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코디언은 단순한 악기가 아니야. 인생과 삶을 모두 담아낸 악기지”

아코디언 마에스트로 전)한국아코디언협회 ‘이선백’ 회장
아코디언 마에스트로 전)한국아코디언협회 ‘이선백’ 회장

그가 치는 아코디언은 단순한 악기가 아니다. 흔히 흘러간 노래를 연주하는 반주악기로 치부하기엔 뛰어난 음률과 애잔한 정서가 심장을 파고든다.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리는 4, 은은한 조명이 탁자를 비추는 카페에서 아코디언 마에스트로 이선백 선생을 만났다. 봄빛으로 물든 벚꽃잎에서 잔잔한 아코디언 선율이 들려오는 것 같아 사방을 두리번거리게 만든 오후 시간이었다.

1980년 국내 처음으로 만들어진 한국일보 문화센터에서 아코디언 강습을 시작했고, 기독교방송, 각종 문화센터와 신학교 등에서 아코디언의 우수성을 알리고 제자들을 양성하는 데 힘을 쏟았다.

이선백 선생은 단순한 악기가 아니다. 인생과 삶을 모두 담은 것이 바로 아코디언이라고 예찬했다.

대한민국 최초 피아노와 아코디언, 피리를 만든 가정에서 어린 시절부터 아코디언을 분해하고 조립하는 일을 자연스럽게 접했다. 선생은 현재 세상을 유랑하며 아코디언을 전파하고 다닌다.

제21회 전국시낭송대회에서
제21회 전국시낭송대회에서

Q 서산에서 아코디언의 대가를 만나다니 영광입니다. 이곳에 터를 잡은 계기가 있다면요?

몸이 좋지 않아 요양차 겸사겸사 서산에 정착한 지는 1년가량 됐다. 하지만 4년 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아코디언을 가르치려고 내려오다 보니 낯설지는 않다.

요즘 내가 서산에 거주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고 아코디언을 배우려는 분들이 계셔서 수업도 하고 또 버스킹공연이 있으면 봉사도 해드리고 있다.

특히 서산 번화로 로데오거리 살리기 캠페인공연에 동참하여 기타와 아코디언 앙상블로 공연도 했다.

Q 아코디언은 언제 접하게 됐는지요?

50년대 해방 이후던가 아버지가 마산에서 피아노 제조 사업을 하셨어. 그 당시만 하더라도 정상적인 루트로 피아노가 들어온 게 아니라 밀수품으로 일본을 통해 들여왔는데 그것도 완제품이 아니고 소프트웨어만 말이야. 그때는 기술력이 안 됐지. 덮개만 우리 아버지가 만들었는데 그게 오늘날 피아노 시초였어.

그러고 보면 피아노가 제일 먼저 만들어진 게 서울이 아니고 경상남도 마산이란 것도 재밌어. 영창, 삼익피아노가 나오기 훨씬 전이야.

Q 워낙 악기가 귀한 시절이라 불티나게 팔렸겠는데 당시 상황은 어땠습니까?

그때만 해도 동네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아니면 피아노를 사지 못했어. 수요처가 없는 거야. 그러다 보니 궁여지책으로 바꾼 게 풍금이었지. 풍금 없는 학교는 없었거든. 그리곤 또다시 교육용 악기를 만들기 위해 멜로디언을 만든 게 우리 아버지가 운영하는 악기회사였어.

1964년 우리나라 최초 아코디언이 탄생했어. 지금 생각해도 우리 부친이 참 대단하신 분이야.

박정희 대통령이 아코디언을 참 좋아하셨지. 풍금도 잘 쳤어. 국무총리로는 김종필 씨가 아코디언을 잘 쳤고.

내가 중학교 때였나. 지금은 세종문화회관이지만 당시만 해도 시민회관이었는데 그곳 공터에서 제1회 산업박람회가 열렸어. 아버지가 만든 아코디언을 출품했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아코디언이 나왔다며 신기해했지. 그때 문교부장관상, 상공부장관상, 국무총리상을 받게 됐지.

그때는 (아코디언)만들어낸다고 부자가 되는 시절이 아니었어. 먹고 살기도 힘든 시절에 악기 구입이 어디 그리 쉽나. 피리 하나 겨우 불던 시대인데. 당시 서울시 5대 최복현 교육감이 학교마다 밴드를 만들어 경연대회를 했어. 그러면서 악기들이 들어가게 됐지. 배고픈 시절이었어.

연주를 하고 있는 이선백 선생
연주를 하고 있는 이선백 선생

Q 힘든 시절을 옆에서 보면서 악기 만드는 일도 많이 거들었을 것 같습니다. 당시 얘기를 들려주세요.

악기 하나 만드는 과정들이 녹록지 않았어. 어린 중학생 시절부터 학교 갔다 오면 바로 공장에 내려가서 아코디언을 만드는 일을 거들었어.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아코디언)분해하고 조립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걸.

형님 따라 교회에서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불렀어. 음악을 굉장히 좋아했지. 그래서 대학도 음대를 가겠다고 부모님께 말했지만 결사반대하셨지. 무조건 판검사가 돼야 한다는 거야.

결국 부친이 운영하는 사업의 폭을 넓혀주기 위해 영문과를 선택했어. 외국업무를 맡아야 하니까. 형님은 아버지의 대를 이어 아코디언을 만들고, 나는 해외에서 원료 등을 수입해야 되고. 그때는 누구에게 맡기는 걸 두려워하던 시절이었어. 거의 가족기업이었지.

Q 1970년대 서울 종로 낙원상가에서 악기점을 운영하셨던데.

그럼. 집에서 만든 걸 가져와서 팔아야 하니까. 가보면 악기들이 쫙 있잖아. 내가 운영하던 곳이 제1호야. 거기서 시작하자마자 얼마 안 있어 일본에서 전자노래방이 막 들어왔지.

그때 전자로 전환했으면 돈 좀 벌었지.

하지만 어릴 때부터 어쿠스틱 음악에 심취해서인지 안 되더라고. 시간이 지나면서 아코디언이 전자에 밀렸어. 그래도 나는 두고 봐라. 아코디언만은 내가 신이다. 장인이야. 마에스트로라고하며 스스로 오기를 부렸어. 지금은 우리나라도 인식들이 많이 좋아졌지.

유럽에 나가보면 놀랄 거야. 그곳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아코디언을 가르치더라고. 우리는 피아노를 가르치지는데 말야.

송년음악회 ‘투캣츠’ 인사동 시가연에서
송년음악회 ‘투캣츠’ 인사동 시가연에서

Q ‘아코디언 마에스트로 이선백 선생이라면 인사동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고 들었습니다. 재밌는 일화를 들려주세요.

아 사실이다. 인사동에 가면 나 때문에 카페마다 아코디언을 안 사놓은 데가 없을 정도였어. 한 번씩 놀러 가면 주인들이 쳐 달라고 해.

마침 그때 노무현 대통령 집권 시절이었는데 청와대에서 인사동으로 많은 분이 나오셨지. 그때 내 연주를 들었던 분이 얼마 있지 않아 전화가 왔었어. 유럽에서 손님이 왔는데 아코디언을 들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냐고.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MBC 사장직을 하고 있을 때도 국회의원들과 연주를 들으러 오셨고, 여의도 국회에도 초청받아 가곤 했지. 아코디언이란 악기가 바로 그런 악기야.

초등학교 제자들 공연을 마친 후
초등학교 제자들 공연을 마친 후

Q 안산에서 3년 동안 아코디언 붐을 일으켰습니다. 짧은 기간 배웠음에도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던데.

문화원 강좌를 했지. 7개월 가르친 제자들을 예술의전당에 세웠는데 다들 놀라워했어. 뛰어난 음률이 안산시를 넘어 다른 도시로도 파장을 일으켰지. 아코디언 붐이 안산시에서 일면서 고창 등 여러 도시에서 연주를 부탁하기도 했어.

사람들이 물어. “아무것도 모르는데 배울 수 있냐?”. 물론이지. 그냥 배우면 돼. 100년이 돼도 도전하지 않으면 배우지 못하는 거야.

Q 특히 아코디언은 뛰어난 음률을 자랑한다고 했는데 또 다른 매력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아코디언은 참 묘한 악기야. 우선 무동력으로 펌프질을 해서 바람을 이용하여 음을 만들어내지. 반주를 담당하는 베이스 부분과 건반, 음색 버튼으로 폭넓은 음역을 자랑하는 게 바로 이 악기의 또 다른 매력이야.

연주범위와 음역도 상당히 커. 하지만 눈을 감고 들어봐. 플롯과 바이올린, 바순 같은 악기들의 음색이 묻어나지. 때로는 여러 악기를 함께 연주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묘한 악기가 바로 아코디언이야.

Q 유럽에서는 아코디언이 학교에서 정규과정으로 들어가 있을 만큼 악기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던데 어떠신가요?

전자악기들이 만들어지면서 우리나라에선 옛 유물로 전락해 버렸어. 현재는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수준이야. 1900년대 초만 하더라도 기타와 함께 대표적인 반주악기로 주목받았는데. 1980년대 초 전자악기가 도입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야. 세월이 참 무상하지.

그나마도 다행인 건 최근 들어 어쿠스틱 악기들이 서서히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아코디언도 어르신들과 젊은 세대에 새롭게 어필되고 있어.

심금을 울리는 아코디언 마에스트로 ‘이선백’ 선생
심금을 울리는 아코디언 마에스트로 ‘이선백’ 선생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서산에도 아코디언을 좋아하는 분들이 꽤 많더라고. 사업하시는 몇몇 분은 서산에서 서울로 오셔서 배우고 내려가시기도 했지. 그분 때문에 서산을 사랑하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또 이런 분들을 보면 잊혀진 악기로 치부하기엔 너무도 매력적이잖아. 요즘도 아코디언에 목말라 하는 분들이 있어. 그럴때마다 기분이 좋아.

꿈이 있다면 많은 분에게 아코디언을 전파하여 서산연주단을 구성해 보고 싶어. 사실 이렇게 많은 말보다 한번 들으면 느낌이 완전 달라지는 게 이 악기의 특징이야. 유럽의 나이 드신 분들은 아코디언 음색에 빠져 악기를 들고 전 세계를 다니시면서 공연하잖아. 그것만 봐도 얼마나 멋진 악기인지 가늠할 수 있지.

나는 다시 태어나도 하나를 선택하라면 배우기 쉽고 언제 어디서든 공연할 수 있는 아코디언을 선택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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