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손뜨개 공예 ‘서산모사’ 윤복순 작가의 인생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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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손뜨개 공예 ‘서산모사’ 윤복순 작가의 인생 스토리
  • 최미향 기자
  • 승인 2021.10.13 22: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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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을 거슬러 번화로에 안착한 손뜨개...“이게 없었다면 이만큼 버틸 수 있었겠어요?”
손뜨개 공예 ‘서산모사’ 윤복순 작가
손뜨개 공예 ‘서산모사’ 윤복순 작가

14C 중반, 이탈리아와 독일 그림에서 이기 예수 옆에 성모마리아가 2개의 바늘을 사용하여 뜨개하는 모습이 묘사됐다. 1400년도에는 숙련공들의 노동조합인 뜨개 길드가 설립됐다.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그마치 11년의 긴 여정을 그쳐야만 가입 여부를 결정하게 됐는데 6년은 훈련을, 3년은 수습생으로, 3년은 선진지 교육차 세계를 다녀와야만 뜨개 길드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이 됐다. 이때부터 손뜨개가 무역으로 성장했고 유럽 탐험가들에 의해 새로운 미지의 세계로 퍼져나갔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2021년 가을의 문턱, 여전히 당시의 손뜨개가 200년 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우리 곁에서 그 명맥을 당당히 유지하고 있다. 두 개의 바늘과 실만 있으면 여전히 우리는 만들고 싶은 모든 것을 만들 수 있고 새로운 테크닉에 따뜻함까지 전할 수 있다.

지난 9, 가을을 재촉하던 비가 내리는 가운데 서산시 관아문길 23-1에 위치한 서산모사뜨개 공방 윤복순 작가를 만났다.

서산 양유정 ‘담지연 야외 전시장’에서 어머니와 함께
서산 양유정 ‘담지연 야외 전시장’에서 어머니와 함께

Q 뜨개 작가기도 하지만 수묵화 작가님이기도 합니다. 우선 지난해 안견미술대전에서 특선을 차지한 것에 늦었지만 축하를 드립니다. 올해도 출품하셨는데 좋은 결과 있기를 기대합니다. 작가님이 운영하시는 서산모사는 손뜨개를 하는 분들에겐 상당히 유명한 집으로 통합니다. 자리를 잡게 된 계기라도 있었나요?

감사합니다. 보잘것없는 제게 과분한 상을 주셨습니다. 열심히 하라는 상이라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손뜨개가 자리 잡게 된 계기는 태교 때문이었어요. 어느날 임산부 한 분이 저희 가게를 찾아오셨는데 태교를 위해 뜨개를 배우고 싶다는 거예요. 너무 고맙더라고요. 오신 것만도 감사한 데 배우기까지 하신다니.

무료로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그게 물꼬를 트게 된 계기가 됐죠. 한분 두분 찾아오시면서 저희 서산모사뜨개 공방이 번화로에서 제대로 안착하게 됐답니다.

더군다나 우리 서산은 기업들이 많이 포진해 있잖아요. 이곳으로 이사 오신 분들이 의외로 우울해하시는데 그분들이 소문을 듣고 뜨개를 배우면서 이곳에서 만난 분들과 소통을 하며 우울증을 날려버리더라고요.

한 주의 스트레스를 뜨개로 푸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한 주의 스트레스를 뜨개로 푸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Q 일요일에는 공방이 문을 닫기 때문에 직장인들은 토요일만 눈 빠지게 기다린다고 하더라고요. 한주의 스트레스를 단 하루 만에 뜨개를 하며 풀고 간다는데 그럼 작가님은 무엇으로 스트레스를 푸시나요?

아무래도 저는 뜨개방이 제 삶의 터전이기에 스트레스는 다른 업종에 비해 덜 받지만 그래도 어려움이 있긴 있어요. 그럴 때 저는 바로 앞 건물 2층 그림작업실로 달려가 붓을 든답니다. 2004년부터 시작한 그림인데 바쁜 와중에도 지금까지 그리고 있어요.

제 자랑 같아 좀 쑥스러운데 작년에 이어 올해도 안견미술대전에 작품을 출품했는데 감사하게도 1차는 통과됐다네요. 이런 소식은 저를 다시 바로 세우며 심기일전할 수 있는 채찍이 되기도 한답니다.

또 하나는 여전히 손뜨개예요. 이곳에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또 여기서 풀기도해요. 한땀 한땀 하다 보면 생각이 비워진답니다. 그게 참 좋아요. 마치 명상을 하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지난 5월에는 22년 공방을 운영하며 생애 첫 한땀한땀, 전시전을 열기도 했답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힘들었던 일들이 전시전 한 번으로 다 씻겨져 내린 듯한 기분이었어요.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뜨개를 하며 새로운 충전을 받을 예정입니다.

Q 가만 보면 우리 작가님은 손재주가 뛰어난 것 같아요. 어린 시절 상을 휩쓸었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가사 시간에 수 놓는 시간이 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좀 했던 것 같아요(웃음). 방학과제물을 해갈 때는 다른 친구들에게 지는 게 싫어서 큰 작품을 제출해서 상을 받곤 했죠.

중학교때는 미술부에 들어가서 한국화를 열심히 그렸죠. 그때마다 따뜻한 성품의 우리 부모님께 칭찬을 많이 받았어요. 괜히 우쭐해서 더 열심히 그림을 그렸던 기억이 있죠. 그래도 미대를 꿈꿀 수는 없었어요. 집안이 굉장히 어려웠거든요.

그 와중에도 우리 엄만 교육열이 좀 높았던 것 같아요. 그도 그럴 것이 저희 형제들이 공부를 좀 했답니다. 저 빼구요(웃음). 아무리 그래도 아이들은 많고 학교 보낼 돈은 궁하고. 더구나 제가 고2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오빠가 시골로 내려와 형제들을 지켰어요.

참 고생을 많이 했죠. 바다 일도 나가고 가축도 키우면서요. 지금 생각하면 우리 애 나이잖아요. 꿈도 많았을 테고... 그 오빠가 가족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한 거죠. 그저 감사해요.

서산시 관아문길 23-1에 위치한 ‘서산모사’뜨개 공방
서산시 관아문길 23-1에 위치한 ‘서산모사’뜨개 공방

Q 그 당시는 다들 힘든 시기였지요. 그럼 졸업하고 손뜨개 쪽으로 취직을 하셨겠네요?

네 맞아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부평으로 올라갔어요. 친척 언니가 뜨개방을 아주 크게 하고 있었거든요. 그때 언니가 임신하는 바람에 뜨개질을 잘하는 걸 알고 저를 불렀어요. 그게 저와 뜨개질 사이에 사랑의 징검다리가 된 거죠(웃음).

사실요. 우리 외가댁이 이쪽으로는 소질이 좀 있는 것 같아요. 외삼촌이 대한민국 나전칠기 명인이시구요. 이모도 바늘의 명재(明才)세요. 헝겊에 색실로 그림이나 글자를 놓는가 하면 조각보를 만들기도 하셨어요. 우리 형제 중에는 제가 유일하게 외탁을 한 것 같아요.

아무튼, 그때 부평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또 있었는데요. 바로 손뜨개방 바로 앞 건물 2층에 미술입시학원이 있었거든요. 낮에 돈 벌어서 밤에는 미술학원 가야겠다 생각했어요. 열심히 배워서 미대를 가려고요. 그래서 겸사겸사 부평으로 올라간 거예요.

그런데요. 너무 공방이 크고 바빠서 미술학원 근처에도 못가봤어요. 진짜로 뜨개방이 너무 잘 돼서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된 게 더 나았지만요. 그래도 그때는 그게 너무 속상했어요.

윤복순 작가의 작품들
윤복순 작가의 작품들

Q 그럼 그때 그림에 대한 미련을 못 버려서 지금도 그림을 계속 그리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그런 것 같아요. 2004년부터 서산문화원 다니고, 복지관 다니면서 그림을 배웠어요. 그리곤 홍익대 동양화를 전공하시고 지금은 한국화를 하면서 후학들을 길러내는 조행섭 선생님을 만난 거죠. 그분 문하생으로 들어가 10여 년간 그림을 그리면서 화촌에도 들어가고, 미협에도 들어가게 됐어요.

재밌는 일도 있었어요. 신혼 때는 다들 생활도 여의치 않고 힘들잖아요. 그런데도 무료로 가르쳐 준다는 소리를 들으면 무작정 달려가서 배웠다니까요. 제 속에서 아마 그림에 대한 부분이 끈질기게 미련으로 남아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게 좋아하던 그림도 신랑이 세탁소 차려서 일할 초창기엔 (그림)안 했어요. 그러다 한 7년이나 됐나 봐요. 아무리 봐도 저는 세탁소랑 적성에 맞지 않는 거예요.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잖아요. 제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이 뜨개방이고 그림이잖아요. 뜨개방을 해야 그림도 더불어 그릴수 있겠더라구요.

신랑에게 이런 사실을 말했더니 안 믿는 거예요. 그때부터 일 마치면 막내를 등에 업고 공방을 차릴만한 장소를 물색하러 다녔어요. 돈이 없으니 권리금 없는 장소를 찾아야 했고, 신랑 밥 차려줘야 하니 세탁소 근처로 잡아야 했죠. 이 잡듯이 찾아 헤매다 마침 보증금 없이 싸고 괜찮은 장소가 나타난 거예요. 그게 바로 지금의 서산모사공방 자리예요.

윤복순 작가의 작품들
윤복순 작가의 작품들

Q 가게만 있다고 공방을 차릴 수는 없지 안잖아요.

물론이죠. 그래서 제가 쓴 게 바로 뜨개방을 크게 하고 있던 부평 친척 언니 찬스였어요(웃음). 언니는 후불로 물건을 내려 보내줬고, 은행에 있는 남동생은 대출을 받아줬어요. 다들 도와준 덕분에 진짜 돈 한 푼 없이 공방을 시작한 거예요.

그런데요. 참 신기하게도 개업하자마자 좋은 손님들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방문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무식하게 시작한 게 벌써 20년 정도 됐어요. 그 사이 신랑은 세탁소를 접고 직장생활을 하게 됐고요. 서산에서 몇 년 살다가 홀로 계신 시어머님을 모시기 위해 서산시 지곡면 화천리로 우리는 이사를 했어요. 우리 3남매는 무럭무럭 잘 자라서 각자 맡은 바 자리에서 충실히 살고 있고요.

지곡면 중왕리 처자와 지곡면 화천리 총각이 만나 소소하게나마 사람 사는 냄새를 풍풍 풍기며 여기까지 왔답니다.

Q 따뜻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꿈이 궁금해집니다. 꿈이 있다면요?

큰 욕심 없이 평범하게 사는 게 전 좋아요. 친구들과 함께 밥도 먹고요. 여행도 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다 일상으로 돌아오면 지금처럼 강의를 나간다거나, 우리 공방으로 오시는 분들과 도란도란 정을 나누며 뜨개를 했으면 좋겠어요. 우울해하시는 분들이나 삶이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분들과도 이야기꽃을 피우며 뜨개로 행복을 공유했으면 좋겠어요.

우리 가족들은 지금처럼 제 주위에서 오순도순 생활했으면 해요. 저는 멀리 떨어져서 늘 그리워하는 게 싫어요. 얘기하고 보니 큰 욕심일 수 있네요(웃음). 이 꿈 다 이루려면 뒤에서 든든한 지원군인 남편과 함께 무조건 건강해야겠죠.

윤복순 작가의 '한땀 한땀, 실' 展
윤복순 작가의 '한땀 한땀, 실' 展

Q 건강 비결이 궁금해집니다. 좁은 공간에서 뜨개를 하는데 건강은 괜찮으세요?

모르시는 말씀이세요. 뜨개질은 현대인들의 육체적 정신적 부분에 상당한 도움을 준답니다. 중앙일보 기사를 인용해보면요. 평소 뜨개질·퀼트 등 손과 머리를 이용한 활동을 취미로 가졌던 노인은 그렇지 않았던 노인과 비교해 인지·기억력 손상이 30~50%나 감소했대요.

또 하버드대학교 벤슨-헨리 심신의학연구소설립자 허버트 벤슨 박사는 뜨개질은 일종의 명상으로 마음을 가라앉혀주는 효과가 있다고 했어요. 조용히 반복하는 동작은 이완반응을 유도할 수 있대요. 이완반응은 명상이나 요가를 하거나, 또는 뭔가를 집중하고 있을 때 일어나는 반응이래요.

뜨개를 하면 몸은 긴장이 풀리고 휴식 상태가 되며, 심장박동수와 호흡수가 줄어든 상태가 된다네요. 그도 그럴 것이 뜨개질은 하다 보면 정말로 마음이 진정되는 걸 느껴요.

이렇듯 스트레스 많은 현대인에게 뜨개질이 뇌 활동에 자극을 주어 두통과 심신 피로에 효과가 많대요. 이참에 뜨개질 한번 배워보실래요?(웃음)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손뜨개만 보면 지쳤던 마음이 금세 보약 먹은 듯 벌떡 일어나는 게 저예요. 그만큼 제게 힘이 되고, 즐거움도 되고, 위로도 되는 신기한 마약 같은 존재가 뜨개랍니다. 이게 없었다면 제가 이만큼이나 버틸 수 있었을까요?

오랜 시간 뜨개질을 한 저를 보며 사람들이 그래요. 손가락 관절이 안 나갔느냐고요. 저요? 체질인가 봐요. 아직 끄떡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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