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점엄마의 200점 도전기-86
나는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가 아니다. 신문물 수용에 한 걸음이 아니라 두세 걸음쯤 느린 편에 속한다. 막상 사용하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는데 선뜻 구매하는 것이 쉽지 않다. 무엇이 최선인가 결론을 내리는 것과 물건을 고르는 선택장애가 최대의 장애물이다.
얼마 전까지 물도 주전자에 끓여 먹었다. 개인적으로 보리와 옥수수를 넣고 끓인 물을 좋아하지만 매주 두 번씩 끓여대는 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물을 끓이고 식히고 물병에 옮겨 담고, 다 먹은 물병과 주전자를 씻어 말리는 패턴이 징그럽게 반복되었다.
정수기 영업을 하는 친척이 있어 어릴 때부터 정수기를 사용했지만 정작 나는 가정을 꾸린 후에도 정수기를 구입하지 않았다. 이유는 생수, 정수기, 끓인 물 중 무엇이 최선인지 결론을 내리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생수는 미세플라스틱이, 정수기는 세균과 곰팡이가, 끓인 물은 노후화된 배관이 맘에 걸렸다.
물을 끓여 먹다가, 귀찮아서 생수를 사 먹다가, 다시 끓인 물을 먹다가, 1주일 전 드디어 정수기를 구입했다. 세균번식과 곰팡이를 피하고자 정수만 되는 직수정수기로 구입했는데 이렇게 편할 수가! 나만 빼고 가족들의 물 섭취량이 늘었다. 아이들은 보리차보다 정수기물이 더 맛있단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구입할 걸 그랬다. 결과는 알 수 없으니 일단은 편하고 볼 일이다.
건조기도 사용하면 편리하고 특히 장마철에는 필수 아이템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던 품목이다. 그러나 장점보다는 옷이 줄어들거나 구멍이 나기도 한다는 후기가 더 크게 와 닿았다. 놓을 자리도 마땅찮은데다 남향인 베란다에서 빨래를 말리면 자외선 살균이 되어 더 좋을 것 같다고 남편이 거들기에 선뜻 구입하지 못하고 오래 망설였다.
최근 리모델링 후 건조기를 구입했는데 비가 오나 날이 흐려도 빨래 걱정이 없다. 한 시간이면 축축하던 빨래가 따끈하고 뽀송하게 마르니 다음 날 당장 필요하다고 해도 문제없으니 말이다. 베란다에 이불을 너느라 낑낑 댈 필요가 없고 수건에서도 더 이상 꿉꿉한 냄새가 나지 않는다.
설거지도 쉬워졌다. 코로나19 초기 아이 둘 가정보육을 하면서 삼시세끼 식사 준비와 그에 수반되는 설거지에 스트레스가 컸다. 우렁 각시가 없으니 식사는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설거지를 도와주는 기계는 있어야겠다 싶었다. 식기세척기를 구입한 후 아니나 다를까 주방노동의 시간이 줄었다.
무선청소기도 마찬가지다. 작동이 잘 되는 유선청소기를 놔두고 무선청소기를 또 사기가 망설여졌다. 고민 끝에 구입했는데 마음먹고 청소기를 꺼낼 필요 없이 거치대에서 바로 빼내 간편하게 청소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노력과 시간도 줄고 심적 부담도 줄었다.
힘들여 밀대질을 할 필요가 없으니 무선물걸레청소기도 고맙고 군만두, 군고구마 같은 음식을 부담 없이 먹게 도와주는 에어프라이어도 우리 집 필수품이다.
‘육아는 장비빨’이라는 말이 있다. 신생아침대, 아기띠, 젖병소독기, 전동모빌, 바운서, 아기식탁, 기저귀함 등등 육아에 도움 될 아이템들이 천지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지겠지만 장비들이 있으면 확실히 육아가 편해진다.
살림도 마찬가지다. 장비가 없으면 없는 대로 해결하며 살겠지만 장비의 도움을 받으면 확실히 손이 덜 가고 생활이 편리해진다. 이다음 나에게 올 살림 장비는 또 어떤 게 있을까? 로봇청소기? 음식물처리기? 스타일러? 집안을 가득 채운 물건들은 줄이고 싶지만 생활을 윤택하게 해줄 장비빨 만큼은 포기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