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나의 ‘하! 나두’ 건축 - 28

아파트 거주인구가 2/3에 육박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집의 형태는 박공지붕의 마당 있는 집인 경우가 많다.
아파트 거주인구가 2/3에 육박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집의 형태는 박공지붕의 마당 있는 집인 경우가 많다.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무려 62.9%의 인구가 아파트에서 거주 중이라고 한다. 아파트 거주자는 지속해서 증가 중이고, 같은 모양새의 주택이 양산 중이다. 그로 인해 주택을 비교하는 일은 조금 더 단조로워지고 있다. 대신 층수에 대한 장단점이 새로운 판단 기준으로 추가되었다.

얼마 전 지인이 2층에 청약이 당첨되었다며 저층 세대에 대하여 의견을 물어왔다. 필자는 주택살이에 로망이 짙은 편이라, 다양한 주택 형태에 거주하였음에도 주로 저층 세대를 골라서 거주하였다. 고층에 주로 거주하셨다는 이웃분인데, 나의 저층 예찬을 두어 번 들으셨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질문을 받은 김에 차이점을 고민해 보았다.

우선, 저층은 지면과 가까워서 전망을 보며 심리적 안정감을 가질 수 있으며 주택살이의 분위기도 슬며시 추가되어 있다. 심신 안정과 수면용 ASMR로 자주 등장하는 빗소리를 최고급 음질과 입체 서라운드로 들을 수 있다. 비가 시작될 때 비와 흙이 부둥켜안으며 풍기는 흙냄새도 후각을 자극한다.

단지 내 조경에 식재된 꽃나무의 내음은 특급보너스이다. 자연과 친밀한 만큼 간혹 흙에 공존 중인 다양한 곤충이 유입될 수도 있으나, 다행히 미세방충망이나 방제를 통해 대처 가능한 수준이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않고 가뿐하게 오르내릴 수 있다는 점은, 의외로 제법 시간 절약을 할 수 있다. 이는 쓰레기를 배출하러 외출할 때 아주 유용했던 장점이다.

몇몇 아파트 브랜드에서는 1층 세대에 테라스를 서비스 면적으로 제공하여 개인 마당으로 이용 가능하게 하였다. 행여나 층간소음을 유발할까 노심초사하는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고, 야외공간이 확장된 개방형 아파트라는 점은 어린 자녀를 키우거나 손자 손녀가 편히 찾아오기를 바라는 조부모 사이에서 크게 인기몰이를 했다. 이는 1층의 단점을 특장점으로 승화시킨 사례이다.

그렇다면 고층의 매력은 무엇이 있을까? 고층은 층이 높아질수록 앞 건물이 드리우는 그늘 간섭이 적어서 채광에 유리하다. 요즘은 저층 세대도 최소 채광기준에 따르고 3D 모델링으로 검증하여 설계하기에 자연 채광이 안 되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아무래도 고층일수록 햇빛이 더 넉넉해진다. 발코니에서 화초 키우기를 즐기는 나에게는 자연광이 나름 중요한 요소이다. 또한 자연광은 건축물 내의 온도 차를 생성하며 대류 현상을 일으켜 자연 환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추가로 아파트 자체가 보안과 치안에 유리하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고층이 조금 더 자유롭다. 고층에 살면서 환기를 위해 창문 한 뼘쯤은 맘 편히 열어두고 외출까지 하고 있다.

다만, 고층으로 갈수록 풍하중을 견디기 위해 미세한 흔들림이 있다. 일상생활에서 느껴질 수준은 아니지만, 예민한 경우나 바람이 심할 경우에는 풍하중을 몸이나 눈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 돌풍이 불었던 어느 날은 주방 식탁 자리의 행잉 조명등이 인식 가능할 만큼 흔들렸다. 건축물 안에서 건물이 흔들리는 것을 눈으로 본다는 것이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하지만 강한 바람에 큰 나무는 부러졌지만, 풀잎은 유연하게 흔들리며 살아남았다는 이야기에도 풍하중의 원리가 담겨있다.

혹자는 같은 평면의 아파트 매물만을 보고, 실제 물건을 확인치 않고 마음에 드는 동호수를 골라서 매매까지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실상 아파트 청약 시스템도 모델하우스에서 모종의 정보만을 확인한다. 아직 지어지지 않은 건물의 평면과 조감도 및 단지 모형을 보고, 동호수 추첨이라는 랜덤 지정을 순순히 수용하고 있다. 이는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가 가진 평준화 특성이 있어서 가능하다.

다만, 비슷할 수 있어도 완전히 같을 수는 없다. 일전에 살던 집은 단지 내 수변 조경이 한눈에 보이는 2층이었는데, 전망을 보고 반한 분에게 즉시 거래되었다. 여러 이유로 집 고르는 재미가 줄었지만, 저층이든 고층이든 로열층이든 내가 좋은 집은 타인도 좋아한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집을 만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다음번 이사까지도 유연해지는 지름길이다.

최하나 건축 칼럼니스트/전) (주)엄앤드이종합건축사사무소/전) 서울건축사협 서부공영감리단/전) SLK 건축사사무소/현) 건축 짝사랑 진행형/현)서산시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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