셨지요.

남의 집 시어머니들은 안 그랬대요. 어디를 가시려면 일을 더시키고 갔대요. 그래서 이웃 젊은 형님들이 저를 맨 날 부러워했어요.

선옥이 엄마는 시어머니 잘 두어서 좋다고요. 어머니처럼 저도 며느리를 얻으면 잘 해주리라고 항상 생각했어요.

어머니께서 생전에 계실 때 한 살이던 손자를 업고 그런 생각을 했지요. 어서 크거라. 너 장가가면 할머니처럼 네 색시한테 잘 해 줄게. 그 애가 자라서 장가를 가서 아들을 낳았어요. 어머니한테는 증손자가 되네요.

요즘 아이들 직장생활을 하다 결혼을 하니까 반찬하나 제대로 만들 줄 아는 애들이 몇이나 되어요. 어머니 손자며느리도 그 중에 한 사람 입니다.

내외가 맞벌이를 하고 시간이 없어서 김치는 항상 담아 주지요. 며느리는 제가 담아주는 김치가 맛있다고 해요. 진짜인지 가짜인지 몰라도 맛있다고 하는 소리에 마음이 뿅 가버립니다.

어느 날은 김치가 떨어졌는지 김장을 했다고 전화가 왔어요.

“어머니 제가요 김장을 했어요”한다.

“응 잘 했구나!”

“몇 포기나 했어?”

“두 포기요?”

두 포기도 김장이라고 어찌나 우습든지 수화기를 내려놓고 정신에 이상이 있는 사람처럼 혼자 많이 웃었지요.

“김치 맛 좀 보러 가야겠구나?” 부부는 동심일체라고 며느리가 하는 말이 “어머니, 제가 담은 김치는요. 아범만 먹는 김치예요”한다. 손자도 “며느리가 담은 김치는 저만 먹어요”한다.

말속에 말 들었다고 먹어보나마나 맛은 벌서 물 건너 간 소리 같아서 “처음부터 잘 하냐, 자꾸 하다보면 되는 것이지 하려고 노력만 하면 되는 것이란다.

손자며느리는 “어머니는 저에게 맨 날 칭찬만 하셔요. 칭찬이 너무 많아요!”

어머니처럼 칭찬을 했지요. 어머니도 제가 무엇이고 잘못해도 꾸지람보다 칭찬을 많이 하셨지요. 사람은 살면서 어느 누구에게라도 칭찬을 아끼지 말라고 해요.

어머니 저 말고 손자며느리는요 제가 시키는 대로 해요. 음식이나 어른들 쓰던 그릇 함부로 버리지 말라고 하면 “예”하고 대답도 잘해요. 저도 어머니를 잘 따라 주었듯이 손자며느리도 남들이 그러는데 그만하면 됨됨이가 쓸 만하다고 해요.

어머니가 쓰시던 물건들은 제가 다 쓰고 있어요. 김칫독도 다 사용해요. 독에 든 김치는 냉장고 김치보다 맛이 훨씬 좋아요. 며칠 전에는 하얀 막사발을 놓쳐서 깨트렸어요. 어머니한테 미안하지요. 그릇을 쓸 때마다 어머니 얼굴이 떠올라 거든요. 그릇 장만 하실 때 저는 없었지만 어렵게 장만 하셨을 줄 압니다. 그릇은 깨쳤지만 논과 밭은 귀퉁이 하나 안 떼고 옛날 그대로 잘 있어요. 부지런 하신 어른들 덕분에 고생 안하고 잘 살고 있어요. 어머니 제가 이제 철이 드나 봅니다. 철없이 어머니한테 대거리 한 것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어머니 온 식구들 잘 보살펴 주세요.

어머니 생전의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나오려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늘나라에서 안녕히 계십시오. 막내며느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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