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미소불 환수, 도민의 염원 모으다 ②
상태바
백제미소불 환수, 도민의 염원 모으다 ②
  • 박두웅 기자
  • 승인 2021.10.13 23: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돌아와야 할 ‘백제의 미소’...백제금동관음보살입상

【기획】 잃어버린 백제문화유산을 찾아서

문화 분권은 지역의 문화 격차를 해소하고 고유한 문화 양식을 보호 확산하며, 지역 시민들의 문화 향수와 문화 참여 권리를 보장하는 핵심 문화정책이다.”

문화재 제자리 찾기는 문화 정의 실현과 문화 분권 창달이라는 시대정신과 부합한다. 반출된 문화재 환수는 단순히 유물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는 것을 넘어서 그 문화유산 속에 담긴 선조의 정신과 역사를 되찾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 편집자 주

‘백제의 미소’라 일컫는 백제금동관음보살입상의 미소 (사진출처 (재)문화유산회복재단)
‘백제의 미소’라 일컫는 백제금동관음보살입상의 미소 (사진출처 (재)문화유산회복재단)

백제미소불, 일제강점기 때 일 반출

총독부 일본 헌병에 압수 된 후 일본으로 건너 간 경위 밝혀야

1907년 충남 부여에서 출토된 백제금동관음보살입상, 7세기 중엽 의자왕 때 조성된 것으로 일명 백제미소불이라 칭한다. 1929년 대구에서 전시 이후 백여년동안 자취를 감췄던 백제미소불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 국내가 아닌 일본에서였다.

백제미소불이 세상에 나온 내력부터 확실치 않다. ‘연재 홍사준 선생 기념사업회장홍재선 회장은 “1907년 한 농부가 부여군 규암리 벌판을 파다가 쇠솥을 발견했는데 그 안에서 두 개의 불상이 있었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 당시 사찰에서 보호를 위해 솥단지에 모셔 묻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 문양전이 발견된 유적에서 약 100미터 떨어진 곳이다. 이 불상들은 임진왜란 당시에도 긴급 보호 조치를 할 정도로 높은 가치를 지녔다.

1907년 부여군 규암면의 옛 절터에서 농부가 이 솥단지를 발견하면서 불상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당시 혼다라는 이름의 일본 헌병이 농부한테서 불상을 압수 소장하다 헌병대장에게 인도하면서 두 개의 불상은 헤어졌다. 당시 헌병대가 유실물을 보관해오다가 1년이 지난 후 경매에 부쳤고, 2구 모두 모씨에게 낙찰된 것을 대정 11(1922)에 이치다가 구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그 경과를 설명했다.

그중 하나는 일본인이 소지하고 있다가 해방 뒤 압수되어 현재 국립부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국보 293호 백제금동관음보살입상(높이 21.1cm)이 그것으로 미스 백제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불상은 일본에서 발견된 백제 미소불과 달리 대좌(받침대)가 붙어있다.

일본에서 그 모습을 나타 낸 백제미소불은 높이 28cm, 머리에 보관을 쓰고 왼손에 보병을 든 관음보살이 당당하게 서있는 자태를 형상화하고 있다. 인자한 미소를 띤 표정, 어깨·허리 등을 살짝 비튼 자세, 천의를 두르고 구슬장식(영락)을 걸친 모습 등이 완벽한 조화와 미감을 보여준다. 학계에서는 국보 78·83호 반가사유상, 국보 287호 백제금동대향로와 맞먹는 명품으로 평가하고 있다.

학계에선 오랫동안 이 미소불의 소재를 찾는 데 노력을 기울여왔다. 일본 헌병에 압수 된 후 행방이 묘연했던 이 불상은 1922년 일본인 의사 이치다 지로가 사들여 소장하다 해방 뒤 일본으로 가져갔다는 얘기만 전해져왔다. 1930년대 이후로는 전시 등에 나오지 않아 흑백사진 몇장으로만 알려져 있었다.

이런 내용은 30년대 이후 일본에서 나온 미술사학자 세키노 다다시의 <조선미술사>에 언급된 이래, 1939년 나온 <미술연구> 90호 등 일본의 여러 미술관련 저술들과 한국미술사학회가 1973년 펴낸 <일제기문화재피해자료> 등에 계속 소개됐다.

다만 이런 기록들이 1922년 백제관음상을 다른 일본수장가와의 거래를 통해 손에 넣은 뒤 일본에 반출한 당시 소장가 이치다 지로의 회고담에 전적으로 바탕한 것이어서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더구나 소장자인 이치다는 도굴한 문화재를 대량 반출해 악명놓았던 오구라 다케노스케(1896~1964)와 더불어 식민 조선에서 삼국시대 고분 부장품과 불교관련 유물들을 집중수집했던 인물이다. 대구에서 의사로 일했던 그의 식민지 시대의 구체적인 활동상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고, 일본으로 돌아간 해방 뒤 행적과 몰년도 안개에 싸여있는 인물이다.

‘돌아온, 돌아와야 할 문화유산’ 사진전에서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상근 이사장이 돌아와야 할 백제금동관음보살입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돌아온, 돌아와야 할 문화유산’ 사진전에서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상근 이사장이 돌아와야 할 백제금동관음보살입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986년 이래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해외소재 한국문화재 목록>엔 이치다가 1929년 대구의 신라예술품 전람회에 출품한 소장품 목록을 바탕으로 139284점을 그의 컬렉션으로 명시해놓았지만, 실제로는 1000점이 넘는 방대한 수장품을 갖고 있었고 백제관음상 등 상당수는 해방 전후 유출한 것으로 보인다.

1965년 한일문화재 반환 협상 시 한국정부의 반환요구 목록에 이치다 지로의 소장품은 불법 수집품으로 명기, 환수하고자 했으나 개인 소유라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통감부 헌병대의 행위가 대한제국의 통치 아래에서 이뤄진 일이고, 당시의 규정이나 을사늑약이 원천적 불법으로 대한제국의 출토물을 경매라는 방식으로 처분한 것에 불법적 요소가 농후하다.

그는 1929년 전시 뒤 불상 등을 지인들에게 간간이 자택에서 보여주었다고 전해진다. 1939년 도자사 전문가인 고야마 후지오가 이치다의 별실에서 백제 불상을 비롯한 신라 유물들을 보며 찬사를 보낸 기록이 전하고 있다. 당시 고야마는 금동관음보살입상을 두고 조선의 3불 가운데 하나로 정평이 나 있는 것인데, 조금 허리를 비틀고 서있는 자태가 빼어나고 미소 지은 얼굴이 아름답다. 일찍이 조선 불상에서 이 정도로 뛰어난 것은 본 적이 없다고 적고 있다.

이처럼 백제미소불은 일제강점기부터 이미 소문난 명품이었던 만큼 해방 뒤 학계에서 백제미소불은 집중적인 추적 대상이 됐다.

김재원 국립박물관 초대관장은 일본인 니와세 노부유키의 수중에 있던 국보 293호 불상을 압수해 박물관 소장품으로 등재하면서 다른 짝인 미소불을 계속 찾았다. 3대 관장 황수영도 일본에 출장갈 때마다 이치다의 소재를 탐문했으나 끝내 만나지는 못했다.

이치다는 1929년 대구에서 열린 신라예술품전람회에 이 불상을 포함한 소장품들을 선보인 것을 마지막으로, 1970년대 그가 죽을 때까지 백제관음상을 극소수의 지인 말고는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

후손들에게도 이 작품은 절대로 바깥에 공개하면 안된다는 유지를 남겼고, 기업가로 알려진 현재 소장자도 70년대 이치다로부터 작품을 넘겨받을 당시 이런 유지를 전해듣고 계속 지켜온 것으로 알려졌다.

연재 홍사준 선생 기념사업회장 홍재선 회장 인터뷰
연재 홍사준 선생 기념사업회장 홍재선 회장 인터뷰

백제미소불 험난한 환수의 길

정부의 강력한 환수 의지 필요

현재 백제미소불 환수가 답보상태에 빠져있다.

우선 소장자와 환수 가격 협상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장진성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국보급 문화재로 평가받는 백제 금동관음보살입상 환수를 위한 국회와 소관부서의 전향적인 자세를 촉구했다. 백제미소보살환수위원회와 문화유산회복재단 등이 2020722일 충남 부여문화원 실내경기장에서 공동으로 개최한 백제미소보살 환수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서다.

이날 토론회에선 여전히 돌아오지 못한 국보급 문화재의 조속한 환수를 추진하는 고민들이 주를 이뤘다. 특히 백제미소불 환수과정 평가와 환수방안을 주제로 발제에 나선 장진성 교수는 문화재청은 소장자가 요구한 금액(150억원)과 정부 책정 구매가격(42)이 차이가 크다고 얘기하며 사실상 환수를 위한 어떠한 실질적인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국회가 환수작업에 적극 나서줄 것과 정부지자체민간기관이 함께 공동기금을 마련하는 등의 실질적인 방안을 제언했다. 장 교수는 국회가 문화재청의 국내외 문화재 긴급 매입 자금을 현재 60억에서 200억으로 증액 해줄 수 있다면 환수가 즉각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며 국회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문화재청이 환수 의지가 없을 경우엔 국회가 문체부 산하기관인 국립중앙박물관에 특별예산을 배당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장 교수는 만약 국회가 특별 예산을 배정할 수 없다면 해외 유수한 박물관의 사례처럼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청, 충청남도, 부여군, 민간단체 기업 등 여러 해당 기관이 공동기금을 조성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라며 다만, 이 경우 환수 주체 여부 등 부처 간 갈등과 불협화음 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조언했다.

백제금동관음보살입상(백제미소불)의 전신상. 보관을 쓰고 자비롭고 인자한 표정을 지은 머리 부분과 천의를 두르고 영락 등의 장식을 걸친 상하반신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한국 불교미술의 최고 걸작이다. 현재 일본에 있다.
백제금동관음보살입상(백제미소불)의 전신상. 보관을 쓰고 자비롭고 인자한 표정을 지은 머리 부분과 천의를 두르고 영락 등의 장식을 걸친 상하반신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한국 불교미술의 최고 걸작이다. 현재 일본에 있다.

 

충남 국외소재문화재 실태조사단의 환수운동도 눈에 띈다. 실태조사단 단장을 맡고 있는 충남도의회 김연 의원(천안더불어민주당)이 백제금동관음보살입상(이하 백제미소불) 환수 활동이 문화재청의 반대로 난관에 봉착하자 긴급 자문회의를 열기도 했다.

자문회의에는 충남도의회 이공휘 의원(천안더불어민주당), 김기서 의원(부여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해 관련 문화재 전문가인 장진성 교수(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와 정규홍 자문위원(사단법인 한국국외문화재연구원) 등이 참여했다.

그 자리에서 장진성 교수는 국보급인 백제미소불의 감정평가액이 다른 유물에 비해 턱없이 낮은데 재감정도 할 수 없다는 문화재청의 주장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유감을 표했다.

정규홍 자문위원은 백제미소불은 1961년 정부가 환수하려던 한일문화재 반환 협상 목록에도 있던 문화재라며 이렇게 중요한 문화재가 113년 만에 환수될 기회인데 문화재청의 대응이 너무 안일하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공휘 의원은 백제미소불 환수에 필요한 법적 근거를 점검하고 환수 예산과 관련한 타당성 조사 등 현실적 난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연 의원은 백제미소불은 백제문화의 정수를 담고 있는 대체 불가능한 국보급 유산으로 실태조사단과 민간단체, 도민들이 환수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환수추진 과정에서 드러난 법적, 행정적 과제들을 신중히 검토하고 민··정이 협력해 난관을 헤쳐나갈 것이라고 의지를 밝혔다. 또한 한일 양국 간의 협상을 비롯해 소장자와 협상 등 실질적인 방안도 더불어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