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충남 지역에서 학살된 민간인 희생자 유해 발굴작업이 시민사회단체의 손으로 본격화됐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 조사단(아래 유해발굴단, 단장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은 지난 15일 충남 홍성군 광천읍 담산리 마을 폐광산에서 유해발굴에 나섰다.

정부의 무관심 속에 수십년간 방치돼 온 현장의 유해발굴을 위해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나선 것이다.

지난 2014년 2월 발족한 공동조사단은 매년 한 곳씩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민간인들의 방치된 유해를 찾아 발굴하고 있다. 지난해 '진주지역 보도연맹사건 관련 민간인 학살 희생자'(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39명의 유해와 유품을, 지난 2월에는 '대전형무소사건 관련 민간인 학살 희생자'(대전 동구 낭월동) 약 20명의 유해와 유품을 발굴했다. 이번이 3차 발굴지다.

유해매장을 공식 확인한 유해발굴단은 내년 2월 중에 본격적인 유해발굴을 벌일 계획이다. 물론 서산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유해발굴단은 발굴비용을 시민 모금으로 마련할 예정이다. 안경호 4.9 통일평화재단 사무국장은 "수십 년 동안 캄캄한 폐광 속에 갇혀 있는 유해에 햇볕이 비출 수 있게 해야 한다"며, "뜻 있는 시민들의 후원을 바란다"고 말했다.

불행히도 우리의 최근 역사는 65여 년 전의 그 과오를 씻지 못하고 똑같은 잘못을 계속 되풀이해왔다.

지난 세기, 우리 민족은 참으로 많은 질곡을 헤쳐왔다. 그런만큼 풀어야 할 과제도 많다.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과거청산의 주요 과제는 크게 일제강점기의 친일과 강제동원, 한국전쟁기의 민간인학살, 독재정권 시절의 인권탄압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아직까지도 청산되지 않은 친일잔재를 청소하고 일제강점기의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것, 그리고 해방과 전쟁, 국민국가형성기에 발생한 대규모 민간인학살의 진실찾기, 또 군사독재정권의 통치하에서 발생한 무수한 인권탄압 및 조작의혹 사건, 군의문사 사건의 해결과 재발방지책 마련 등이 과거청산의 주요 과제들이다.

물론 민간인학살 문제를 비롯한 각종 과거사 진상규명 과정에서 소란이 있을 수도 있다. 숨겨진 진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충격도 있을 테고, 이의 해결방안과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도 분분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국민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터져 나올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데서 생성되는 긍정적인 에너지이지 결코 퇴행이나 답보가 아니다. 상처는 드러내야 치료할 수 있다. 숨기기에만 급급하다면 곪아터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어려워도, 어떤 난관이 닥쳐도 과거의 묻혀진 진실을 밝혀 미래를 비추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의 과제다.

한국전쟁기의 민간인 피학살자 유족 등 과거사 관련 피해자들이 이제 고령이 되어 하루가 다르게 유명을 달리하는 분들이 부쩍 늘고 있는 이때, 피해자나 유족 1세, 직접 경험자들이 한 명이라도 더 살아 있는 동안에 진상조사를 서둘러야 할 이때, 그 책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훼방을 놓거나 시간만 축내는 자는 역사의 돌팔매를 맞는다.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은 학살의 대지 위에 살아남은 우리의 몫이다. 피해자들은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한 채 구천을 떠돌고 있고 유족들은 통한을 가슴에 품은 채 유명을 달리하고 있다. 다시는 억울하게 죽어가는 사람이 없도록, 풀지 못한 한을 가슴에 품은 채 세상을 등지는 사람이 없도록, 차마 토로하지 못할 반인도적인 범죄를 합리화하고자 한평생 몸부림치는 사람이 없도록, 보고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하며 인간성을 잃어가는 사람이 없도록, 지금 우리가 나서서 잃어버린 역사와 사회정의를 복원해야 한다.

시민과 시민사회단체의 동참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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