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나의 ‘하! 나두’ 건축 - 25

계단을 우러러 볼때마다 조금 더 자라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계단을 우러러 볼때마다 조금 더 자라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아침인데 보양식이라도 먹은 듯 괜스레 기운이 차오른다. 새해 카운트 다운으로 마음가짐의 박자 세기를 해서인지, 며칠 전 지인들과 의기투합 하자는 대화를 나눈 덕분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모두가 고난을 함께 겪으며 서로에게 힘이 되는 이가 누구인지 여실히 드러나게 해 주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길고 힘든 시간이 역설적으로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새로운 결론으로 내렸다.

좋은 사람이 곁에 있기만 해도 인생은 참 편안하다. 그들에게서 얻는 지식, 자극, 그리고 충고는 삶의 흥미로운 원동력이자 유연한 안전망이 되어준다. 함께 생각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공유한다는 점은 참으로 인간적이면서도 사회적이다.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히어로(hero)를 실제로 만나기는 힘든 편이다. 그런데 듬직한 어벤져스(avengers)는 곳곳에서 실존한다.

예로부터 크고 중대한 일을 치를 때에도 전통적인 어벤져스 문화인 품앗이를 활용했다. 그리고 건축의 작업도 이러한 공동 작업과 많이 닮았다. 애석하게도 오롯이 혼자서 할 수 있는 건축은 희박하다. 건축계에서 흔치 않은 단독작업인 줄 알았던 칼럼 쓰기마저도, 누군가의 지식과 연구 결과에 도움을 빌려서 꾸려내는 작업이었다.

계획단계에서는, 날것의 아이디어가 여러 차례의 회의를 통해 여럿의 다듬이 봉으로 두들겨져서 번듯한 기획 설계로 정리된다. 이 과정에서 건축주의 의견이 주축이 되기도 하고, 막내 사원의 원석과 같은 아이디어가 빛을 발하기도 한다. 스치듯 마주한 미술 작품이나 흘려들은 뉴스 한 귀퉁이가 메인 테마로 작용하기도 한다. 가장 광폭의 인적 네트워크가 자유롭게 작용하는 시점이 아닐까 싶다.

실시설계라고 부르는 과정에서는 수치화 작업이 동반된다. 실제로 시공이 가능한 수준으로 규격화하고, 현실적인 공정을 반영하여 건물로 구현될 수 있도록 정돈한다. 현장에서 사용할 도면이 완성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는 설비팀과의 동맹이 피를 나눈 듯 끈끈해야 한다. 토시 하나 틀리지 않게 단단하게 협력하여야 한다. 마치 조물주가 된 듯 전체적인 시스템을 유기적으로 살아있게 구축해야 한다. 전문 기술진이 손발을 맞춰 도면의 아귀를 맞춰 나가야 한다. 혼자 해내기에는 불가한 영역에 진입한 것이다.

시공 단계에서는 영화 속 영웅처럼 혼자서 멋지게 해 내고자 하다가는 삼라만상을 깨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라는 인간이 얼마나 미약하고 작은 부유물에 불과한지를 맞닥뜨리게 된다. 세상의 주인공이 나 자신인 줄 알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한낱 날짜 세기와 시계 보기이다. 맡겨버린 업무를 지켜보며 간간이 응원을 전할 뿐이다.

건축의 전 과정에 투입된 인력을 모두 세어보진 못했다. 하지만 한땀 한땀이 모인 건축 준공이라는 작품에 제작진 소개 자막을 만들 수 있다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 것이다. 부지를 선정하고 입주를 진행하는 전후 사정은 연결 짓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건축물 하나로 생성된 연결고리는 실로 방대하다. 서로에게 힘이 되는 모음집은 나도 모르게, 누구와 함께인지도 모르게 생기고 사라지며 다양한 결과물을 생성한다. 쌓여가는 명함과 저장 중인 연락처가 의미 있는 소유물임을 되뇌게 된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6단계 안에 다 연결되어 있다는 미국 하버드대 스탠리 밀그램 교수의 ‘6단계 분리 이론이 있다. 실험 과정에서도 여러 번의 시행착오가 있을 정도로 실제 적용하기는 변수가 많다. 그런데도 이 법칙은 많은 이에게 희망의 요소로 언급된다. 언젠가 그럴듯한 모임의 구성원이 되어 큰일을 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이 매력적이라서가 아닐까?

어찌 생각하면, 남이 함께 살아주는 나의 인생이었다.

독자분께도 필자가 느끼는 상승의 기운이 전해지기를 바래본다.

최하나 건축 칼럼니스트/전) (주)엄앤드이종합건축사사무소/전) 서울건축사협 서부공영감리단/전) SLK 건축사사무소/현) 건축 짝사랑 진행형/현)서산시대 전문기자
최하나 건축 칼럼니스트/전) (주)엄앤드이종합건축사사무소/전) 서울건축사협 서부공영감리단/전) SLK 건축사사무소/현) 건축 짝사랑 진행형/현)서산시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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