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림만 스토리텔링】팔봉 구도항~호리항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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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림만 스토리텔링】팔봉 구도항~호리항까지
  • 박두웅 기자
  • 승인 2021.11.17 0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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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보름 옻샘에 가면 목욕하는 선녀를 볼 수 있다”

마고할미의 천지창조와 호랑이의 전설이 숨쉬는 곳
팔봉 구도항~호리항까지 코스를 걷고 있는 서산시민들
팔봉 구도항~호리항까지 코스를 걷고 있는 서산시민들
구도항

 

범머리길 시작을 알리는 입구
구석구석 함께 걸어볼까YOU! 트레킹에 나선 시민들
옻샘
옻샘
민물이 샘솟는 옻샘을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다.
민물이 샘솟는 옻샘을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다.

구도항~호리를 잇는 가로림만 범머리길코스가 명품 트레킹 코스로 부각 되고 있다.

서산시 팔봉면 구도항에서 출발해 해안선을 따라 나지막한 산등성이를 걷다 보면 가로림만의 절경에 취해 약 7.5km 구간을 힘든 줄 모르고 걷게 된다. 이 코스에는 바닷가에 민물이 솟아오르는 옻샘을 비롯해 가로림만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는 주벅배 전망대와 해안선을 따라 설치한 데크길은 걷는 이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이번 걷기는 서산시가 주최하고 한국조직문화연구소가 주관한 행사로 지난 6월 시작한 구석구석 함께 걸어볼까YOU! 서산대장정의 마지막 일정으로 진행됐다. - 편집자 주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동화 이야기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동화 이야기

 

# 1970년대까지 인천 뱃길 열던 구도항

가로림만은 항아리 모양이다. 그 항아리 가장 안쪽에 자리 잡고 있는 곳이 구도항이다.

구도항에는 70년대까지만 해도 대산읍 오지리 벌말포구를 거쳐 인천까지 다니던 기선이 있었다. 기선은 구도항에 도착하면 다음 날 다시 인천으로 돌아가고 출항은 대략 5일 간격으로 이루어져 월 6회 정도 운행했다.

여객선 정원은 100여 명에 달했고, 뱃삯은 비교적 저렴하여 주로 장사꾼들이 이용했다. 마을 어르신들의 말에 따르면 주로 소금, 곡물, 나무를 인천에 가져다 팔았다고 한다.

1950년대까지는 칠복호’, ‘명동호등 목선이 운행됐다. 1960년대 들어서야 충남호’, ‘은하호등 근대식 여객선이 취항했다.

현재는 인천으로 가는 배는 사라졌고, 가로림만에서 가장 큰 고파도만 하루 3회 운항한다. 고파도는 조선시대 잠시나마 수군이 주둔했던 곳이기도 하다. 옛 이름은 파지도(波知島).

서해안의 전라·충청도 지역은 곡창(穀倉)지대와 조운선(漕運船)의 통로라는 점 때문에 왜구들의 약탈 대상지역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파지도영(波知島營)은 군 북쪽 35리에 있다. 수군 만호(水軍萬戶) 1인이 있다. 신증 정덕(正德) 병자년에 비로소 돌로 성을 쌓았는데, 주위가 1,337척에 높이는 11척이며, 안에 한 우물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파도라는 이름은 바자에서 연유되었다고 한다. ‘바자라는 것은 대, 갈대, 수수깡 등으로 엮은 발을 일컫는다. ‘이라 함은 그물을 이용한 양식 이전에 갈대 또는 왕골, 시누대나 큰 대나무를 깎아 그물 대용으로 엮어서 만든 것을 말한다. 에서 바자가 유래되었다.

이처럼 고파도는 원래 바자섬으로 불리다가 바지라는 방언으로 바뀌어 바지섬으로 불리었고, 이를 한자로 파지도라고 표기하게 된 것이다. 이를 줄여 파도라고도 불렀다.

고파도는 굴의 산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운송 수단이 발달하지 못하던 시절, 고파도 주민들은 서산 장으로 굴을 팔러 가야 할 때면 직접 노를 저어 팔봉면 흑석리까지 갔다. 가로림만의 바다는 겉보기에는 호수처럼 잔잔하지만 사리 때가 되면 물살이 무척 빨라진다.

바다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팔이 빠져나가는 듯한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흑석리에 도착해서는 굴 지게를 지고 몇 개의 산을 넘어야 서산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섬 사람들의 수고는 정도 차이는 있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 구도 포구 여인들의 한이 서린 스문여

구도항에서 선착장을 따라 연두곶으로 걷다보면 갯벌 위로 뾰족한 거친 바위군이 보인다. 밀물 때면 사라졌다 썰물 때만 그 모습을 보인다.

동네 사람들은 그 뾰족한 바위가 스무개라며 그 이름으로 불린 사연을 전해준다.

아주 먼 옛날이었다. 동네 아낙들은 가로림만 안에 있는 돌섬 등에서 해산물을 채취해 장에 내다 팔기도 하고 식량을 대신하기도 했다. 그날도 스무 명의 아낙들이 나룻배에 올랐다.

아낙들은 날도 화창하고 물 때도 길어 대바구니 가득 해산물을 담아 올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었다. 아낙들을 돌섬에 내려 놓은 나룻배 사공은 날씨도 화창하여 인근 고파도에 다녀올 냥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술 한잔하자던 고파도 스님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취기가 오른 뱃사공은 돌섬에 내려 놓은 아낙들을 까맣게 잊고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몇 시진이 지났을까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고 폭풍을 일며 거센 파도가 섬을 삼킬 듯 넘실거렸다. 쏟아지는 폭우에 정신이 번뜩 든 뱃사공은 부리나케 노를 저어 돌섬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이미 파도가 삼켜버린 돌섬엔 한 명의 아낙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 마을 아낙 스무 명이 소중한 생명을 잃은 것이다. 그날 이후로 바다에 이상한 일이 벌러졌다. 왠일인지 돌섬이 갯벌에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아낙들의 죽은 원혼들이 돌섬을 없애, 다시는 여인들의 죽음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바닷 날씨가 흐려지니 문득 스문녀 바위섬에 얽힌 바닷가 여인들의 한 많은 애환이 가슴을 저리게 한다.

유막골
유막골
노루목 정자에서
노루목 정자에서

# ‘범머리마을...호랑이는 마을의 수호신

호리반도 끝자락 호리1에 용맹한 호랑이 머리를 닮은 거대한 바위가 앉아 있다. 노루목에서 보면 앞발에 턱을 괴고 엎드려 있는 모양새다. 마을 사람들은 호랑이가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라 여겼다. 그래서 호리마을에서는 굿이나 풍물을 할 때 꽹과리나 징을 치지 않는다고 한다. 동물을 몰 때 치는 소리로 호랑이가 달아날까 염려해서다.

호리 마을에는 산양, 노루, , 여우 등 동물 이름을 딴 지명이 많다. 호리2구 입구 버스정류장 안쪽에 꿩도 앉아 쉬어간다는 유막골이나 중말로 올라가는 산양 머리를 닮은 산양포’, 범머리 옆 노루목, 그 아래 개목등이 대표적인 동물이름이다.

마을 사람들은 끝자락에 엎드려 있는 호랑이가 호리를 떠나지 않게 하려는 의도로 그렇게 많은 사냥감이 될만한 이름을 지어 불렀다고 한다. 한편, 게중에 개목에 얽힌 이야기는 나름 재밌다. 사람을 잘 따르는 영리한 개는 호랑이를 피해 개목을 건너 장구섬으로 몰래 숨어들어 호랑이의 밥이 되는 것을 면했다는 이야기다.

돌이산 전경
돌이산 전경

# 정월 대보름 옻샘에 가면 목욕하는 선녀를 볼 수 있다

호리2구 산양목을 넘어서면 기이한 샘물을 만날 수 있다. 갯벌 한가운데 민물이 나오는 샘물이 그곳이다. 일명 옻샘으로 이 샘물로 손이나 발을 씻으면 무병장수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특히 옻에 걸린 사람이 와서 정성껏 몸을 씻으면 단 한번에 낫는다는 신통한 샘물이다.

전해오는 마을 이야기로는 옻샘은 본래 서해용궁의 선녀들이 용궁으로 가기 전에 몸을 씻었던 곳이라고 한다.

어느 날 용왕이 정기가 허해졌다. 어의들이 호리에서 자라는 옻나무가 몸에 좋다고 아뢰니, 용왕은 호리에 다녀온 적이 있는 선녀에게 옻나무를 구해오라 했다. 마구할미가 속옷을 널어 말린 바위가 있다는 돌이산 옻나무는 용궁에도 알려질 정도로 그 효험이 유명했다. 명을 받은 선녀는 그 즉시 호리로 나와 옻나무를 구했다. 예전에 봐 둔 곳이라 손쉽게 찾을 수 있었다. 옹궁으로 돌아 가는 길, 그때 어디선가 나지막이 들려오는 스님들의 농지거리에 귀를 기울이고 말았다. 그렇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엿듣고 있다 물때를 깜박 지나쳐 버린 선녀. 서둘러 옻샘으로 달려왔지만 몸을 씻을 시간이 없었다. 옻샘의 샘물로 몸을 씻지 못하면 용궁 수문장이 선녀를 알아 볼 수 없었다.

결국 그날 용궁으로 돌아가지 못한 선녀는 정월 대보름 달이 뜨면 다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옻나무를 들고 옻샘에서 목욕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주벅녀
주벅녀

# 천지창조, 마구할미 이야기가 전해오는 돌이산

가로림만에서 가장 폭이 좁은 곳이 전망대가 있는 우럴목이다. 태안의 금골산과 서산의 돌이산이 마주 보고 있는 지점이다. 물살이 거세 우럴, 우럴운다하여 우럴목이다.

가파른 절벽을 배경으로 주벅녀와 고래바위, 가을과 겨울 수온이 바뀌면서 올라오는 수증기로 생기는 용오름이 마치 용이 솟아 하늘로 오르는 모습같다 하여 유래된 용남둠벙이 있다.

이처럼 돌이산에는 기암괴석과 각종 전설이 남아 있는 바위가 많다. 특히 돌이산은 천지창조의 여신 마구할미 창세신화로 유명하다. 마구할미는 하늘이 열리는 날 백두산, 구월산, 한라산, 지리산, 태백산 등 99개의 산을 만들고 마지막으로 날이 저물 무렵 팔봉산을 만들었다.

천지를 만들면서 하루종일 참았던 소피가 마려운 마구할미가 엉덩이를 내리고 돌이산 아래에 쪼그려 앉아 오줌을 누었다. 그때 생긴 바위가 마구할미 바위다. 그렇게 바위는 엉덩이 가 앉은 모양으로 둥글게 파였고, 거센 오줌발이 땅을 깊게 패게 하여 우럴목이 만들어졌다.

우럴목 아래에는 명사십리 명지금이라 불리는 절경이 펼쳐져 있다. 명지금에는 해당화꽃이 항상 만발했다고 한다. 이곳 해당화는 유난히 여린 붉은 빛이 돈다. 여기에 얽힌 어린 남매의 슬픈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아주 먼 옛날 아랫마을에 남매가 살고 있었다. 부모님이 고기잡이로 바다에 나가면 누이는 어린 남동생을 데리고 감태를 따러 오곤했다. 그날도 감태를 따느라 정신 없던 누이가 뒤를 돌아보니 모래사장에 있어야 할 남동생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명지금과 돌이산을 이 잡듯 뒤지고, 우럴목이 떠나가도록 울며 부르짖어도 남동생은 찾을 수 없었다.

가로림 바다가 어린 남동생을 데려간 것이었다. 그날 이후로 누이는 명지금에 나와 어린 동생을 그리며 애달픈 노래만 불렀다. 동네 사람들은 모두 누이의 모습에 가슴 아파했다. 그러던 어느 날 누이가 보이지 않게 됐다. 우럴목에 몸을 던진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 이야기로는 그 때부터 명지금 하얀 백사장에 여린 붉은 빛이 도는 해당화가 피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럴목에 얽힌 슬픈 이야기가 또 하나 있다.

낭아래전설로 은 낭떠러지의 지역 방언이다. 호리 윗마을에 사는 청년은 아랫마을 동갑내기 처녀를 사랑했다. 눈이 맞은 둘은 해안을 거닐며 정분을 나누었고 그렇게 사랑은 깊어만 갔다. 하지만 가난이 죄이련가, 어느 날 청년은 쌀 다섯 가마에 팔려 우럴목 건너 태안 금골산 부잣집에 머슴으로 팔려 갔다. 떠나면서 청년은 처녀에게 약속했다 다섯 해가 지나고 보름달이 뜰 때 낭아래에서 만나자고.

그렇게 다섯 해가 지나고 약속대로 처녀는 보름달이 비추는 우럴목에서 청년을 기다렸다. 바로 건너 우럴목은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멀리서 달빛을 휘감으며 다가오는 나룻배엔 그토록 보고 싶던 청년이 타고 있었다. 얼마나 그립던 그이던가. 처녀 가슴은 터질 것 같았다. 순간 몰아치는 돌풍이 우럴목 바다를 뒤집고 우럴~우럴거센 괴성을 질렀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처녀는 정신없이 밤새 청년의 이름을 불르며 해변을 헤매었다. 하지만 희뿌연 새벽이 밝아와도 청년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그렇게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보던 처녀는 결국 사랑하는 청년을 따라 낭아래로 몸을 던지고 말았다.

두 사람의 못이룬 사랑의 힘이련가. 그때 이후로 낭아래에서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세 번 외치면 그 사랑은 반드시 이루어졌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전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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