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는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식의 교육만 할 게 아니다
【깊은 산속 옹달샘】장애아를 키우는 부모들 ⑨

일러스트=장애아
일러스트=장애아

# 어느 특수학교 선생님임의 이야기입니다. 처음 선생님이 되고, 특수학교에 근무할 때였습니다. 나는 모르는 것투성이인 햇병아리 같은 선생님이었습니다. 학부모 상담 기간이 다가와 옆 반 경력 선생님에게 도대체 무슨 상담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슬쩍 여쭤봤습니다.

처음 들은 답변 중에 인상 깊은 것은 운전면허를 안 딴 엄마가 있으면 면허부터 따라고 해야지였습니다. 도대체 왜? 장애아의 부모는 아이를 교육기관에 보내고 운전면허부터 따야 하는 건지 조심스럽게 여쭤봤습니다. “치료실 데리고 다니고 아이에게 장애가 있는 걸 알았으니 얼마나 바빠지겠어. 좋다는 치료실 데리고 다니려면 이제 아이 스케줄 쫒아가기도 힘들 거니까, 면허부터 있어야지.” 오랜 경력에서 나온 진심이었을 것입니다.

# 사실이 그랬습니다. 제가 만나 본 장애아 엄마들의 삶은 오로지 아이의 삶을 위한 헌신자였습니다. 아이가 불안이라도 높으면 아이 불안이 곧 엄마의 불안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일상입니다. 일하는 엄마면, 더 많은 사회적 압박과 만납니다. 엄마가 바빠서 아이를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주변의 주제넘은 충고 이전에도 엄마 스스로가 괴롭고 아프게 자책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 언어 장애가 있는 민우(가명, 8)

민우의 엄마는 민우가 입학통지서를 받았지만, 여느 엄마들처럼 기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엄마 아빠라는 발음도 똑똑하게 하지 못하는 민우. 혹시나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하지만 민우 엄마는 주저합니다. 장애를 남에게 솔직히 털어놓지 못합니다. 장애를 가진 가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가정이나 비슷합니다. 우리 아이가 좀 늦어서 그런거지 장애는 아니라고 믿고 싶은 것입니다.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고, 믿고 싶지도 않습니다.

학부모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직 말을 못 해서 언어치료는 받고 있지만, 장애는 아니에요.”

감각통합치료를 받으라고 권유받았지만 우리 아이는 장애아가 아니에요.”

대한민국의 평범한 성인들에게 장애라는 단어는 몹시 불편하고, 불쾌한 단어입니다. 부모의 바람대로 단지 조금 느릴 뿐인 아이가 될 수도 있고, 열심히 키웠지만 느림의 범주가 장애의 범주에 포함되어 버리는 아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회의 잘못된 인식이 민우 엄마를 주저하게 합니다.

# 지적장애아 준영(가명, 19)

준영이는 어려서부터 지적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모두 정상인으로 일반 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준영이는 장애아들이 다니는 특수학교에 다닙니다. 준영이의 지적 수준은 5~6세 정도. 준영이 엄마는 오늘도 장애인활동보조사에게 딸을 맡기고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근을 합니다.

그나마 장애활동보조지원사라는 복지제도가 생겨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돈을 벌 수 있으니까요.

준영이 엄마는 오후 일이 끝나면 준영이를 데리고 집으로 옵니다. 요즘은 엄마를 위해 무거운 물건을 들어주는 준영이가 너무나 대견해 펑펑 울었다는 준영이 엄마. 언젠가는 어른처럼 제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고 환하게 웃습니다. 가슴 아린 웃음이지만 사랑이 넘칩니다. 엄마의 마음인거죠.

# 장애인들에게도 자기결정권이 존중되어야 합니다. 너무 거창한 말처럼 들리나요? 모든 것이 미숙해 보이는 발달장애인들에게 자기결정권을 부여한다면 정말 삶의 질이 좋아질까요? 발달장애아가 성인이 되었다고 자기결정권이 딱 주어진다면 이들은 이렇게 주어진 자기결정권을 잘 사용할 수 있을까요? 궁금하실 겁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발달장애인이 자기결정권을 주장하려면 연습이 필요합니다. 어릴 때부터 습관이 돼야 스스로 알 수 있는 내 권리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현장과 가정에선 이런 선택의 기회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가 차려주는 밥상, 부모가 골라주는 옷, 부모가 이야기하는 스타일로 머리를 정리하는 일. 비일비재한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교사가 쥐여주는 크레파스, 교사가 먹여주는 반찬, 교사가 정해놓은 학습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이렇게 하는 게 편할 수 있습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아이는 키우기 훨씬 편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이가 컸다면 어떨까요? 물론 성인이 되었어도 말 잘 듣는 성인이 훨씬 돌보기에 편합니다. 하지만 당사자의 인간다운 삶과는 거리가 멀겠지요. 자기결정권은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 또 학교에서 장애는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식의 교육만 할 게 아니라 장애인의 인권에 관한 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이 사회에서 인정되고 받아들여질 때 장애인들이 조금 더 가치 있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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