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김병민 한림대 나노융합스쿨 겸임교수
김병민 한림대 나노융합스쿨 겸임교수

지난달 충남 신서천화력발전소가 건설 중인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가운데 처음으로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기후·환경단체들은 탄소중립과 탈석탄에 위배되는 시대착오적인 일이라며 가동 중단을 촉구했다. 이 지점에서 저항은 당연하다. 정부가 무탄소라는 CF100(Carbon Free 100%)을 꺼냈는데 새로운 화력의 가동은 어긋나 보인다. 또 앞서 RE100 정책이 있었다.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로 기업용 전력의 100%를 충당하겠다는 것이다. RE100은 자연스럽게 원전을 탈출하는 정책으로 이어졌다. 얼핏 보면 두 정책 모두 괜찮은 선언처럼 보인다. 현재를 위해서 미래의 기회를 끌어다 쓸 수는 없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두 정책조차 묘하게 이율배반적이라는 것이다. 무탄소 정책으로 원자력이 다시 추동력을 얻고 있다. 이유는 재생에너지만으로 전력을 충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안인 세일가스도 결국 탄소를 배출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최근 지구와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로 스마트그리드 Smart Grid가 등장했다. 투자에 눈 밝은 사람들은 벌써 뭔가 똑똑해 보이는 이것과 관련한 주식을 사들였다. 기실, 지금까지 선언된 모든 말들을 하나하나 보면 틀린 것이 없지만,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묘한 얽힘과 공허한 선언처럼 느껴진다.

그 이유는 여기에 가장 중요한 사실이 하나 빠져있기 때문이다. 우리 문명은 전기를 반드시 써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단전이 일어난다는 벽보가 집 앞에 붙는다면 아마도 우리는 지옥 같은 일상을 상상하며 머리가 복잡해질 것이다. 그러면 전기를 만들고 남는 전기를 저장해 필요할 때 사용하면 모든 게 해결될 것 아니냐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스마트 그리드로 향하고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전기의 고유한 특성이 우리 고민거리의 중심에 있다. 결국 이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모든 에너지 정책을 정확하게 볼 수가 없다. 그 특성은 전기는 발전과 소비가 매 순간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기는 일반 상품처럼 사고, 팔 수 있는 실체가 있는 물건이 아니다. 스마트폰에 생명을 넣는 것은 전기가 가진 힘 때문이다. 이 힘은 전기가 가진 권력이 아닌 진짜 힘을 말한다. 기계가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그런 물리적 힘, 즉 전력을 말한다.

이 전기는 무조건 도체를 타고 흘러야 한다. 흐른다고 해서 마치 빛처럼 빠르게 흐르는 것이 아니다. 실제 전자의 속도는 흐르는 꿀처럼 느리다. 그리드를 구성하는 전선인 금속 도체는 이미 전자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러니까 물이 가득 찬 호스와 같다. 수도꼭지에서 물을 틀면 아무리 멀리 있는 호스 반대편에서도 바로 물이 밀려 나오는 원리다. 발전소에서 만든 전자를 그리드에 밀어 넣으면 그리드에 연결된 모든 기계가 생성한 만큼의 전자를 어디서든 이용할 수 있다. 그러니까 전기는 만들면 바로 수요자가 사용하는 것이다. 이런 공급과 수요가 일치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

바로 수요를 강제로 끊는 단전이다. 지금 회자하는 스마트 그리드는 이 전자를 화학적 방법으로 잠시 특정 원자에 가뒀다가 필요할 때 사용하는 전지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전력망 소비자가 생산자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중앙집중적 정책으로 보내는 전기만 사용했으니 각 가정과 기업에서 발전설비를 갖춰 자체 충당하고 남는 것은 저장하고 그리드로 보내겠다는 것이다. 답은 무척 간단해 보이지만 이렇게 지속가능한 에너지 체계로 가는 길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에너지 시스템 전체의 체질을 바꾸는 거대한 일이고 오랜 시간과 지원이 필요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전기 문명이 원활하게 움직이는 데는 기저 전력이 필요하다. 지금은 원전과 석탄이 가장 많은 원천인데, 이 원천이 사라지면 빈자리를 메울 수 있을까? 태양광 패널에 드리워지는 변덕스러운 자연은 예측할 수 없고 안정적 전력 공급이 어렵다. 스마트 그리드가 요동치는 주파수를 보완한다고 하지만 예측하지 못하는 전류 변화가 그리드에 진입할수록 그리드의 복잡성을 만들고 여기에서 예측불허의 문제가 발생한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유럽의 사례를 들지만, 미국은 그리드가 분할돼있고 유럽은 지형적으로 각국의 그리드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그리드는 한 국가 안에서 구축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그리드 문제는 국가 경계를 허물 수 있는 세계사적 유례없는 합의에서만 유효하다. 그리고 스마트 그리드의 핵심 부품인 안정적인 저장장치도 넘어야 할 기술적 장벽이 남아 있다.

마트에서 두부 한 모를 만드는데 많은 콩이 들어감을 잘 아는데도 콩보다 더 싼 두부가 팔린다. 전기가 그렇다. 원룟값에도 미치지 못하는 전기료를 지불하고 성장이라는 핑계로 마음껏 누려 온 자원이다. 미래의 에너지 체계로 가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을 치러야 한다. 그런데도 전기료를 올리면 너도나도 호소한다. 내 집 마당에 발전소는 더욱 저항한다. 정부는 모든 소리를 들어주고 피해 다니며 그리드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국민을 설득하지도 못한다. 그런데 우리는 설득 받을 자세는 된 걸까. 에너지에 지속 가능한이란 수식을 붙이는 건 정부만의 몫은 아닐 거다.

7월 초인데도 무척 덥다. 최근 전력수급 경보가 발령될지도 모른다는 예측이 나왔다. 지난 2013년 이후 발령된 적이 없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원전의 스위치는 꺼야 하고 석탄에 붙은 불도 꺼야 한다. 그러니까 아름답고 맛있는 케이크를 보고 있으면서 동시에 먹을 수가 없는 일이 된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만족하기 어려운 선택지를 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최근 기후 변화를 보면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서산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