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장렬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 언론학 박사과정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밀어붙이던 국정 교과서가 난항을 겪고 있다. 47명의 교과서 집필진을 간신히 구성했으나, 교과서 서술 기준과 원칙에 대한 이견이 엿보인다. 국사편찬위원회는 30일 예정했던, 교과서의 편찬 기준 발표를 연기했다. 신중히 검토해야 할 쟁점들이 많다는 이유이다.

교과서 편찬에 어떤 쟁점을 신중히 해야 할까? 실무진이 생각해도 문제가 있나 보다. 아마도 그 문제란 집필에 가장 중요한 기준과 원칙의 부재를 말하는 것 같다. 무엇을 어떻게 서술해도 국민들의 저항이 우려되는 상황임을 의식하고 있기에 조심스러운 것이다.

역사 교과서 누가 쓰는가?

정부와 여당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사태에는 두 가지 논리가 상정된다. (1) 올바른 국가관이나 역사관의 정립을 위해서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통한 역사교육이 중요하다 (2) 올바른 역사 교과서는 국가가 주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아쉽게도 이들의 논리는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전달, 의식되어 상호 간의 싸움에서 문제의 핵심을 흐리고 있다.

 

독일의 역사 교과서

독일의 중등교육과정의 역사 교과서는 여러 종류가 제작, 사용되고 있다. 독일의 연방공화국 체제가 지닌 특성이 교육 분야에서도 나타나는데, 중앙정부가 교과서 집필에 큰 윤곽을 권고하고 각 주정부가 교수 지침과 편찬 기준을 결정, 고시한다. 그 후 다양한 출판사에서 집필자를 선발해 역사 교과서를 제작하고 학교와 지도교사의 결정으로 선정, 사용된다.

독일 역사 교과서 집필자들은 자국의 현대사를 어떻게 서술할까? 지난 70년의 역사만을 보더라도 너무나 크고 다양한 사실들이 논의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나치의 전쟁과 유대인 학살 그리고 냉전과 분단에서 재통일, 심지어 오늘날 유럽통합과 난민사(史)까지 회피하고 은폐, 축소하고자 하는 나치의 전쟁 역사에서부터 사상적 대립과 충돌의 지배 그리

고 다시 화해와 연대를 이뤄야 할 공동체적 운명의 독일 현대사는 누가 봐도 복잡, 난해하다.

그러나 필자가 접한 이들의 역사교육은 자국의 역사적 사실을 동시대인들의 사회적 합의로서 지속, 변화해 서술하고 있다. 중등교육과정의 역사 교과서를 살펴보면, 50년대 제작, 사용하던 역사 교과서에서는 나치 정권에 대한 서술을 소극적으로 하며 전쟁사 위주로 서술됐다. 인본주의와 기독교적 가치를 강조하며 유럽의 공통적 정신을 강조하는 특징이 나타났다. 60년대에는 68년 학생운동과 더불어 사회과학 분야에서 자국의 역사교육과 역사학에 대한 전반적인 비판이 진행되었다. 이를 계기로 다원적인 연구와 교육이 요구되었고, 70년대 교과서에는 나치 역사를 본격적으로 거론하며, 유대인 학살 문제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과거 역사에 대한 회피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되었고, 비판받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분단 독일의 체제적 비교가 냉철하게 논의된다. 그리고 80년대와 90년대에는 적대국가 간의 사상적 충돌을 해소하고 하나 된 독일과 유럽연합 국가 건설을 위한 공존과 연대를 강조하는 내용들로 구성된다.

독일 사회가 경험했던 정치적 혼란들이 중등 교과서에서 서술되는 내용에 반영을 알 수 있다. 회피하거나 은폐 또는 왜곡의 서술보다 동시대인들이 자신의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인식, 평가하고 있는가를 서술하고 있다. 전체 사회 구성원의 공통, 합의된 역사의식 즉, 때로는 논의되지 않은 상태 그대로 서술되고, 때로는 미래 지향적인 내용들을 강조하는 것이다.

다시 한국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문제의 핵심을 집어본다. 역사 교과서 집필의 주체 문제, 즉 검,인정이냐 또는 국정화이냐의 공방은 사실 불필요한 논리이다. 왜냐하면 검,인정 교과서도 국정화도 모두 국가가 관여하는 동일한 제도이다. 그리고 ‘올바른’ 역사교육이란 몇몇 역사학자 또는 헌법학자에 의해 규정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특히나 현대사를 논의할 때 아직 밝혀지지 않은, 끝나지 않은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역사적 논쟁이 아직 화두에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시대에 살고 있는 오늘날, 누구나 한 번쯤 왜곡된 역사, 즉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내용과 전혀 다른 사실을 접하고 놀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 역대 대통령에 대한 왜곡된 역사에서 일본 침략과 강제 점령 그리고 6.25전쟁까지 아마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국 사회에는 아버지 세대와 자녀 세대가 서로 다른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다. 교과서에 서술된 왜곡된 역사들은 오히려 인터넷 공간에서 사실적 사건과 과학적 분석들로 전달되고 있다. 이 같은 현상들은 독일 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일들이며 유독 한국 사회에서 확산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마치며

역사는 과거를 통해 미래를 준비하는 사실적 관계이다. 회피와 은폐 또는 축소와 왜곡이 있다면 다가올 미래 또한 불분명할 것이다. 나치의 역사를 가진 독일이 선조들의 과오를 어떻게 정리, 서술했는지 그리고 분단된 독일에서 통일국가를 만들기까지 서로를 어떻게 묘사했는지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무엇보다 독일의 역사 교과서는 독일 국민들의 역사적 사실 관계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올바른 역사교육이란 동시대의 구성원들이 합의한 역사를 교육하는 것이다. 역사 교과서를 누가 쓰는가의 문제는 전체 국민들이 자신들의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사실에 대한 합의가 선행되어야 하며, 이들에 반영이 교과서로 편찬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서술은 다음 세대에게 평가받고 수정, 보안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역사는 민주주의의 변천사이기 때문이다. 지금 왜곡되고 있는 우리 역사는 민주주의의 후퇴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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