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선/부석면

추수를 앞두고 천수만 지구 염해 피해는 심각했다.

봄부터 애써 키워 놓은 벼 이삭들은 쭉정이가 되어갔고 농민들의 가슴도 타들어 갔다.

농부들은 이런 상태면 수확을 할 수도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설상가상 임대로 경작을 하는 농민들의 피해는 더 심각했다. 경작비는 커녕 1년 농사를 망치면 생계가 막막하다.

타들어 가는 논을 보며 농부의 한숨 소리가 천수만의 바람을 타고 허공에 힘없이 맴돌다 떨어진다.

나는 어려서 물이 귀한 동네인 강경에서 태어나 살았다. 강경은 금강하구로 강물은 넘실대지만 먹을 물은 귀했다.

옛날에는 금강물을 그대로 길러다 먹기도 했다. 오염이 되지 않았을 때니까 가능했으리라. 어머니 말에 따르면 내가 태어난 날 비가 일주일 내내 왔다고 한다. 외할머니는 내 똥 기저귀를 처마를 타고 흐르는 빗물을 받아 빨래를 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강경이라는 곳은 포구 탓에 많은 사람이 모여드는 번화한 곳이었었지만 당시에 우리 마을 집마다 수도라는 것이 없었다. 단지 동네 골목 중간쯤에 간이수도가 있었다.

하루에 한 번 동네 사람들은 그곳에서 물을 받아다 날랐다. 물도 한 가구에 두 동이 이상은 안 되게 배급제로 받아 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양철로 만든 물동이를 들고 줄을 서서 기다리다 차례가 되면 한 방울이라도 더 받으려고 양동이 마다 가득 채우던 모습. 늘 있었던 일이고 고학년이 되면 으레 물 받아 오는 것이 책임처럼 되었다.

올해 가뭄이 심하다. 42년 만의 최악의 가뭄. 보령댐 저수량이 20%를 밑돌면서 식수조차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내년 봄이면 모내기도 어려울지 모른다고 걱정들이 태산이다. 동네마다 관정을 파도 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100m 이상을 파도 물 구경이 어렵다 하니 지하수도 이제 고갈되어 가나보다.

시내로 들어오면 절수니 단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농민들은 농사 걱정, 식당들은 단수 걱정, 주부들은 빨래 걱정에 물 부족 이야기가 화제다.

이런저런 걱정을 듣다 보면 어렸을 적 동네 간이수도에서 동네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두 양동이면 7식구가 하루 쓸 양의 물로는 언제나 부족했다. 엄마는 허드렛물로 청소를 하시고 밭에 주기도 하셨다. 한 번 쓴 물을 그대로 버리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이번 가뭄이 아니라도 오래전부터 세탁기에서 나오는 물을 받아 변기에 사용하고 부엌에서 나오는 설거지물을 받아 채소 밭에 뿌리며 마당 청소도 했다.

어른들의 물 절약은 고스란히 어린 나에게 습관처럼 몸에 배게 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경험하며 컸다.

하지만 주변을 살펴보면 아직도 "물쓰듯한다" 라는 말처럼 물의 소중함과 고단함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물을 너무 헤프게 쓴다. 수돗물이 싸다고 그 소중함도 가치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매일 먹고 사는 물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는 상황이 되어서야 물 절약을 외친다. 하지만 그도 공허하다. 어떤 사람들은 물 절약 캠페인에 참석하고 나면 언제 그런 말을 뱉었는지 조차 망각한다. 또다시 물쓰듯하는 버릇이 나온다.

물 절약은 습관이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행동을 보고 아이들은 자란다. 자원의 소중함, 경제관념 차원의 교육을 위해서라도 물 절약을 실천하는 부모가 되어야겠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습관도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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