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나의 ‘하! 나두’ 건축 33

루프 위에 잠시 올라 앉으니 바닷가 2층인듯 감성이 솟아난다. 주차 공간 자체만으로도 장소성을 짙게 가진다.
루프 위에 잠시 올라 앉으니 바닷가 2층인듯 감성이 솟아난다. 주차 공간 자체만으로도 장소성을 짙게 가진다.

그리 크지 않은 가벼운 자동차를 타고, 새로 지어진 번듯한 건물의 지하 주차장으로 산뜻하게 진입했다. 건물로 들어서는 동시에 'In & Out'이 한 개의 통로라는 점에 실망했고, 주차 램프의 과격한 곡률에 출차 피로도가 급속도로 몰려왔다.

결단코 짧지 않고 나름 자부심 있는 운전 경력임에도 미간에 내 천()자가 지어지는 불쾌감이었다. 어색한 비율로 그려진 주차 라인에 안착하고서, 반짝이며 으스대는 새 건물의 탐탁지 않은 첫인상에 쓴 입맛을 다셨다.

일반적으로 지하 주차장에 일렬로 선 기둥은 건축 평면의 유닛이 된다. 결코 옮길 수 없는 내력 구조체가 노출된 형태이다. 기둥에 맞춰 주차하고, 주차를 고려하여 기둥을 배치한다. 보통의 아파트는 주차장에서부터 고스란히 솟은 기둥이 각 세대의 벽을 관통하여 하중을 연결하고 있다.

설계를 시작할 때, 주차장 출입구와 주차대수 산정을 우선시할 만큼 주차장은 치밀하게 기획하는 부분이다. 주차장법은 건축 법규 중에서도 구체적인 수치에 대해 제한이 많은 편이나, 아쉽게도 부지와 건축 형태로 인한 한계와 실제 시공상의 편차로 인해 쉬이 불편감을 선사하곤 한다

시대가 여러모로 변모하며 주로 기능성을 추구하던 주차장도 그 의미가 다각화되었다. 차량은 운행 전 후 혹은 주행과 무관하게 잠시 휴식을 취하는 일종의 안식처이자 아지트 공간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자동차는 진작에 나만의 공간으로 활용된지 오래다. 청년 문화 가운데는 자동차를 개인의 쉘터(Shelter)로 까지 인정하고 있다. 이처럼 주차 공간은 내 공간의 입지라는 의미까지 부여받기 시작했다. 이제 주차장에 살고 싶은 마을의 감성을 담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신호이다.

주차 공간의 시설과 관리 수준은 유치하고자 하는 드라이버에 따라 달라짐을 여실히 느낀다. 호화 상가와 고급 아파트 주차장의 램프 구배와 곡률, 그리고 바닥과 마감재 조명 등은 평온하기 그지없다. 이는 장애나 이동에 어려움이 있는 이들을 위한 설계가 일반인에게도 편의를 제공하는 '유니버설 디자인'과도 닮았다. 폭이 넓고 차체가 낮은 외제 차를 위해 설계된 공간은 특이점이 없는 일반 차량에게 더 없는 안락함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러한 넓은 주차 공간과 부드러운 사면은 분명 효율적인 호객 요소이다.

얼마 전 들렀던 암흑의 주차장은 온 신경이 날카롭게 설 만큼 가혹한 환경이었다. 안전 가옥 같은 내 차의 문을 여는 순간이 망설여졌고, 다시 돌아올 생각에 출차를 고민하기도 했다. 그리고 가급적 재방문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부디, 범죄에 취약하기로 소문난 주차장의 장소성을 방치하지 않기를 바란다. 게다가 날로 늘어나는 차량과 운전 미숙자와의 공존을 위해서는 주차환경 개선에 공을 들여야 함이 틀림없다.

주차장만큼이나 여러 가지 문제점과 위험성을 지녔던 '화장실'의 변화상을 떠올려 보자. 과거 우리는 수 년에 걸쳐 범국가적 화장실 환경 개선 사업을 추진하여 아름답고 깨끗하며 안전한 화장실을 폭발적으로 늘린 이력이 있다. 이제는 주차 환경도 상향 평준화를 위해 노력하면 어떨까 제안해 본다. 지자체와 건축주가 필요성을 인지하고, 자차 이용객이 가지는 건물의 첫 이미지를 개선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더 나아가 방문객의 발걸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를 응원한다.

최하나 건축 칼럼니스트/전) ㈜엄앤드이종합건축사사무소/전) 서울건축사협회 서부공영감리단/전) 2021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시민위원/현) 시흥시청 '시흥문화자치연구소' 기획자
최하나 건축 칼럼니스트/전) ㈜엄앤드이종합건축사사무소/전) 서울건축사협회 서부공영감리단/전) 2021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시민위원/현) 시흥시청 '시흥문화자치연구소'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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