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나의 ‘하! 나두’ 건축 - 23

서울 용산구에는 각국 주한 대사관과 공관이 많이 있다. 해외여행이 사무치도록 그리워진 어느 날, 전 세계를 일주하듯 대사관 일대를 배회 했다. 대사관은 그 나라의 얼굴을 담은 건축물이다.
서울 용산구에는 각국 주한 대사관과 공관이 많이 있다. 해외여행이 사무치도록 그리워진 어느 날, 전 세계를 일주하듯 대사관 일대를 배회 했다. 대사관은 그 나라의 얼굴을 담은 건축물이다.

오래전 프랑스 여행 중에 주프랑스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진행한 '부채 전시회' '홈 파티'에 갔었다. 몇몇 한국 유학생이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였고, 건축과 선배의 인맥으로 나까지 초대받았다. 당시는 배낭여행 중에 맞닥뜨린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치장은 고사하고 현지의 집시(gipsy)로 오인당할만한 행색이었다. 그런데도, 이건 놓칠 수 없는 기회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하였다. 패스트 패션으로 의상을 현지 조달하고, 신데렐라가 왕자님을 만나러 가는듯 설레하며 다음날 파티를 기다렸다.

개최 장소는 어느 성()이었다. 난생처음 하는 체험이었다. 여태껏 가 본 성이라고는 놀이공원의 디즈니 성이나 온갖 안내판이 붙은 궁궐과 관광지가 전부였다. 실제로 성주가 거주하는 곳은 어떤 느낌일지 기대가 컸다. 주소에 도착하자 거대한 철제 대문이 열렸다. 길에서는 부지 안쪽이 잘 보이지 않았다. 구불구불하게 잘 다듬어 둔 조경은 꽤나 두터웠다. 드디어 만나게 된 오래되고 웅장한 건축물을 본 첫 소감은 '힘이 있는 자의 건물이구나.'였다.

전시를 주최하신 분이 주프랑스 대한민국 대사의 따님인지 부인이셨는지 정확하게 안내받지는 못했지만, 그분은 건물 전체에 울려 퍼지는 그랜드 피아노 선율만큼이나 부드럽게 미소짓고 계셨다. 내가 만난 가장 온화하고 사교적인 분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샴페인 잔을 살포시 들어 올리던 그분을 오래도록 닮고 싶어 했다.

프랑스어와 영어에 그다지 능하지 않아서 정확지 않지만, 집 주인분은 본인을 백작이나 공작쯤으로 소개했다. 본인을 직업이 아닌 작위(爵位)로 설명하다니, 아주 낯선 방법이었지만 로맨틱하고 진정으로 폼이 났다.

분위기에 한참을 취해있었던 것 같다. 내가 어쩌다 여기에 와서 보글보글하게 탄산이 솟구치는 샴페인 잔을 들고 여기에 서 있는지 어안이 벙벙했다. 색다르고 들뜨는 기분을 간신히 누르고 다시 없을 기회를 만끽하고자 애썼다. 곳곳에 펼쳐져 있는 한국의 부채가 나를 이곳으로 끌어준 것만 같았다. 대한민국이 고마웠고 대사관이 친근했다.

그날 느낀 대사관의 이미지는 국경을 넘어서 밀접 외교를 담당하는 곳이었다. 현지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과 부드럽고 친밀한 교류의 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부채라는 실용적이면서도 운치 있는 아이템으로 한국의 문화를 노출하고 전파하여 관심을 높이고 있었다. 참석자들은 진중했고 눈빛이 반짝였다.

그 여행 이후에 길을 다니며 스치는 주한 대사관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수려한 나무가 눈에 띄게 반듯하다고 느낀 건물은 서울 정동에 위치한 단풍국 캐나다의 대사관이었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은 굴지의 국내 건축가의 작품이며 유명세도 높다. 이처럼 대사관을 건축할 때 자국의 이미지와 문화를 내포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대사관은 타국에 만드는 작은 국경이다. 외교의 문이자 자국을 상징하는 얼굴이다. 수년 전 건축 비엔날레에서 했던 대사관 견학 행사를 놓친 것이 두고두고 아쉽다. 여러 나라의 국경을 하루에도 몇 번씩 넘나들고 공들여 지은 그 나라의 진짜 건축과 문화를 경험할 기회를 접하고 싶다.

UN 대학의 연구소에서 지구의 모든 재난은 연결되어 있다는 연구보고서 발표했다. 이는 문제가 연결되어 있다면 해결법도 연결고리가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모두가 힘을 내어 '지구촌'이라는 정겨운 단어가 일상 용어로 돌아오기를 바라본다.

최하나 건축 칼럼니스트/전) (주)엄앤드이종합건축사사무소/전) 서울건축사협 서부공영감리단/전) SLK 건축사사무소/현) 건축 짝사랑 진행형/현)서산시대 전문기자
최하나 건축 칼럼니스트/전) (주)엄앤드이종합건축사사무소/전) 서울건축사협 서부공영감리단/전) SLK 건축사사무소/현) 건축 짝사랑 진행형/현)서산시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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