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아궁이, 얼음썰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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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아궁이, 얼음썰매
  • 최윤애 시민전문기자
  • 승인 2022.01.03 14: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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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점엄마의 200점 도전기 88
다은이와 다연이 자매

2022년의 첫 날이 여느 때와 다름없이 조용히 밝아왔다. 한 살을 더 먹은 아이들과 느지막이 눈을 떴다. 하룻밤 사이 절로 한 살을 먹어 8, 5살이 된 딸들이 대견하다.

집에만 있기에는 아쉬운 날이라 박달, 별장, 시골로 칭해지는 아지트에 가기로 했다. 햇살이 따스해 산골마을도 그런대로 놀 만하다. ‘그네, 트램폴린, 줄넘기, 배드민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며칠째 냉골이었던 집안이 전기 판넬’, ‘온풍기의 도움으로 곧 훈훈한 곳이 되었다. 계속 거주하는 곳이 아니라 수도 동파가 걱정이었는데, 역시나 물이 얼어서 나오지 않는다. 시부모님이 이곳을 떠나기 전 커다란 통에 물을 잔뜩 받아두었다. 뚜껑을 열자 물이 가득 찬 갈색 고무통은 크고도 깊어서 예전에 보았던 우물 같다.

8살이 된 다은이

포장해 간 김밥과 시부모님이 갖다놓으신 생수로 라면을 끓여 점심을 해결했다. 아이들에게 라면을 끓여줄 때마다 약간의 죄책감이 드는데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에 이 라면이 속한다. 참깨가 솔솔 뿌려진 김밥에는 손가락 하나 대지 않은 아이들이 호로록거리며 라면을 맛있게 먹자 나의 죄책감도 한 뼘은 줄어든다.

5살이 된 다연이

오후가 되자 얼었던 수도에서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순간온수기가 있어 따뜻한 물도 걱정 없으니 약간의 비용 투자만 하면 오지에서조차 편리함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러나 뒷집 할머니는 아직도 직접 산에서 나뭇가지를 끌어와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서 겨울을 난다. 불을 피워 힘들게 방을 데우고 물을 끓여 지내는, 얼굴도 모르는 할머니가 안쓰럽다.

손만 까딱하면 되는 세상이지만 뒷집 할머니처럼 작은 변화마저 쉽지 않은 이들이 있다. 돈도 돈이지만, 애초 어디에 연락하면 되는지조차 알기 어려운 사람, 혼자서 선뜻 무언가를 추진하기가 쉽지 않은 사람. 그들은 날이 선 칼바람 속에서도 산에서 나뭇가지를 줍고, 아궁이에 불을 때고, 솥에 물을 길어 나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의 어린시절, 뒷편에 보이는 솥뚜껑 위 신발이 눈길을 끈다.

아궁이에 불을 때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풍로를 돌려 장작에 불을 지피던 일, 매운 연기를 피하지 못해 콜록콜록 기침을 하고 눈이 빨개져 눈물을 훔치던 일, 군불을 너무 많이 때서 아랫목 장판이 지글지글 끓던 일, 갈색으로 변한 장판에서 탄내가 나던 일, 학교에 가기 전 아끼던 빨간 부츠를 데우려고 아궁이 앞에 두었다가 뜨거운 열기에 부츠가 녹아내려 속상했던 일, 한겨울에 군고구마와 군밤을 만들어 호호 불며 먹던 일, 솥에서 끓인 물과 찬물을 섞어 세수와 목욕을 하던 일, 솥에서 갓 지어진 밥을 퍼 낸 후 남은 누룽지로 끓인 숭늉의 구수하고 깊은 맛, 할아버지가 계시던 사랑방의 아궁이에서 뭉근하게 끓던 쇠죽 냄새.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나의 오래된 추억들.

추억에 젖어든 시간도 잠시, 세면대 수도관에서 바닥으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채워진 물 때문에 호스가 파열된 것 같다. 수도를 잠그고 다음날 방문하실 시부모님이 부품을 교체하시는 것으로 입을 맞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꽁꽁 언 개울가에 썰매를 타는 가족이 보였다. 못이나 논, 개울물이 단단하고 두껍게 얼면 나도 얼음썰매를 타곤 했다. 얼마나 갈고 닦았는지 아빠가 만들어주신 썰매는 매끄럽고 반들거렸다. 거칠고 투박한 손으로 정성을 다한 썰매였다.

피곤한 아이들은 달리는 자동차에서 금세 잠이 들었다. 남편과 추억 소환을 한 후 나도 눈을 감았다. 얼음썰매를 타는 내가 보였다. 차가운 얼음을 지치며 아이들 사이에서 쌩쌩 달리고 있는 내가 무척 신나 보였다.

최윤애 보건교사
최윤애 보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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