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점엄마의 200점 도전기 98

아빠와 두 딸들
아빠와 두 딸들

휴일이다. 나는 남편 없이, 아이들은 아빠 없이 휴일을 보내고 있다. 장장 4주째다. 대형프로젝트를 맡은 남편이 주말과 공휴일을 포함해 단 하루도 쉬지 못한지.

세미 정장 대신 활동하기 좋은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으로 출근한 것도 4주째다. 사무직인 남편이 시시때때로 안전모와 작업화를 착용하고 현장 점검을 하다가, 틈나는 대로 사무실에 복귀해 업무처리를 한다.

퇴근한 남편의 머리카락이 눌려 있었다. 그게 거슬렸는지 야구모자를 쓰고 올 때도 있었다. 작업화 속 축축한 습기 때문에 군대에서 얻은 몹쓸 무좀도 기승을 부렸다. 참다못한 남편이 무좀약 구입을 부탁했다. 가려움증이 얼마나 사람을 괴롭히는지 짐작하기에 나는 호기롭게 무좀약 2개에 발가락 양말까지 추가로 선사했다.

아빠와 두 딸들
아빠와 두 딸들

저녁 식사가 끝나면 식탁 정리를 대충 도와준 남편이 향하는 곳은 거실이다. 절인 배추처럼 녹초가 된 몸으로 소파와 혼연일체가 되기 위해서다. 저녁 설거지를 도맡아 하던 모습은 4주 전부터 사라졌다. 속사정을 알기에 바라지도 않는다. 병든 닭이라도 되는 양 깜빡 졸다가 본인의 코 고는 소리에 놀라 눈을 번쩍 뜨는 모습이 우습고도 가엽다.

다만 아빠와 아이들이 몸으로 노는 시간이 줄어든 점만은 아쉽다. 아이들도 처음엔 아빠와 놀고 싶어서 소파 곁을 얼쩡거렸는데 지금은 아빠가 몸을 일으키기 전까지 물리적 거리를 두는 편이다. 아빠의 컨디션 난조를 눈치챈 듯하다.

세상에! 소파에 누운 아빠와 설거지하는 엄마라니, 이것은 전형적인 가부장적 유물이 아닌가. 시대를 거스르는 우리 집 저녁 풍경이 웃프다.

아빠와 두 딸들
아빠와 두 딸들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도 두 번째, 세 번째 대형프로젝트가 연이어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는 1년 동안 나누어 사용할 에너지를 단기간에 모두 쏟아부어야 할지도 모른다. 과중한 업무를 담당자라는 이유로 한 사람에게만 떠넘기는 회사 문화에 조금 많이 화가 난다. 아이들에게서 아빠를 얼마나 더 오래 빼앗아갈 작정인가. 과로사도 남의 얘기가 아니다.

대학 시절 자정을 넘기지 못하는 남편의 별명은 신데렐라였다. 그 정도로 잠이 많은 사람이다. 잠을 늦게 자면 어김없이 입술이나 코에 헤르페스가 생기곤 했다.

그는 요즘 10시경 잠들어 6시쯤 깬다. 더 자고 싶은데 6시면 눈이 떠져서 괴롭다는 남편은 몸이 피곤해서 일찍 곯아떨어지는 건설현장 근로자들이 이해된다고 했다. 일찍 자는 만큼 일찍 눈이 떠지는 패턴도.

아빠와 두 딸들
아빠와 두 딸들

내가 거주하는 지역에는 교대 근무를 하는 생산직 노동자가 많은 편이다. 생산 공정은 365일 가동되기에 휴일에 출근한 아빠를 대신해 엄마 혼자서 자녀를 돌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남편이 일터에서 일하는 동안 아내는 가정에서 온갖 집안일을 하는데 거기다 육아까지 혼자 하므로 독박 육아라고들 한다. 나도 4주째 독박 육아 중이다.

지난주 토요일에는 혼자서 아이 둘을 데리고 눈썰매장에 갔다. 큰 가방을 메고 아이 둘을 쫓아다니는데 어쩐지 좀 멋쩍고 쓸쓸했다. 교대 근무자의 아내들이 어떤 심정일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적어도 나는 돈보다 삶의 질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남편의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응원한다. 그리고 지금 당장, 남편의 휴일이 시급합니다!

최윤애 보건교사
최윤애 보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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