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산시청 사격팀 박신영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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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산시청 사격팀 박신영 감독
  • 최미향 기자
  • 승인 2022.01.10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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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서 반드시 메달을 따오겠습니다”
서산시청 사격팀 박신영 감독
서산시청 사격팀 박신영 감독

부모님은 공부하길 바라셨고 저는 사격을 하길 원했죠. 백번을 물어도 저는 제 길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사격이 바로 저를 살리는 힘이거든요.”

14살 어린나이에 사격에 입문하였지만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으로 방황을 했던 서산시청 사격팀 박신영 감독. 하지만 자신을 가르치던 감독님 덕분에 다시 일어나 결국 4년 전액 국비 장학생으로 한국체대에 스카우트됐다.

한국 신기록을 두 번이나 경신했지만, 국제무대와는 인연이 닿지 않은 그는 지도자의 길로 선회하면서 한서대와 충남체육회 사격팀에서 지도자 생활을 해왔다.

지난 8일 만난 박 감독은 나의 신념은 걷는 자만이 앞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라며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도전 정신으로 2022년 아시안게임과 2024년 제33회 파리올림픽에서 기필코 메달을 획득하여 코로나로 힘든 대한민국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것이라고 강한 다짐을 내비쳤다.

서산시 사격팀원들의 국제대회 입상 사진
서산시 사격팀의 국제대회 입상 사진

Q 어린 시절 이야기와 사격과의 인연을 말해달라.

충남 연기군 조치원에서 11녀 중 장남으로 자란 저는 유복한 가정에서 엄격하신 부모님의 가정교육으로 무탈하게 성장하였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언론사 근무하시던 아버님의 본사 발령으로 서울로 올라갔고 대학 졸업 때까지 줄곧 서울에서 생활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운동에 관심이 많았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전문가 선생님들 눈에 띄어 서울체육중학교에서 진학을 권고받을 정도였지요. 하지만 부모님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결국 일반 학교로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인연의 끈이란 참 묘한가 봅니다. 입학 첫날 사격부와 육상부에서 신입생 선발 테스트를 진행하는 것을 알게 됐고, 저는 부모님 모르게 사격부에 합격하여 정식으로 운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사격은 시공간적으로 안정된 폐쇄기술의 특성이 있는 대표적 기록경기입니다. 따라서 그만큼 심신의 조화가 무엇보다 중요하지요. 특히 선수는 자기 자신을 믿는 효능감이 무엇보다 필요한데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제 속에는 이미 이러한 요소들이 갖춰진 듯합니다.

충청남도사격연맹회장배 사격대회 모습
충청남도사격연맹회장배 사격대회 모습

Q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사격부에 들어가면서 힘든 일은 무엇이었나?

힘들었다기보다는 흔들린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제 막 사격부에 들어가 꿈에 부풀던 5월이었죠. 출근하시던 아버님께서 사망했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눈부신 5월에 일어난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사망 소식에 평온했던 우리 집은 삽시간에 쑥대밭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집안은 흔들리기 시작했고 어머님과 여동생은 큰 실의에 빠져 하루하루를 살얼음 걷듯 했습니다. 거기에 저조차도 마음을 잡지 못하고 오랜 시간 방황을 했습니다.

이후 2학년이 되던 해, 보다 못한 감독님께서 저희 집에 찾아와 오랜 시간 끝에 어머니를 설득시켰지요. 그러면서 방황하던 저를 운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저 또한 마음을 추스르고 온전히 사격에만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더 이상 흔들리면 안 되겠다는 강한 의지도 한몫했고요.

체육특기자로 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전국대회에서 수많은 경기실적을 냈습니다. 그것이 바탕이 되어 한국체육대학교 4년 국비 장학생으로 스카우트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어머님을 비롯한 모든 가족 친지들은 저를 무한정 신뢰해 주었지요. 이런 모든 것들이 초석이 되어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 생활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독일 발터사 서산방문 기념사진
독일 발터사 직원들의 서산방문 사진

Q 선수 생활을 하면서 좌절의 순간은 언제였나?

국제무대에서의 잇따른 실패로 한계와 좌절을 느꼈습니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전국대회에 무수히 출전하여 입상했고, 한국 신기록도 두 번이나 경신했지만, 국제무대와는 인연이 안 됐나 봅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대학 4년 때 나는 선수로서 자질은 부족하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실업팀 스카우트 제의를 뒤로한 채 일찌감치 지도자로 나아갈 계획을 세웠습니다. 졸업과 동시에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제가 대학원에 입학할 당시 서산 한서대학교에 사격부가 창단되었고 저는 대학원 학업을 병행하면서 1996년 동시에 지도자로서의 첫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서산시종합사격장에서 열린 ‘2019 동아시아 유스 공기총 사격대회’ 모습
서산시종합사격장에서 열린 ‘2019 동아시아 유스 공기총 사격대회’ 모습

Q 한서대학교 사격부 지도자로 활약하다 서산시청 사격팀 감독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말해달라.

제 나이 26세인 1998. 2년 만에 대학부 최연소 감독이 되면서 약 10년간 전국 명문 대학에 뒤지지 않는 선수들을 대거 배출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우리 선수들이 잘 따라준 덕분이었지요.

이를 인정받아 대학부 지도자 생활 10년 만인 2007, 충남체육회 사격팀 감독으로 제의를 받아 실업 무대로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오랜 기간 부진에 허덕였던 서산시청 사격팀과 충남체육회 사격팀이 이듬해 2008년 통합하게 됐고, 그러면서 저는 서산시청 사격팀 감독으로 부임하였습니다.

당시 서산시 사격팀은 1990년에 창단된 전국의 30여 개 사격 실업팀 중 관공서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팀이었습니다. 역사와 전통이 깊었음에도 출중한 성적이 없었던지라 중압감은 말로 표현이 안 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사격전국대회 모습
사격전국대회 모습

Q 서산시청 사격팀 감독을 맡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막중한 책임감으로 서산시 사격팀을 재정비하는 과정이 제 지도자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서산시 사격팀을 맡게 되면서 전국 최고의 팀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부임 2년간 몸무게가 무려 20kg이나 빠질 정도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초임 당시 2년에 걸쳐 재기를 노리는 전국의 숨은 선수들을 하나하나 불러 모아 팀을 재정비했습니다. 개성 강한 선수단으로 구성원들이 이뤄지면서 서로 불협화음을 화합으로 바꿔나가는 일을 했습니다.

주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다시 하라면 못할 정도로 혹독하게 훈련 또 훈련에 매진하였습니다.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지요. 그러면서 우리 사격팀은 이후 각종 전국대회를 휩쓸기 시작했습니다. 2010년에는 중국 광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선수 5명을 배출하여 출전선수 전원 금메달이라는 앞으로도 깨지지 않을 진기록을 쓰게 되었습니다.

당시 KBS 생방송에 초대되어 전국 공중파를 통해 서산시 사격팀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TV를 통해 소식을 접한 우리 서산 시민들은 우리 시에 사격팀이 언제부터 있었냐?”는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같은 해, 독일 뮌헨 세계사격선수권대회에서도 우리나라 국가대표 중 유일하게 금메달을 따왔던 것도 서산시 소속 우리 선수였습니다. 돌이켜 보면 평생 잊지 못할 겹경사를 경험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사격의 대중화를 위해 스포츠 사격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사격의 대중화를 위해 스포츠 사격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스포츠 사격 교실 후 단체사진
스포츠 사격 교실 후 단체사진

 Q 사격의 대중화를 위해 스포츠 사격 교실도 운영한다고 들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 서산시에 사격팀이 대한민국을 빛내고 있음에도 실상 시민들조차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비인기 종목을 떠나 감독으로서 나름 반성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운영하고 있는 것이 체육진흥과 주도로 2018년부터 매년 관내 초등학교 5~6학년 대상 동하계 방학 기간의 스포츠 사격 교실입니다.

스포츠 사격이 서산시에서만큼은 누구나 관심 있는 종목이 될수 있도록 우리 사격수들의 재능기부와 함께 어린 학생들의 11 코칭으로 이뤄집니다. 사격은 집중력 향상과 판단력 및 인내력을 기르는데 최적화되어있는 스포츠 경기라 특히 학생들에게 좋은 스포츠입니다.

이은서 선수에게 총기가 전달됐다.(오른쪽 두번째가 박신영 감독, 세번째는 이은서 선수)
이은서 선수에게 총기가 전달됐다.(오른쪽 두번째가 박신영 감독, 세번째는 이은서 선수)

Q 지난해 가을, 독일 발터사가 서산시청 사격팀에 700만 원 상당의 총기를 기증했다.

각종 국제대회에서 두서의 성적으로 인정받아 대한민국 국가대표팀도 받지 못하는 후원을 서산시 사격팀이 대표 총기회사인 독일 발터사로부터 총기를 기증받았습니다. 발터사는 이번 총기를 포함해 2012년부터 권총 9정과 소총 6정 등 총 15정 우리 돈으로는 7,130만 원 상당의 총기를 서산시에 기증했지요. 전 세계적 단일팀으로는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기증받은 총기는 발터사가 서산시청 사격팀의 이은서 국가대표 선수를 지원코자 특별 제작한 약 700만 원 상당의 LG400 소총으로, 소총에는 총기 제작 장인인 마스터가 제작했다는 M로고와 이은서 선수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지난해 기증받은 총기는 이은서 선수가 시합 출전 시 사용할 예정이며, 사용이 만료되면 서산시종합사격장에 보관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박신영 감독
박신영 서산시 사격팀 감독

Q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소감을 말한다면?

시간이 어찌나 빠른지 서산에서의 사격 지도자 생활도 벌써 25년이 넘었습니다. 제 인생의 절반이 이곳 서산입니다.

부임 이후 서산시의 적극적인 지원과 믿음으로 현재까지 오랜 기간 팀을 이끌면서 전국대회에서나 전국체전 등 각종 대회에서 단 한 번도 금메달을 놓쳐 본 적이 없습니다. 나아가 전국을 넘어 국제무대인 아시아 선수권, 하계유니버시아드,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 등 각종 큰 대회에서도 서산을 대표해서 우리 선수들이 제 몫을 톡톡히 해내 주었습니다.

여태껏 많은 제자 중 2018년도에는 권총의 홍성환 선수가 서산 시민 처음으로 정부로부터 대통령 체육훈장 중 가장 높은 등급의 청룡장을 받게 된 것도 감독으로서 가장 자랑스럽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것은 국제대회의 꽃인 올림픽에서만큼은 빈번히 메달 사냥에 실패했습니다. 가장 어두운 그늘입니다.

총기 사진들
총기 사진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20228, 중국 항저우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이 열립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서산시 사격선수들이 다수 출전하여 금메달을 따는 것이 저의 올 한해 꿈입니다. 우리 선수들의 메달이 장기간 코로나팬데믹 상황 속에서 힘들어하는 대한민국 국민께 다시 한번 희망과 용기, 위로와 자긍심을 심어드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합니다.

2024년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제33회 올림픽이 개최됩니다. 그 무대에서도 역시 우리 서산시 사격선수들이 기필코 메달을 획득하여 오랜 기간 인내에 대한 스스로의 보상과 찬사를 받으며 후원을 아끼지 않는 서산시와 시민들에게 보답하고 싶습니다. 우리에게는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도전 정신이 있으니까 충분히 가능하리라 여겨집니다.

이제 임인년 호랑이해를 맞았습니다. 저희 선수들의 각오 또한 대단합니다. 여기에 사격에 대한 보다 많은 관심과 성원을 입혀주신다면 저희 서산시 사격선수단에게는 더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리며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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