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최병부(사)한국문인협회 서산지부장
최병부(사)한국문인협회 서산지부장

얼굴에 때리던 혹한도 이제는 신비의 자연에 꺽이나 보다. 겨울의 냉기를 가슴으로 녹이면서 따뜻함과 포근함을 전해주는 봄기운에 2월은 짧지만 희망의 달이다.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인 입춘이 지나자 무척 길게만 느껴지고 추웠던 겨울이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겨울의 끝자락에

서 나는 방선암 시우회 몇분을 모시고 방선암을 찾았다.

백제의 미소를 간직한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을 오르는 길을 지나 오른쪽 산자락에 병풍처럼 자리잡은 방선암(訪仙岩) 바위가 오늘따라 고즈넉해 보였다.

조선시대 해미 현내에 있는 당대 최고의 선비들이 이곳을 즐겨 찾아 시를 읊었다던 곳이다.

방선암 앞에 있는 안내판에는 방선암에 새겨진 윤선좌(尹善佐)18151213일에 운산면 용장리 용못에서 출생하여 헌종 4(1838)년 풍기군수와 통정대부(通政大夫), 돈영부도정(敦寧府都正)을 역임하였으며, 그는 호학의 지기인 한맹유(韓孟裕), 김 진(金 璡), 홍병권(洪秉權) 문사(文士)등이 세상사 온갖 풍진을 잊고 호연지기(浩然之氣)의 높은 문학적 풍류의 철학적 담론을 한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헌정 12년 병오 1846년경에 방선암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후 170여년이 흘러버린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강대이 골의 방선암.

그 옛날부터 역사와 풍류가 깃들어 있는 운산면 용현리 강댕이골에 문화와 문학의 향기를 다시 피워 올려야 하겠다.

우리 지역의 독보적인 문화 유적지이면서도 그 가치와 의미를 인정받지 못하는 이곳 방선암이 하루빨리 그 명성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산세가 수려한 계곡 위 마당바위에 모여 시를 짓고 풍월을 읊던 조선시대 문인들의 흔적이 있는 방선암 앞에서 회원들은 담소와 기념 사진을 찍었다.

지금은 넓은 마당 바위도 간데없고, 화문석 깔아 시를 지어 읊던 그 시절 선비들도 가고 없지만 그 시대의 문학적 정신을 이어가고자 노력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방선암을 뒤로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자. 부정적 사고를 버리고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이제 분열의 시대에서 통합의 시대를 만들자. 극한 대립의 시대에서 화합의 시대를 만들어야겠다.

그리하여 영광스런 조국의 역사를 창조하고, 희망찬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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