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점엄마의 200점 도전기 68

다은이는 유난히 동물이나 곤충을 좋아한다.
소에게 여물을 주는 다연이

가금류를 제외한 육고기 편식에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고기를 안 먹으면 대체 뭐 먹고 살아요?”가 그들의 주된 반응이다. 해산물이나 닭고기는 좋아하고, 햄이나 돈가스 같은 가공육은 먹는다는 구차한 변명이 나에게 따라 붙는다.

내가 고기류를 끊게(?) 된 정확한 이유는 나도, 가족들도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소를 잡는 장면을 보고 나서가 아닐까 스스로 추측해본다. 집안에 행사가 있을 때 도축 전문가를 불러 키우던 소를 잡는 장면을 보았다. ‘털을 그을리는 고약한 냄새, 뼈를 자르는 전기톱 소리, 창고 한 쪽 바닥에 낭자하던 붉은 피와 고기같은 게 떠오른다. 그와 반대로 10대 이전에 먹었던 파를 동동 띄운 곰국, 감칠맛 나던 맑은 쇠고기국, 불맛이 느껴지던 숯불갈비 등 붉은 고기 맛의 감각이 아직까지 내 세포 어딘가에 새겨져 있다.

제 키보다 더 큰 소를 보고 온 그날 다은이는 하루 종일 동물 얘기로 시간가는 줄 몰라했다.
그림 속 누렁이를 바라보는 다연이

교실에서 급식을 하던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담임선생님이 불현듯 식판에 있는 음식을 남김없이 먹은 후 검사를 받으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미 고기 먹기를 중단했을 때라 소고기와 돼지고기가 식단에 나오면 먹지 않고 남기는 걸 당연하게 여기던 시기였다. 고추장 불고기를 제외한 메뉴를 모두 먹었다. 이후 남은 불고기를 앞에 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간을 제법 흘려보냈다. 교실에 아이들이 몇 남지 않을 때까지 한참동안 선생님 눈치를 살폈으나 뾰족한 수가 없어 보였다.

마지막 방편으로 남은 불고기를 입 속에 모두 끌어넣었다. 행여나 선생님이 입을 벌려보라고 하실까 마음 졸이며 입을 꾹 다문 채 식판 검사를 받았다. 무사히 교실 밖으로 나온 나는 곧장 화장실로 달려가야 했고, 입 속에 든 걸 간신히 변기에 뱉어냈을 때는 그동안 참았던 구역질로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교실로 돌아가자 식판 비우기를 포기한 한 남학생이 칠판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손을 들고 있었다. 이후에도 나는 변함없이 고기 찬이 나오면 먹지 않았지만, 선생님이 그날처럼 먹기를 강요한 날은 없었다.

집에서도 식구들이 막내에게 고기 한 점 먹여 보려고 갖은 수를 썼으나 나의 편식은 계속 되었다. 대학생활이나 직장생활을 하면서 고깃집에서 회식을 할 때면 나는 먹지도 않는 고기를 굽기만 했다. 똑같은 돈을 내고 덜 먹는 게 아깝지만 먹기 싫은 걸 먹고 싶지는 않았다. 후에 타인에게 불편함을 주는 습관 같아서 고쳐보고자 바짝 구운 고기를 몇 점씩 먹기 시작했지만 실은 나에게 불편함을 주는 행위였음을 고백한다.

나는 안 먹더라도 아이들에게는 고기를 먹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유식을 하면서부터 하루 단백질 섭취량을 고려하여 매일 돼지, , , 오리를 번갈아 먹이고 생선, 달걀, 두부를 중간 중간 끼워 먹였다. 고기를 많이 먹여야 건강하게, 크게 자랄 것 같았다.

그러다 최근 기후위기 연수를 들으면서 지구 온난화의 주된 요인이 가축사육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니, 이전부터 들어 알고 있었지만 간과하고 지나쳤던 사실을 최근에야 각성하게 되었다.

고기 섭취를 줄여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지인의 추천으로 황윤 감독의 책 [사랑할까 먹을까]를 읽었다. 가히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책이었다. 그동안 고기와 동물을 전혀 다른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고기가 가축의 사체와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특히 공장식 축산은 개선되어야 할 사안이라는 것에 절감했다.

조류독감과 구제역 관련 내용을 읽을 때는 가슴이 아려와 눈물이 뚝뚝 흘렀다. 젖 물려 새끼 키워 본 어미라면 감정이입을 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내용이었다. 당장 나와 가족이 먹는 고기의 양을 줄이기로 결심했다. 아이들에게 동물을 죽여야 고기를 먹을 수 있으니 고기는 가끔 먹고 대신 콩이나 두부를 자주 먹자고 제안했다. 동물과 고기 둘 다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고맙게도 내 말에 동의해주었다.

작은 걸음이나마 나부터 한 걸음 내딛기로 했다. 그것은 나와 가족을 위한 일이다. 동물의 복지를 위한 일이다. 또한 환경과 지구를 위한 일이 될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최윤애 보건교사
최윤애 보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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