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창

배영금 독자
배영금 독자

먼저 고백한다. 독자의 자격은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그동안 애써 찾아 읽지 않았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읽고 볼 것은 주위에 차고 넘쳤다. 굳이 서산시대가 아니라도 됐다. 손전화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건 원하는 정보를 얼마든지 얻을 수 있었다. 아쉬울 리가 없었다.

신문, 아니 중앙 언론에 대한 실망과 피로감도 한몫했다. 받아쓰기만 한 기사와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가짜뉴스에 멀미가 났다. 하이에나처럼 물고 늘어지며 선정적으로 뽑아낸 제목들, 읽고 나면 알맹이도 없는 기사들 속에서 좋은 기사를 찾아 읽는 것조차 부대꼈다.

나는 읽을 자유도 있지만, 읽지 않을 자유도 있다.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정보와 기사들 속에서 차라리 읽지 않을 자유를 택하기도 했다.

어느 봄날 달콤한 딸기향이 물씬 풍기는 농원에서 서산시대를 만났다. 오래간만이었다. 좋아하는 기자의 이름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반가웠다. 덥석 집어 들고 몇 장을 넘겼다. 아는 얼굴이 있었다. 읽고 싶은 기사도 있었다. 차곡차곡 접어 뒷주머니에 넣었다.

한 개의 꼭지에서 시작된 읽기는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고, 어떤 글에서는 한참 동안을 머물렀다. 한 노인의 이야기에 빙그레 미소가 피어올랐고, 내가 좋아하는 웅도의 이야기에 눈이 커졌다. 읽는 맛이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지역에 대한 현안도, 배려도 담겨 있었다. 지역민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좇는 걸음이 느껴졌다. 지역 언론의 자존심도 보였다.

한 페이지씩 넘길 때마다 바스락 소리가 났다. 바스락 바스락. 그 소리가 좋아 자꾸 넘겼다. 소리가 나지 않는 인터넷 속에서 들어보지 못한 반가운 소리였다. 바스락 소리를 타고 글들이 말을 걸었다. 그렇게 끝까지 읽었다.

소박하지만 정성껏 차린 밥상을 받은 것 같았다. 갖은 반찬에 얼큰한 찌개를 곁들여 밥 한 공기를 다 먹은 후, 구수한 숭늉과 조청을 곁들인 쑥개떡 한 조각까지 후식으로 먹은 기분이었다. 작은 기사 조각 하나 버릴 게 없었다. 그 후로 그렇게 몇 번 배가 불렀다.

허세 같지만, 지역신문을 안다. 대학교 졸업 후 대전의 지역신문, 시사신문에서 젊은 시절을 다 보냈다. 지역신문의 생리, 한계도 안다. 아무리 큰 뜻과 넉넉한 자본으로 시작을 했어도 3년이 고비라는 것을 안다. 중앙언론의 들러리일 수 밖에 없는 현실도 안다.

험한 오늘에서 내일을 길어 올린 여유가 없다는 것도 안다. 몇 푼의 월급에 지친, 쓸 만한 기자는 떠나고, 바짓가랑이 붙들 힘조차 부족한 것도 안다.

한 지역신문이 만들어져 이렇게 오랫동안 살아 있다는 게 기적이었다. 독자 위에 군림하지 않고 지역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 신기하기조차 했다. 활자에 정보와 지식만 때려 넣지 않고 양질의 저널리즘을 고민한 흔적이 반가웠다. 행간 사이 느껴지는 사람 사는 냄새는 이 신문의 철학처럼 느껴졌다. 고마웠다.

그럼에도 갈 길은 멀어 보인다, 기사의 가치 기준에 대한 고민도 더 필요하고, 그에 따른 안배도 살짝 아쉽다. 지역의 여론을 담을 그릇들도 더 다양했으면 좋겠다. 로컬이라는 공간에만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 커뮤니티로 지평을 더욱 넓히길 바란다.

차라리 갈 길이 멀었으면 좋겠다. 그 길 위에서 오래 고민하고 오래 걷기를 바란다. 그래서 오래오래 함께 했으면 좋겠다. 어느 날이고 사람 사는 냄새가 그리우면 어머니 옷 속을 파고들 듯, 서산시대 행간 사이로 파고들 수 있기를 바란다. 이것은 수줍은 연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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