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나의 ‘하! 나두’ 건축 - ⑱

경주 국립 박물관 수장고 배면. 감상가 마다 의견이 분분하여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한옥이지만 한옥이 아닌 건축물이다.
경주 국립 박물관 수장고 배면. 감상가 마다 의견이 분분하여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한옥이지만 한옥이 아닌 건축물이다.

건축 짝사랑쟁이와 미술 연구쟁이가 신선하고 날것의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의 물꼬는 미술 친구가 미술관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을 추천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미술을 공부하다 보니 미술이 전시되는 공간에 대해서도 매력을 느꼈다고 했다. 덕분에 미술관 답사를 다니며 미술을 선망하게 된 나와 친구의 접점이 생겼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술 친구가 원하는 그 책은 결국 추천하지 못하였다. 사실 미술관과 박물관 및 컨벤션 등의 전시공간은, 이미 그 수가 아날로그 문서로 정리할 수준을 넘어선 상태이다.

혹여 가장 기본적인 건축가와 위치 그리고 면적이나 도면 등의 건축 정보만을 추려낸다 하여도, 인덱스와 정보 업데이트를 고려했을 때 디지털 자료의 활용이 더욱 효율적이라 생각되었다. 그래서 미술 친구가 미술관 사전을 지니고 싶어 하는 마음은 잘 토닥여 한풀 달래 주었다.

전화번호부 혹은 회원명부 같은 정확한 정보 모둠을 얻고자 하는 친구에게 오히려 역방향으로 접근하기를 권해 보았다. 마음에 드는 미술관을 골라서 같이 이야기 나누기를 하면 어떠할지 제안도 하였다.

모든 것을 알 필요도 알 수도 없는 세상임을 인정하고, 귀납적으로 다가가보고 싶었다. 핑퐁 하듯 이어지는 흥미로운 대화중에 미술 친구 그녀가 바라보는 미술관은 어떤 스타일로 펼쳐질지 궁금하여 당장에 시도하자며 채근까지 했다.

일말의 준비도 없이 토론을 시작하였지만, 각자가 생각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화력으로 끊임없이 불타올랐다. 수만 가지 화두가 등장했다. 전시 공간과 수장고·내외부 디자인과 조명·업무와 관리 동선에 이르기까지 서로에게 궁금한 것이 넘치도록 많았고, 갑작스레 폭발한 의욕으로 인해 시간마저 부족했다.

전시에서 작품이 돋보이게 하는 방법과 드라마틱 한 분위기 전환 효과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작가에게 적합한 전시공간을 추천하는 시스템에 대한 아이디어도 쏟아져 나왔다.

미술 친구와의 짧은 소통은 강력한 임팩트를 주었다. 클라이언트 미팅과는 그 맛이 확연히 달랐다. 수평적 입장에서 분야 전문가에게 현실 건축의 생각을 듣고 나니, 가려운 곳을 매끈하게 깎은 손톱으로 긁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다음 편이 기대되는 설렘을 간직하게 되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천재가 아닌 이상에야, 업역을 넘나들며 어우러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우연한 기회가 인간의 관계성에 대한 열정까지도 자극해 주었다.

건축은 호흡이 긴 분야이다. 혼자서 하기 힘든 영역이고, 결과물이 존속하여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존재이다. 타 분야와의 연관성이나 실사용에 대해서도 간과할 수 없다. 명장이 지은 걸작 건축물이라 추앙받는 이면에, 클라이언트가 실사용의 불편으로 고소를 하는 경우도 있다.

생각해 보면, 현실에 이상적인 것이란 없고 각자의 추상적인 것이 모여 일상을 담아내어 이상화하고 있을 뿐이었다.

 
최하나 건축 칼럼니스트/전) (주)엄앤드이종합건축사사무소/전) 서울건축사협 서부공영감리단/전) SLK 건축사사무소/현) 건축 짝사랑 진행형
최하나 건축 칼럼니스트/전) (주)엄앤드이종합건축사사무소/전) 서울건축사협 서부공영감리단/전) SLK 건축사사무소/현) 건축 짝사랑 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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