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최병부 (사)한국문인협회 서산지부 지부장
최병부 (사)한국문인협회 서산지부 지부장

꿈과 희망의 설레임으로 맞이했던 신축년도 역사의 뒤안길로 모습을 감추고, 어느덧 한 해가 황망히 저물어 가는 이때, 경주최씨 송산공파 대종회에서는 선조 묘 참배와 겨울여행 길에 나섰다.

길을 나설 때면 으레 마음이 설렌다. 길을 나서면 보이는 모든 것이 다 새롭다. 미지의 낯섦과 마주하면 희망으로 부풀어 행복하다.

길을 나서는 것은 지나 온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며 고백하고 앞으로 살아갈 자신의 삶에 대한 독백이다.”라고 어느 시인이 말했다.

이렇게 시작된 선조 묘 참배 길은 태안읍을 출발, 남면 양잠리, 안면읍 창기리에서 종인 들을 태우고 보령 해저터널로 행했다.

보령 해저터널은 수심 80m에 길이 7km로 국내 해저터널 중 가장 길다고 한다.

세계에서 5번째로 길며 201012월에 착공해 상.하행 2차로씩 2개의 터널로 49백억여원의 사업비가 소요되었다고 한다.

착공 11년 만인 2021121일 개통되었으며 안면도에서 대천항까지 10분가량 걸렸다.

보령시를 지나 우리들의 첫 번째 목적지인 구미시를 향해 달렸다.

황량한 겨울 길을 달리면서 지나치는 바깥 풍경들의 뒷모습에서 나는 왠지 모를 외로운 나그네처럼 까닭 모를 서러움과 안타까움이 내 가슴속에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다시는 올수 없는 것이기에 가는 그 순간순간이 더욱 소중한 것 같았다. 가는 것을 슬픔과 허망의 눈빛으로 지켜볼 것이 아니라 내일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새로운 것을 맞이할 자세를 갖추어야 하겠다.

서산을 출발한지 5시간 만인 1시에 구미시에 도착하여 점심식사를 마친 뒤 일행은 주향인물인 호는 원초(元樵), 성명은 최 순(崔 峋 1537 ~ 1594) 선조의 묘를 참배하였다.

() 선조는 경상남도 거창에서 아들 형제를 낳아 둘째는 그곳에서 세거(世居)하고 큰아들 경태(景泰)는 태안군 남면 양잠2구로 이거정착(移居定着)하여 잠곡리(潛谷里) 최씨라는 집성촌을 이루었다고 한다.

선조 참배를 마치고 경상북도 기념물 제86호인 구미시 상모동 171번지 박정희 대통령 생가로 향했다.

이 집은 대한민국 제5대에서 제9대까지 대통령을 지낸 박정희(1917 ~ 1979)가 태어나서 1937년 대구 사범학교를 졸업 할 때까지 살았다고 한다.

생가 내에는 안 채 및 사랑채와 1979년에 설치한 추모관이 있었다. 건립 당시 안채는 초가였으나 1964년 현재의 모습으로 개축되어 있었다.

다음은 경북 김천시 대항면에 위치하고 있는 천년의 역사와 세월을 간직하고 있는 황악산 직지사로 향했다.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 선현의 지혜와 자비를 심어 온 직지사는 신라 눌지왕 2(418) 아도화상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사찰 관람을 마치고 산채 정식으로 저녁 식사를 마친 뒤 호텔에 투숙하여 하루의 여정을 풀었다. 1시까지 고문님으로부터 조상님의 은덕을 기리자는 훌륭하신 말씀들을 들었다.

다음날 8시에 숙소를 출발 구름도 쉬어 간다는 추풍령 고개를 지나 황간 휴게소에서 차돌 된장찌개로 아침 식사를 마친 뒤 경기도 남양주시를 향해 버스는 쉬지 않고 달렸다.

12시쯤 최치원(崔致遠)18세 손이며 고려말 검교정승(檢校政承)을 지낸 호 관가정(觀稼亭)이요 성명은 청()인 선조 사당에 도착하였다. 일행 모두는 초상화가 모셔져 있는 사당과 산소를 차례로 참배한 뒤 오늘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귓가 길에 올랐다.

이렇게 하여 내 인생의 노트에도 오늘의 겨울 여행이 기록의 한 페이지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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