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쓰, 나는 쓰레기가 아닙니다
음쓰, 나는 쓰레기가 아닙니다

고향에 살 때는 음식물 쓰레기란 게 없었다. 남은 음식은 집에서 기르는 동물의 식사가 되거나 밭에 뿌릴 거름이 되었다.

오빠는 식사가 끝나면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곤 했다. 한 손에는 그릇을 든 채로. 그 안에는 생선이나 고기뼈, 밥덩이 등의 잔반이 들어있었다. 반가운 주인이 오는 것을 알고 마당에 사는 개, 아롱이는 대게 격한 반응으로 오빠를 맞았다. 오빠가 음식물을 개 밥그릇에 옮겨주면 허겁지겁 그것들을 먹었는데 같이 사는 고양이가 다가오면 슬그머니 자리를 내주기도 했다. 개와 고양이는 앙숙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이들은 사이좋은 남매 같았다.

어느 해에는 이 거름을 밭에 뿌렸는데 한여름이 되자 수박이 주렁주렁 열렸다. 넓은 면적의 밭에 드문드문 보이던, 스스로 싹을 틔우고 자라난 수박덩이가 신기했다. 그 수박을 제사상에도 올리고 이웃집과도 나눠 먹었다. 풍요로운 여름이었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남은 음식물이 쓰레기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음식물 쓰레기통에 칩을 끼워 길가에 내놓아야 했는데 통을 바로바로 비우지 않으니 통에 든 음식물이 부패하고 냄새가 났다. 냄새 나는 통이 찝찝해 씽크대에서 현관 입구로 음쓰통을 옮겼다.

여름이 되어 수박을 먹자 통을 채우기가 쉬워졌다. 현관에 둔 음쓰통에 수박껍질을 넣고 바로 비우지 않은 날이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천장과 벽에 처음 보는 검은 선이 있었다. 그 선이 음쓰통으로 연결되어 있어 자세히 보았더니 그것은 개미떼였다. 달큰한 냄새를 맡은 개미가 떼로 몰려오다니 근처에 개미집이 있는 게 분명했다. 당장 음쓰통을 밖으로 꺼내고 개미약을 샀다. 개미떼보다 화근이 된 음쓰에 더 넌더리가 났다.

또 다른 지역에 살 때는 음쓰를 전용 봉투에 넣어 버려야했다. 제일 작은 사이즈를 구입해도 혼자서는 채우기가 쉽지 않았다. 자취생들은 냉동실에 음쓰를 얼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과일 껍질 같은 것을 얼렸다. 설거지 후에 나온 찌꺼기는 어쩔 수 없이 음쓰봉투에 넣어 입구를 묶었는데 바로 버리지 않으니 봉투를 열 때마다 냄새가 지독했다. 음쓰는 더럽고 냄새나고 찝찝한 것이라는 생각이 나를 계속 지배했다.

결혼 후 아파트에 살면서는 언제든 음쓰를 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때부터 일회용 비닐 봉투에 음쓰를 넣어 수시로 버렸다.

작년 공동주택 음식물쓰레기 RFID 개별계량기가 설치되었다. 버릴 때마다 무게에 따라 비용이 책정되는 걸 본 남편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음쓰통을 사자고 했다. 비닐봉투 아래에 물이 고이곤 했는데 남편은 그 비용을 아끼자는 것이다. 내가 거절하자 환경을 위한다고 일회용 쓰지 말자면서 본인은 음쓰 버릴 때마다 일회용 비닐 봉투를 쓴다고 비난했다.

그럴 때면 나는 환경운동가가 아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음식물 쓰레기통만은 쓰기 싫다. 음쓰통을 매일 비우기도 힘들고 통에 음식물 찌꺼기가 끼거나 날파리가 생기는 것도 싫다. 비닐봉투도 새 걸 쓰는 게 아니라 다른 용도로 한번 썼던 걸 모아놨다가 재사용하는 거다. 시어머니도 음쓰통을 사용하지 않고 비닐 봉투에 버리지 않느냐며 항변했다. 똑같은 레파토리의 대화가 몇 번 반복되었다.

아이들과 다이소에 갔던 날 남편이 또 음쓰통을 사자고 했다. 어떤 통이 있나 한번 보기나 하자는 심정으로 관련 코너에 갔다. 거기서 흠잡을 데 없이 깔끔한, 내 스타일의 음쓰통을 발견했다. 마음에 드는 통이니 한번 써보자 싶어 구입했는데 막상 써보니 그리 불편하지도 통이 불결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 통을 사용하면서 음쓰는 불결하다는 편견이 사라졌다. 음쓰통은 우리가 먹다 남은 음식을 모으는 통일 뿐, 자주 비우고 깨끗이 씻어 쓰니 냄새도 나지 않는다. 비울 때마다 아래쪽 배수통에 고인 물은 따로 버리게 되어 비용도 절감되고 그때마다 비닐봉투를 버리지 않으니 마음도 편하다.

내가 버린 음쓰는 더이상 쓰레기가 아니라 훌륭한 퇴비로 재탄생할 재료다. 그리고 잘 사용한 음쓰통 하나는 열, 아니 수십수백 비닐봉투도 안부럽다.

최윤애 보건교사
최윤애 보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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